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첨단산업 100조 금융지원 추진"신청했다" vs "사실무근" 반복산은 자본금 확충 전으로 아직 미가동금리할인 -1%p 매력도 떨어져
  • 정부가 꺼낸 17조원 규모의 반도체 금융 지원 프로그램을 두고 눈치싸움이 치열하다.

    수십조원을 지원금으로 뿌리는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초라한 지원책이지만, 투자 경쟁에 돌입한 반도체 업계로서는 '가뭄의 단비' 같은 자금이라는 게 업계 평가다. 다만, 정부 자금을 선뜻 받아가는 것이 부담스운 것도 사실이라 당분간 관망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KDB산업은행은 이달부터 17조원 규모의 반도체 산업 저리 대출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산은은 오는 2027년까지 주요 첨단산업에 550조원 이상의 설비투자를 추진 중인 정부와 발맞춰 100조원 수준의 시설자금을 부담한다는 계획이다.

    자금줄이 마르기 시작한 반도체 업계에 등장한 자금 17조원을 기업들은 눈여겨 보고 있다. 산은은 대기업의 경우 0.8~1%p 우대금리를 제공하는데 이를 적용하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받을 수 있는 금리는 연 3.5% 수준이다. 이는 삼성전자가 지난해 삼성디스플레이를 통해 21조9900억원을 빌리며 약정한 연 4.6%보다 훨씬 싸다.

    업계 안팎에서는 삼성전자가 5조원, SK하이닉스가 3조원 가량의 대출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두 곳 모두 산은 대출과 관련해서는 '확정된 바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산은 역시 대규모 대출 요청설에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 ▲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전경ⓒ뉴데일리DB
    ▲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전경ⓒ뉴데일리DB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자금공급이 시급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삼성전자는 2022년 47조원, 2023년 48조원 등 연간 천문학적인 설비 투자를 쏟아붓고 있다. 현재 평택캠퍼스에 건설 중인 반도체 생산시설 투자금액만 20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SK하이닉스의 올해 설비 투자 예상액은 13조원으로 전년대비 2배 가까이 커졌다. 또 공사를 시작한 청주 M15X 공장에 들어갈 돈만 20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특히 사업 리밸런싱에 들어간 SK그룹 입장에서도 SK하이닉스에 자금이 수혈되면 그룹 포트폴리오 재편에도 도움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상황에도 돈을 빌리려는 쪽이나 빌려주는 쪽 모두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재계 관계자는 "자금이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정부 자금을 덜컥 받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다"라며 "사업 개편에 정부 입김이 작용할 수 있고 시장에 부정적 시그널로 비춰질 수도 있다"고 했다.

    실제로 산은은 과거 자금 지원을 계기로 기업들에게 각종 담보를 요구하거나 까다로운 부대조건을 내걸었다. 자금조달 계획서를 깐깐하게 요청하거나 오너 일가의 고통 분담을 요구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입장에선 1%p 그친 금리 프리미엄이 매력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17조원을 모두 빌려간다해도 금리 1%p 우대라면 연간 150억원 가량의 이자가 절감된다"며 "두 기업의 매출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라고 했다.

    업계에서는 두 기업이 당분간 관망하다가 구체적인 요건이 확정되면 본격적인 접촉을 시작할 것으로 내다본다. 당장 이번 금융 프로그램을 뒷받침하는 산업은행 증자는 내년에야 이뤄지기 때문에 올해까지는 산은 자체 재원으로 운영되는 점도 고려될 것으로 보인다.

    산은 관계자는 "이번 금융 프로그램은 대형 종합반도체 기업 외에도 반도체 설계, 패키징, 테스트와 같은 개별 공정 수행 기업까지 전 영역에 대해 지원할 계획"이라며 "특정 기업과에 공급하는 한정된 재원은 아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