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혜경 숨비아일랜드 대표 인터뷰제주도 해녀 상징화 한 '숨비' 캐릭터로 인기"숨비를 통해 숨 쉬었던 시간, 장소 추억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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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홍수의 시대. 매일 무수한 브랜드들이 새로 등장하고 조용히 사라지기도 합니다. 척박한 사업 환경과 무한경쟁 속에서 신생 브랜드가 단단히 뿌리 내리고 싹을 틔울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브랜드의 탄생'에서는 작지만 강한 힘을 지닌 한국 브랜드들을 소개하고, 브랜드 고유의 크리에이티비티와 무한한 가능성을 공유합니다. <편집자주>로컬 브랜드는 로컬이라는 정체성을 통해 차별화된 브랜드 평판을 얻은 지역 기반의 기업이다. 제주의 기념품이 다양해지고 있다. 제주는 돌, 바람, 여자가 많다고 해서 삼다도라 불린다. 특히 해녀는 제주를 상징하는 대표적 아이콘이 됐다.브랜드브리프는 최근 제주시의 한 카페에서 천혜경 '숨비아일랜드' 대표를 만나 회사의 철학과 비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숨비아일랜드는 10년 전 '숨비'라는 이름의 해녀 캐릭터를 선보였고 이후 '숨비'라는 브랜드를 기반으로 한 화장품, 생활용품 등을 제조, 판매해오고 있다.'숨비'는 '숨을 참고 물 속으로 잠겨 들어가다'는 의미를 갖는다. '숨비 소리'는 해녀들이 물 속에서 숨이 턱까지 차오르면 물 밖으로 나오면서 내뿜는 소리를 뜻한다.'숨비'라는 캐릭터가 어떻게 등장하게 됐는지 물었다. 천 대표는 17년 간 교직 생활을 하다 숨이 막혀 제주도에 내려와 정착했다고 했다. 제주도는 그에게 숨비 소리를 내는 공간이었다."처음 특수 교사를 시작할 때는 아무 것도 모르고 막연하게만 생각했어요. 안산 서초등학교에 처음 발령을 받아 가자 마자, 학생에게 흠칫 두들겨 맞는 일이 생겼죠. 알고 보니 특수 교사들이 학생에게 맞는 일은 흔한 일이었어요."그렇게 교직 생활을 이어오던 천 대표는 2006년 갑상선 암 진단을 받았다. 암 수술을 받은 직후 바로 학교로 복귀했다.그는 "교사는 공무원이다 보니 휴직 제도가 있다. 그런데 지나치게 성실한 성격인데다, 학교에서 눈치도 보여 암 수술을 받은 후에도 권리를 쓸 생각을 못 했다"며 "그러던 중 아버지가 큰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를 절단하셨다.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서 휴직을 하고 제주도로 오게 됐다"고 회상했다.천 대표는 1년 휴직을 한 후 7살 된 아이를 데리고 제주로 내려왔다. 제주를 걷다 보면, 마치 숨을 쉬는 것 같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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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는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안 해 보던 일을 했다. 서귀포시 이중섭 거리에서 3개월에 1번씩 열리는 플리마켓에 참가한 것이다. 제주올레 길동무(안내 및 해설사) 양성 과정을 들으며 해녀 문화에 대해 배웠고, 이를 계기로 해녀 인형을 만들기 시작했다. 손바느질로 만든 뭉툭한 해녀 인형을 플리마켓에서 팔기 시작했다. 그가 손으로 만든 해녀 인형은 예상 외로 인기를 얻으며 팔려 나갔다. '숨비' 캐릭터는 그렇게 탄생했다.천 대표는 이후 제주로 전출 신청을 했다. 그 후 특수학교인 서귀포 온성학교에서 5년 더 일하다 퇴사했다. 플리마켓에서 취미로 팔던 숨비 인형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이중섭 거리에 비어 있던 공간을 빌려 매장을 오픈했다. 이어 아모레퍼시픽 브랜드 매니저로 일하던 남편도 제주로 내려와 또 다른 로컬 브랜드를 열었다.특수교사에서 사업가로 전직하게 된 천 대표는 이후 승승장구의 길을 걷게 됐다.2013년 숨비아일랜드를 설립했고 숨비는 2014년 주에서 개최된 전국 체전 선수단 기념품으로 선정됐다. 이듬해 숨비아일랜드는 해녀박물관 기념품샵에 입점했다. 2016년과 2017년에는 제주도 관광기념품 공모전에서 수상을 했고 2018년 아시아 CGI애니메이션 센터 입주 기업으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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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대표는 최근 또 한 번 멈춰 숨비 소리의 시간을 갖고 숨비아일랜드를 재정비하고 있다.그는 "사업이 커지면서 매장과 직원 관리도 해야 하는데 저는 그런 능력이 없었다. 일이 벅차서 이번 달부터 오프라인 매장을 정리하고 온라인 쇼핑몰로 전환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며 "숨비 캐릭터 기반의 홍보물과 콘텐츠 제작 요청들이 있어서 그런 작업으로의 전환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천 대표는 "제주 기념품 시장은 많이 변화했다. 과거에는 돌하루방 일색이었지만 10년 전부터 개인 작가들이 만든 감성 캐릭터 기념품들이 인기를 얻었다"며 "최근에는 대형 캐릭터 샵, 대기업 캐릭터 중심으로 바뀌었다"고 전했다.천 대표는 숨비라는 명칭은, 직장을 그만 두고 제주에 놀러 왔던 대학교 친구가 붙여 준 이름이라고 했다. 천 대표의 카톡 프로필에는 숨비 캐릭터와 함께 "오늘 하루도 욕심 내지 말고 딱 너의 숨만큼만 있다 오거라"라는 문구가 써 있다. 지금은 문을 닫은 숨비 카페를 방문한 누군가가 메모지에 남겨 놓은 그림과 문구라는 설명이다.천 대표는 "제품 구매와 상관 없이 숨비를 기억하고 다시 찾아 오는 고객들을 보면 눈물나게 고맙다"며 "숨비를 통해 숨 쉬었던 그 시간, 그 장소를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