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악마화보다 무서운 건 품격의 상실 국회 청문회 태도로 막말 논란 도마 환자 볼모 투쟁의 정당성은 없어대국민 사과 이후 현실적 대안 찾아야
  • ▲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장. ⓒ이종현 기자
    ▲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장. ⓒ이종현 기자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을 향한 세상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막말은 독이 됐고 젊은 의사들의 저격은 급소를 찌르고 있다. 명분을 잃은 수장의 자리는 위태롭다. "전공의와 의대생, 털 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주장에 힘이 빠졌다. 

    의사에게 있어 악마화보다 무서운 건 상실된 품격이다. 훼손된 이미지는 되돌리기 어렵다. 시간이 갈수록 존경과 신뢰는 사라질 것이다. 이는 더 이상 환자가 예전의 '의사 선생님'으로 바라보지 않는 시선과 일치한다. 이 지점에서 젊은 의사들이 등을 돌렸다. 

    사실 임 회장은 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직을 수행했을 때도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그는 정부로부터 통제받는 의사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노력했고 투표권을 가진 의사들이 그를 선출했다. 여기엔 전문가단체가 아닌 이익집단을 대표해 투쟁체로만 작동하라는 의중이 담겼다. 

    과거부터 과격한 행보에 의료계 내부에서 논란이 있었지만, 경험이 쌓이면서 그는 강성으로 거듭났다. 그러나 위치가 달라졌고 환자 피해와 직결되는 상황과 맞물리자 흔들리기 시작한다. 발언 하나하나가 비수가 돼 돌아왔고 의료대란의 대표적 인물로 지목된다. 

    최악은 지난달 열린 국회 청문회에서의 태도였다. 생사의 영역에서 고통받는 환자를 향한 사과 대신 '정부 탓'이라고 했고 전공의와 의대생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답변을 내놨다. 사방을 공격한 막말의 이유를 '표현의 자유'라고 했다. 의사를 대표하는 자의 독선적 표현이었다. 
     
    그러자 의대생들은 "의료계 지위를 실추시키고 학생들의 목소리를 훼손했다. 무능과 독단의 의협회장은 의료계를 멋대로 대표하려 하지 마라"고 했다. 앞서 전공의 대표는 "말보다 일을 하라"며 일침을 가했다. 

    "젊은 의사를 지키겠다"고 했지만 당사자들이 거부하면서 전제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투쟁을 위해 만든 의협 산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도 의미가 퇴색됐다. 단체의 수장의 믿지 못하는 구조에서 일치된 의견이 나올 리 없다. 

    임 회장이 우선 해결해야 할 부분은 우리나라에서 의사라는 직업의 가치가 존중받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젊은 의사들이 가진 두려움의 근본은 '기득권에 함몰된 집단'이라는 편견을 안고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투쟁만을 외치다 국민을 향한 설득과 이해가 빠진다면 과거 의사와 앞으로의 의사는 그 개념 자체가 크게 달라지는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다. 생명을 볼모로 파업한 의사들에 대한 시선을 더 가혹해질 수밖에 없고 이는 소송 난립의 부작용을 맞이하게 된다.

    '의대증원 십상시'를 논한 것을 반추해 평판에 부합하지 않는 행보를 응원하는 주변 인물과 분위기를 견제할 필요가 있다. 2020년 9.4 의정 합의 당시 젊은 의사들과 협의가 없었던 최대집 회장 비판론이 있지만, 이때 대국민 공분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점은 지금과 현격히 다르다. 

    현시점 의정 갈등을 내버려 둔 채 투쟁만을 논하다 의사 이미지의 추락과 함께 종결되는 수순을 밟는 것은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다. '감옥 갈 각오'로 대응했고 모든 의사를 대표해 각종 비난을 받아냈지만, 결국 임기 시작 두 달 만에 곳곳에서 불신임이 거론되는 이유다. 

    윤석열 정부는 과거 어느 정부보다도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기에 2025년 의대증원은 번복이 어렵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대국민 여론이 힘을 받치고 있으니 의료계가 원하는 바를 얻어도 승리의 전리품 역시 협소할 것이다.

    임 회장의 결단이 필요하다. 전향적 변화를 통해 분위기를 반전시켜야 한다. 시급한 부분은 의대증원 백지화가 아니라 훼손된 의사에 대한 인식을 바로 잡는 것이다. 막말 이면에 숨겨진 그의 순수성을 믿는다. 

    대국민 사과를 통해 의료대란 장기화의 책임을 통감하고 필수의료 현장에서 버티는 의사들이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알려 그간의 일을 이해시켜야 한다. 투쟁은 멈추고 대화의 장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 이후 국가 통제 하의 저수가 구조 개선을 위한 방향성을 만들어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대책이다. 지금도 환자들은 생명에 두려움을 느끼며 의사를 향한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이대로 마무리되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