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여성 리더로 의료정책 설계하다 초심 지키려 태백行약속 지키려는 책임감=신념… 환자들과도 신뢰감 형성 주력대장암 앓으며 잠시 벗어놨던 가운 입으니 '행복감'
-
의사 김선민은 화려한 경력을 뒤로 하고 초심으로 돌아갔다. 지난해 3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원장직에서 내려온 이후 의사를 구하기 힘들어 4번이나 공고를 내야 했던 곳에 원서를 넣었다. 지난 9월부터 근로복지공단 태백병원 직업환경의학과에서 새 삶을 살고 있다. '지방, 공공의료를 살려야 한다'라는 말뿐인 약속이 아니라 이를 지키기 위해 직접 행동했다."좀 늦어서 미안합니다. 집에 큰일이 있어서 정신이 없었습니다."최근 본보와 만난 김선민 전 심평원장·현 태백병원 직업환경의학과장은 애초에 정한 약속 장소와 시간을 급작스럽게 교체해 달라고 요청했다. 인터뷰 진행 과정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기에 별다른 생각 없이 받아들였고 그는 10분 정도만 늦었다.평소와 달리 웃고 있으면서도 표정이 계속 굳어있던 터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자 며칠 전에 모친상을 당했다고 했다. 장례를 치르고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또 맘도 추스르지 못한 채 인터뷰 약속을 지키려 한 것이다.그는 부고 상황에 무지했던 기자를 부끄럽게 했지만 한편으론 크든 작든 약속에 대한 책임감이 신념으로 자리 잡은 인물임을 재차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이는 의사로서 환자와의 신뢰 형성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화려한 수식어 이면에 본질은 '환자'서울의대 출신의 의사 김선민은 통상 의사들이 선택하는 대학병원 교수나 개원의가 아닌 공공의료 분야에서 일했고 화려한 이력을 갖고 있다. 첫 내부승진 심평원장에 올랐고 세계보건기구(WHO) 수석기술관으로 일했다. OECD 의료의 질과 성과 워킹파티에서 여성 최초이자 아시아계 최초로 의장을 맡았다."의사 가운을 다시 입고 월~금 태백에서 일하고 잠시 서울 집에 왔다가 일요일 태백으로 향하는 일정. 어떤 목적이 있냐고 다들 궁금해하시는데 심플합니다. 의사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일자리를 찾은거죠. 제가 원하는 일이었으니까요."올해 환갑을 맞은 그가 경력을 앞세운 근사한 자리를 욕망하지 않고 초심으로 돌아가 지역, 공공의료에 기여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는 것은 경력만으로 보면 의아하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시기에도 숨겨진 소수자의 애환이 서려 있었다.1982년 서울대 의대에 입학한 그는 본과 3학년 어느 날 심한 복통을 느꼈다. 담관낭종이었다. 간에서 만들어진 담즙을 십이지장까지 옮기는 담관에 문제가 생긴 병이다. 담관 패쇄로 인한 수술도 받았다.투병 생활을 하며 의대 본과와 인턴 생활을 마쳤고 건강과 체력을 고려해 환경의학 분야에 지원해 공중보건과 산업공단에서 환자들을 돌봤다. 또 마흔을 앞둔 2003년엔 대장암 3기를 진단받았다."대장암 판정을 받고난 직후 꿈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죽음이라는 절벽이 눈앞에 있었죠. 나이와 암세포 검사 결과 등을 종합하면 5년 생존율은 50% 남짓이었습니다."'아픈 의사'의 삶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 장면에서 몇 해 전 방영했던 의학드라마 '라이프'에 등장하는 의사 예선우의 모습이 보인다. 신체적 한계 때문에 병원이 아닌 심평원에서 일하는 의사의 모습이 그려진다. 의사 김선민은 그 캐릭터의 모델이었다.그가 빛나는 성취를 이뤄낸 이면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환자로서의 고통이 있다. 이 감정은 고스란히 인생 2막을 시작하는 지표가 됐다. 지금은 주로 광업소에 근무하다 진폐증을 앓고 있는 환자의 산재 판정 등을 진행하고 있다."제 삶은 운이 좋았습니다. 내가 받은 행운은 언제나 사회로 되돌려 줘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죠. 태백병원에서 환자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행복합니다."지역의 공공의료를 담당하는 '찾기 쉬운 의사'로 자리를 잡은 그는 책도 펴냈다. '아픈의사, 다시 가운을 입다'를 출간했다. 이 책은 아픈 의사 김선민이 꿈꾸는 세상에 대한 제안이자 여성들에게 보내는 응원, 그리고 소수자와 약자들에게 전하는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