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 "6개월 당겨달라"SK하이닉스 "준비중 … TSMC 협력 공고히"삼성전자 "내년 하반기 양산 … TSMC 협력 가능성"
  • ▲ SK하이닉스의 HBM3E.ⓒSK하이닉스
    ▲ SK하이닉스의 HBM3E.ⓒSK하이닉스
    고대역폭메모리(HBM) 승부처가 5세대 HBM인 HBM3E에서 6세대 제품 HBM4로 향하고 있다. 현재는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에 최신형 HBM을 독점 공급하며 생태계를 이끌고 있지만 삼성전자가 추격에 성공할지 관심이 쏠린다. 

    5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전날 ‘SK AI 서밋(Summit) 2024’에서 5세대 HBM3E 16단 제품 공급을 가시화하는 동시에 6세대 HBM4 제품의 개발을 앞당길 것을 시사했다. 

    이날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협력으로 만들어가는 인공지능(AI) 생태계’ 기조발언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회동했을 당시를 회상하며 “황 CEO가 6세대 HBM4 일정을 6개월 당겨달라고 요청해서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을 쳐다봤는데 ‘한 번 해보겠다’고 대답하더라”며 HBM4 공급을 6개월 앞당기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AI용 메모리반도체 HBM 수요가 급증하면서 차세대 HBM 개발 속도도 빨라지는 분위기다. HBM은 메모리 반도체인 D램 여러 개를 수직으로 쌓은 제품이다. 데이터가 오가는 도로로 비유되는 대역폭을 크게 늘려 AI와 같은 대규모 연산이 가능하다. 적층 난이도에 따라 1세대(HBM)-2세대(HBM2)-3세대(HBM2E)-4세대(HBM3)-5세대(HBM3E) 순으로 개발됐다. 

    업계에서는 HBM4가 HBM 시장의 판세를 뒤집을 승부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픽처리장치(GPU)로 사실상 AI 반도체 시장을 독식하는 엔비디아가 차세대 AI 가속기 ‘루빈’에 6세대 HBM인 HBM4를 다수 탑재할 것이라고 밝히면서다. 

    지난 6월 젠슨 황 CEO는 대만에서 열린 정보기술(IT) 전시회 컴퓨텍스 타이베이 기조연설에서 2026년 6세대 HBM을 탑재한 루빈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루빈에는 HBM4 8개, 루빈 울트라에는 HBM4가 12개가 탑재된다. 기존 블랙웰의 HBM3E보다 더 많은 양의 HBM4가 들어간다. 이에 HBM4를 먼저 공급하는 회사가 차세대 HBM 시장 주도권을 쥘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모두 내년 하반기 HBM4 양산을 계획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현재 5세대 HBM3E 12단까지 개발을 끝낸 상태다. 8단은 지난 3월 엔비디아에 업계 최초로 납품했고, 12단의 경우 지난 9월 세계 최초로 양산을 시작해 올해 4분기 중 출하를 계획하고 있다. HBM3E 16단은 내년 초 샘플을 공급할 예정이다. 오는 2026년 출시 예정이던 HBM4 12단 제품은 개발 일정을 앞당겨 내년 하반기에 출하할 계획이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은 전날 ‘SK AI 서밋’에서 “차세대 제품인 HBM4부터 16단 제품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는 것에 대비해 기술 안정성을 확보하고자 48기가바이트(GB) 16단 HBM3E를 개발 중”이라며 “내년 초 고객에게 샘플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HBM4부터 TSMC와 베이스 다이 관련 ‘원팀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제품을 공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HBM4에서도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에 단독 공급에 성공한다면 단순 계산으로 내년 HBM으로만 25조원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벌어들일 수 있게 된다. HBM은 영업이익률이 50%가 넘는데 내년 엔비디아로 가는 HBM 매출만 50조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추격하는 삼성전자도 엔비디아향 HBM4 개발·공급에 사활을 걸고 있다.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에 HBM4를 공급할 수 있다면 HBM3E 시장에서 못다 이룬 실적을 충분히 만회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집적도를 크게 높인 차세대 HBM4로 기술 주도권을 되찾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삼성전자는 필요한 경우 파운드리 경쟁자인 TSMC와의 협력 가능성도 열어뒀다. 자사 파운드리 사업부를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로서는 이례적인 결정이다. 

    HBM4부터는 베이스 다이에 고객 요구에 맞춘 기능을 넣기 위한 공정을 추가하는데 이때부터 파운드리 공정이 더 중요해진다. 당초 자사 파운드리 공정으로 HBM4의 로직다이를 만들 계획이었으나 고객사 요구사항을 반영하기 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그간 삼성전자는 파운드리·메모리·패키징을 모두 맡는 일괄제조(턴키) 전략을 앞세워왔다.  

    지난달 31일 삼성전자 3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HBM4는 내년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복수 고객사와 맞춤형(커스텀) HBM 사업화를 준비하고 있으며, 고객의 요구사항을 만족하기 위해 제조 관련 파운드리 파트너 선정은 고객 요구를 우선으로 해 외부·내부 관계없이 유연하게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