미 행정부, 韓에 25% 상호관세 부과 공식 발표트럼프, '비관세 장벽' 문제로 25% 관세 정당화한미FTA 사실상 휴지조각 … 재개정 수순 불가피비관세 장벽 완화 및 농산물 등 개방 압력 가능성전문가 "무역수지 불균형 해소 등 신속 대응해야"
  •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 시간) 백악관 경내 로즈가든에서 '미국을 다시 부유하게'라는 행사를 열고 국가별 상호관세를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 시간) 백악관 경내 로즈가든에서 '미국을 다시 부유하게'라는 행사를 열고 국가별 상호관세를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25% 상호관세를 부과하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사실상 무력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한미 FTA 근거로 양국은 대부분의 물품을 무관세로 교역해 왔는데 '25% 관세' 폭격을 맞게 되면서 휴지조각으로 전락할 처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백악관 연설을 통해 한국산 제품 전반에 대해 25%의 상호관세를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해 온 '불공정 무역'을 명분으로 한 조치다. 

    우리나라는 한미 FTA를 통해 미국산 제품에 대부분 무관세를 적용하고 있었지만, 미국의 FTA 체결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의 상호관세 대상국이 됐다. 호주, 칠레,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도미니카공화국,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모로코, 페루, 싱가포르, 온두라스 등 11개국은 기본관세율인 10%의 세율을 적용받았다. 이스라엘(17%), 니카라과(18%), 요르단(20%)도 한국보다 낮았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한국의 '비관세 장벽'을 문제 삼으며 25% 관세를 정당화했다. 지난해 공개된 USTR 국가별장벽보고서(NTE)에 따르면 미국은 사과·배 등 한국 정부의 수입검역 절차를 주요 비관세 장벽으로 꾸준히 문제 삼아왔다. 최근 다시 불거진 '30개월령 이상 소고기 수입 제한' 외에도 구글의 정밀지도 반출 문제, 한국의 약값 책정 정책 등도 거론됐다. 이는 향후 미국이 가할 무역 압력과 재협상 요구의 명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은 한국이 자국산 제품에 50%에 달하는 무역장벽을 부과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그러나 해당 수치의 구체적인 산정 방식은 공개하지 않았다.

    2012년 한미 FTA 발효 이후 양국은 교역을 크게 확대해 왔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대미 교역액은 한·미 FTA가 체결된 2012년 1018억달러에서 지난해 1999억달러로 96.3% 증가했다. 같은 기간 대미 무역흑자는 152억달러에서 557억달러로 3.6배 수준으로 늘어났다. 대미 무역에서 높은 흑자는 미국이 한국에 상호관세 25%를 매긴 배경이 됐다.

    한국은 그간 FTA로 미국 시장에서 일본, EU 등 주요 경쟁국보다 유리한 관세 환경을 누려왔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경쟁 우위가 사라졌고 오히려 일본(24%)·EU(20%)보다 높은 관세율을 적용받게 됐다. 이는 가격경쟁력 저하로 직결돼 자동차, 반도체, 배터리 등 주요 수출 품목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다수 국가가 미국 제품에 막대한 관세를 부과하고 산업을 파괴하기 위해 터무니없는 비금전적 장벽을 만들었다"라면서 "미국 납세자들은 50년 이상 갈취를 당해왔으나 더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국제경제비상권한법(IEEPA)을 근거로 상호관세 조치를 단행했으며, 당분간 새로운 체제를 정착시키는 데 집중하겠다고 밝히면서 협상에는 선을 그은 상태다.
  •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UPI연합뉴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UPI연합뉴스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는 FTA 위반 소지가 있지만 미국을 상대로 보복 조치를 예고한 중국, 유럽연합(EU) 등 주요국과 달리 강경 대응에 나서기는 쉽지 않다. 탄핵 정국에 따른 리더십 부재 상황인 한국은 대미 경제 의존도가 높은데다 외교·안보 이슈까지 긴밀하게 얽혀 있어 트럼프발 관세 정책을 단순한 무역문제로 접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번 상호관세 조치로 한미 FTA가 효력을 잃고 반쪽 협정으로 전락하면서 이를 계기로 미국이 한미 FTA 재개정 요구를 해올 가능성도 크다. 이 경우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FTA 재협상을 진행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앞서 마크 루비오 미국 국무 장관은 전세계에 상호관세를 부과한 뒤 양자 무역협정을 새로 체결하겠다는 계획을 언급한 바 있다.

    한미 FTA 재협상에 돌입하게 될 경우 농축산업이 주요 협상 대상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국산 농산물의 최대 수입국인 중국이 미국산 밀·옥수수 등 29개 품목에 15%, 돼지고기·소고기·수산물 등 711개 품목에 대해 10%씩 관세율을 높이는 보복관세를 단행해서다. 미국 내 주요 농산물 생산지인 아이오와 등은 공화당 텃밭인만큼 중국 보복관세로 인한 농축산물 타격을 상쇄하기 위해 한국 등에 농축산물 수입 개방을 강하게 압박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의 25% 상호관세 부과로 한미 FTA는 사실상 휴지조각이 돼 버렸다"며 "미국이 FTA 수정 혹은 재개정을 요구할 수 있는 만큼 우리나라도 기민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우리나라는 EU·중국과 체급도 다르고, (미국과) 안보 관련 문제로 긴밀히 연결돼 있어 보복관세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며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미국의 요구가 무엇인지, 어디까지 수용할 수 있는지 빨리 진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주장하는 한미 무역수지 불균형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는 줄곧 한국과 무역수지 적자를 문제 삼아왔다"며 "대미 수출을 줄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맞지 않으므로, 수입을 늘려서 무역수지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 국가별장벽보고서에서 나온 '30개월령 이상 소고기 수입 제한', '정밀 지도 유출 문제' 등 미국이 불만을 제기하는 부분에서 한미 상호 간 합의점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