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가 80~90% 공급에 가스공사 재무위기 심화도시가스 미수금 13.5조… 작년 순손실 7474억인상 가능성 남아… 인상 폭·시점 부처간 조율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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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그간 소폭 인상 여부를 저울질했던 민수용 도시가스 요금에 대해 1일 인상을 일단 보류했다. 미수금(못 받은 돈)이 약 14조원에 달하는 한국가스공사의 경영 상황을 고려하면 요금 조정이 절실하지만 물가에 대한 서민부담 등 외부변수가 많아 무리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가스공사의 재무위기가 심각한 상황을 고려해 민수용 도시가스 요금의 인상 폭과 시점을 재정 당국과 논의하고 있는 중이다.
가스요금은 통상 원료비 등을 정산해 홀수달 1일자로 조정한다. 하지만 공공요금 인상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이달 1일자의 인상은 무리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가스공사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국제 에너지 위기 이후 원가의 80∼90% 수준인 MJ(메가줄)당 19.4395원으로 공급하고 있다.
문제는 가스요금 정상화가 지체되는 동안 가스공사의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가스를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다. 원가 미만으로 가스를 공급하면서 가스공사의 재무 안정성이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
가스공사에 따르면 올해 3월말 미수금은 13조5000억원으로 현재 유가 수준이 지속되더라도 연말에는 14조원을 초과할 것으로 봤다. 2021년보다 차입금은 13조원 증가했고 부채비율은 104%p(포인트) 상승했다. 지난해 가스공사의 연결 기준 순손실 7474억원에 미수금을 합하면 가스공사의 재무 위기는 더욱 심각하다.
최연혜 가스공사 사장은 지난 5월 기자들과 만나 "5월 요금 조정을 손꼽아 고대했으나 민생 안정을 위해 동결됐다"면서 "그러나 동절기 안정적인 천연가스 공급을 위해 조속히 요금 인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면서 "낮은 원가 보상률로 인해 현재 차입으로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면서 차입에 따른 이자비용만 하루 47억원에 달하는데 이자비용 증가는 다시 요금 상승 요인이 돼 국민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전기요금 주무 부처인 산업부의 안덕근 장관도 지난 5월 기자간담회에서 "전기·가스 요금 정상화는 반드시 해야 하고 시급하다"면서도 "물가가 오르는 상황에서 산업에 대한 부담이 커 인상의 적절한 시점을 찾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물가 당국인 기획재정부는 가스 요금 인상에 대해 신중한 모습이다. 가스 요금 인상은 국민과 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큰 데다 최근 안정화 추세에 접어든 물가상승률에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정부는 전 부처가 물가 안정을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두고 2%대 물가 조기 안착을 위해 힘써왔다. 통계청에 따르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4∼5월 연속으로 2%대 후반에서 안정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다만 정부는 "가스공사의 재무 상황과 가스요금 인상 여부 등에 대해서는 계속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수십조원이 넘는 미수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원가 이하의 가스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조만간 인상 가능성에 대한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이다.
정혜정 KB증권 연구원은 "올해부터는 유가 및 LNG 가격이 안정화되고 공공요금 조정의 주요 고려요인 중 하나인 물가상승률이 3% 이하로 낮아져 민수용 도시가스 요금의 정상화를 기대할 수 있는 시점"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