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증원 갈등 탓에 필수의료 포기한 시대 전공의 없는 병원 만들려면 '인력 보강'이 전제제도권서 배제된 한의사 역할 강화 수술도 못 하는 상황 '외국의사 도입' 불가피 의료대란 장기화 특단 대책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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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상윤 기자
    [편집자주] 전공의 복귀도 없고 의사 배출도 이뤄지지 않아 한국의료의 붕괴가 시작됐다. 당장 우회로를 열지 않으면 환자들은 갈 곳이 없어지고 병원은 문을 닫아야 한다. 의료대란은 중장기적으로 이어질 전망으로 이대로면 환자를 살릴 기회가 줄어든다. 2025학년도 의대증원 1509명이 확정됐다는 사실 하나에 모든 것이 무너지기 직전이다.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는 문장은 "필수의료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바뀌었다. 환자만 희생양으로 남겨졌다.

    30일 의료계에 따르면 하반기 전공의 모집 마감 하루 전인데 여전히 지원자는 전멸 수준이다. 권역 제한이 풀려 지방대병원 전공의도 빅5병원에 지원이 가능하지만 유인책이 되지 못했다. 

    7700명의 사직 전공의는 구직 전선에 뛰어들었고 통상 급여가 절반 수준으로 내려가도 필수의료를 포기한다는 기조를 세웠다. 의사 수를 늘려 의료개혁을 시도한 정부에게 타격을 입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 불똥은 환자를 향했고 의료대란을 넘어 붕괴 직전에 놓였다. 
     
    매년 신규 의사 배출은 이뤄져야 하는데 이 역시 파멸적 상황에 놓였다. 의사 국가시험 실기시험에 원서를 낸 의대생들은 총 364명으로 전체 응시 대상 인원의 10% 수준에 불과하다. 

    이 중에서도 전년도 시험 불합격자, 외국 의대 졸업자 등을 제외한 의대 본과 4학년 학생 중에서는 전체의 5%에 불과한 159명만 원서를 냈다. 사실상 의사 되기를 포기했다는 의미로 내년부터 인턴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필수의료 교수진들도 조용한 사직을 이어가고 있으며 이를 통제할 방법은 없다. 병원은 환자를 받지 못하니 경영 손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조만간 지방대병원부터 도산 위기에 처할 상황이다. 

    정부는 전공의 없는 병원 가동을 위한 방안을 도출할 계획이나 의료전달체계 개편, PA(진료보조) 간호사 업무범위 확대 등 기존 내용에서 별반 달라진 점이 없다. 특단의 대책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이미 환자의 두려움은 공포로 바뀌었고 응급상황이 발생해도 이를 대처할 여력이 없어지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전공의와 의대생과의 소통 창구를 열어두는 것이 우선이나 의료공백을 방어하기 위한 우회로를 열어야 한다.

    ▲ 한의과 전문의·전공의 영역 확장 … 공보의 처방권 확보

    한의사들은 의료대란 시작과 동시에 의료공백을 막는데 기여하겠다고 입장을 냈다. 그러나 정부는 이들의 활용에 대해 조심스런 입장이다. 내달 발표될 의료대책에서도 빠진 상태다. 직역 간 갈등으로 확장될 소지가 있어 한의사들의 제안은 묵인됐다.

    현 상황에서는 부족한 의사 인력을 대체하는 것이 관건이다. 전공의 없는 병원이 가동되기 위해 모든 업무를 교수진들에게 넘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를 위해 PA 간호사의 업무를 확장하는 동시에 한의사 투입도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한의계의 주장이다.

    국민동의 청원에 올라온 '의사들의 집단휴진으로 인한 의료공백 해소를 위해 한의사 활용 요청'에 따르면 의료법에 근거해 의료인으로서의 면허를 부여 받은 한의사 전문의, 한의과 전공의 등 활용을 강조하고 있다. 

    매년 약 150명 배출되는 한의사 전문의의 경우는 입원환자 관리에 대한 수련을 받았고 한의과 전공의 역시 의료공백에 충분히 대응이 가능하므로 한방병원이 아닌 의과대학 병원에도 투입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정 의과 진료과로 한정하면 전문성은 떨어질 수 있겠으나 통상적 일반의 수준에서의 환자 관리가 이뤄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전공의 빈자리를 채울 인력이 시급한 상황에서는 정부 차원의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대한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양한방 협진 체계는 엄연히 존재한다. 우선 해당 병원들부터 한의사 전문의, 전공의 활용을 통해 의료공백을 막을 모델을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며 "정부의 의지가 있다면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한의과 공보의 역할 확대가 이뤄져야 한다. 현재 의과 공보의 차출로 인해 지역 내에서 한의과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으나 처방권 제한이 발목을 잡고 있다. 

    보건지소보다 규모가 작은 보건진료소에선 간호사, 조산사 등이 26주간 직무교육을 받으면 기초의약품 처방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한의사 공보의는 이러한 권한이 없다. 보건의료 위기 '심각' 단계에서는 4주 정도의 임상실습, 직무교육 후 처방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의협 측은 "모든 정책의 설계가 상급종합병원 역할론에 쏠려 있는데 지역 보건진료소 등 가장 기초가 되는 영역이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며 "의료공백 상황에서 지역, 1차의료의 기반을 형성하는데 주력하고 싶은데 제도적 드라이브가 걸리지 않는 실정"이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 전공의 없는 병원 만들려면 '외국의사 면허 허용' 

    의료대란 시작과 함께 환자단체와 일부 공공병원 교수들은 외국의사 도입을 강조했다. 다수의 의료 선진국 등에서는 의사시장 개방은 자연스런 현상이나 국내에선 성역처럼 방어막이 형성돼 인력난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정부는 보건의료 위기 심각 단계에서 의료공백이 심각할 경우, 외국의사 면허만 있으면 자격을 인정해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의료법 시행규칙(부령) 개정을 추진했다. 현재 공포만을 남겨둔 상태다. 

    복지부는 외국의사 도입을 '마지막 카드'로 여기면서 드라이브를 걸지 못하고 있다. 전공의 없는 수련병원이라는 기형적 구조와 신규 의사 배출이 없는 최악의 상황을 앞뒀기 때문에 의사 수입은 필수 영역으로 거론된다.

    근본적으로 대체 인력이 보강되지 않는다면 어떤 정책이 나와도 대처가 어렵다. 이러한 측면에서 임상 경력을 근거로 외국의사 면허가 있는 내국인이나 재외동포를 의료현장에 선제적으로 투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애초에 의사 문호개방은 의료공백에 따른 제한적 허용 등 단편적 대책이 아니라 제도권 내에 단계적으로 확장돼야 취약한 필수, 공공의료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일부 학자들의 판단이었다. 

    외국의사 도입은 환자들이 원하고 있는 의료공백 대처를 위한 방법이다. 당장 수술이 필요한데 마취과 인력이 없어 무기한으로 미뤄지는 상황은 방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환자들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으며 앞으로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전공의 공백과 교수진 사직으로 환자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고 이를 위해 외국의사 허용은 시급히 시행할 사안"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