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서 임명돼 '미운털'… 5월 이후 각종 행사에서 에둘러 배제元 "공공기관장, 임명한 정권과 같이해야"… LH·코레일·도공 등 사퇴·해임"기관장은 조직 먼저 생각해야" 용퇴론도 제기… 내년 2월까지 불편한 동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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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산하 공공기관장의 불편한 동거가 지속되고 있다. 원 장관은 해당 기관장에 대해 에둘러 사퇴를 압박하며 무시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중이다. 이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어쨌든 임기 끝물인 기관장에 대해 장관이 '왕따'를 시키는 게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의견과 기관장으로서 개인의 사정보다 조직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25일 국토부와 철도업계에 따르면 원 장관과 국가철도공단(KR) 김한영 이사장의 관계가 매끄럽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 장관이 참석하는 주요 철도 관련 행사마다 김 이사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국토부는 지난 21일 새벽 서울 강남구 수서역 SRT 승강장에서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A노선에 투입될 운영 차량에 대한 최초 시승행사를 진행했다. 이날 시승식에는 원 장관을 비롯해 현대로템과 한국철도기술연구원 관계자 등이 모인 가운데 철도공단에선 김 이사장 대신 부이사장이 참석했다. 윤석열 정부의 교통공약이 사실상 GTX뿐이고 실제로 운영할 차량을 최초로 시승하는 자리여서 가벼운 행사는 아니라는 게 철도업계 안팎의 공통된 시각이다.원 장관과 김 이사장의 불편한 거리 두기는 지난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5월10일 원 장관은 GTX C노선 창동역을 찾아 지역주민들과 해당 구간 지하화와 관련해 간담회를 진행했다. 원 장관은 간담회에서 "(지상화로 변경됐던 사업계획이 원래대로 지하화하게 된 데는) 윤석열 대통령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결단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라고 설명하며 이날 현장방문의 의미를 부각했다. 간담회에는 현대건설 사장과 도봉구청장, 지역주민 등이 함께했다. 철도공단에선 이번에도 부이사장이 참석했다.6월12일 대전지방국토관리청에서 열린 불법하도급 단속 관계기관 간담회에도 김 이사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이날 간담회에는 원 장관과 5개 지방국토관리청장,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 한국도로공사 사장, 민간 전문가 등이 자리했다. 철도공단에선 부이사장이 모습을 보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철도업계 소식통은 "(국토부가) 관련 행사에 (김 이사장 대신) 부이사장의 참석을 요청한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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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에선 일단 김 이사장이 전임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됐다는 점에서 미운털이 박혔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원 장관은 지난 7월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공공기관의 수장은 임명한 정권과 (운명을) 같이 하는 게 맞는다고 본다"면서 "공공기관 경영 또는 정책 업무 진행 과정에서 정무적 상황도 발생하는데, 국정철학과 다른 공공기관 수장과는 소통 단절 등의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말했다.현재 국토부 산하 공공기관 중 전 정권에서 임명한 수장은 김 이사장과 윤형중 한국공항공사 사장, 권용복 한국교통안전공단(TS) 이사장 등이 대표적이다. 앞서 LH와 한국도로공사,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인천국제공항공사,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사장 등은 임기가 남은 상태에서 중도 사퇴하거나 해임됐다. 철도업계 한 관계자는 "(원 장관이) 김 이사장을 기관장으로 대우하지 않고 사실상 무시하는 것은 (자리에서) 나가라는 얘기와 진배없다"고 말했다.일각에선 철도공단이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 60억 원을 들여 발주한 '전환기의 철도중심 교통체계 정립방안' 연구용역 논란도 김 이사장의 입지를 좁히는 데 한몫했다는 견해가 나온다. 해당 용역은 철도정책 발굴의 시급성과 연구성과의 조기 도출을 위해 용역 규모를 28억 원으로 조정하고 연구용역 기간도 단축하면서 일단락됐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전국철도노동조합이 감사원에 청구한 국민감사도 기각됐다. 하지만 연구용역 발주 비용의 타당성과 용역의 내용이 공단의 업무 소관인지 등을 두고 뒷말이 무성했던 것도 사실이다. 국토부가 추진하는 제5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 수립 용역과 관련해 철도공단의 2단계 연구용역이 보류된 것도 이를 방증한다.그러나 일각에선 사건·사고 등 명확한 귀책 사유가 없는 상황에서 실질적인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기관장을 일국의 장관이 대놓고 물 먹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세종관가 한 관계자는 "비단 철도업계뿐만 아니라 국토부 산하 공공기관 사이에서 원 장관과 김 이사장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일 것"이라며 "(그래도) 장관이 공공기관장을 대놓고 왕따시키는 게 좋은 건지는 모르겠다"고 밝혔다. 김 이사장의 잔여임기는 내년 2월14일까지다.김 이사장의 용퇴를 바라는 목소리도 없잖다. 철도업계 한 종사자는 "김 이사장이 불편한 상황에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공공기관장은 일반 직원이 아니다. 개인의 사정보다는 조직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안 나가고) 버틸수록 조직에 해가 된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자신만 생각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질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