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초반 1487.3원까지 급등 … 연일 고점 높여"환율 1500원 넘을 듯" … 산업계 위기감 증폭원재료 가격 천정부지 … 금융 비용 급증 불가피美 투자 계획 세운 韓 기업 비용 추가 부담 전망
  • ▲ 9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연합뉴스
    ▲ 9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연합뉴스
    원/달러 환율이 1500원에 가까워지면서 국내 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고환율로 인한 원자재 수입 가격 상승, 해외 투자 비용 증가 등이 우려돼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관세 부과로 고심이 큰 산업계는 사면초가 상황에 놓이게 됐다.

    26일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이날 원/달러 환율은 미국 관세 정책 불확실성이 더해지며 장초반 1487.3원까지 치솟았다. 장중 기준 금융위기 때인 2019년 3월 16일 1492.0원 이후 최고 수준이다. 

    미국 상호관세가 한국 시각으로 이날 오후 1시 1분 정식 발효됨에 따라 위험 자산 회피 심리가 강해진 것으로 분석된다. 전날 오후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며 관세 논의를 시작했지만 여전이 불확실성이 높다는 평가다. 

    불확실성으로 달러당 환율이 1500원을 넘어설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 국내 산업계의 위기감도 증폭되고 있다.
  • ▲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반도체 생산라인ⓒ삼성전자
    ▲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반도체 생산라인ⓒ삼성전자
    반도체 업계 회복세 찬물 붓나

    원·달러 환율 급등에 따른 딜레마로 골머리를 앓는 대표 업종은 반도체다. 반도체 업계는 환율이 오르면 당장은 제품을 더 높은 가격에 팔 수 있지만, 길게 보면 수입하는 웨이퍼나 원자재 가격 상승이 수익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는다. 

    예컨대 첨단 칩 제조에 필수인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는 대당 가격이 2억 달러에 달하는데 환율이 높아지면 구매 비용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특히 미국에 대규모 공장을 짓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환율 급등으로 시설 투자 및 반도체 장비와 설비 구입 비용이 증가하면서 투자비가 상당 부분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170억 달러를 들여 미국 테일러시에 첨단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다. SK하이닉스도 39억 달러를 투입해 인디애나주에 패키징 공장을 세울 예정이다.

    중국산 저가 공습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철강업계 또한 고환율 악재가 겹치며 고사 위기에 처했다. 철강재 생산에 필요한 철광석, 석탄 등 원재료를 수입하는데 환율 급등으로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포스코를 비롯한 국내 주요 철강사는 제품을 수출해 벌어들이는 달러로 다시 원재료를 구입하는 방식이어서 중장기적으로 부담을 피하기 어렵다. 철강업계에 따르면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원달러 환율이 10% 오르면 당기순이익이 5830억원, 142억원 각각 감소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 ▲ 대한항공 항공기가 인천공항으로 이동하고 있다ⓒ뉴데일리DB
    ▲ 대한항공 항공기가 인천공항으로 이동하고 있다ⓒ뉴데일리DB
    항공업계 직격탄 … 달러 비용 급증

    외화 비용 비중이 큰 항공업계는 환율 변동이 실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항공사들은 리스비와 유류비, 정비비, 공항 관련비 등 대부분을 달러로 결제하기 때문에 달러가 강세일 경우 그만큼 부담이 커진다. 유가가 올라 유류할증료가 가중되면 소비자들이 해외여행을 미루거나 취소해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실제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연결 기준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외화 관련 손실로 인해 적자 전환했다. 지난해 대한항공도 연결 기준 외화환산손실은 7162억원, 외환차손은 1066억원을 기록했다. 외화 관련 총 손실만 8229억원 수준이다. 

    배터리 업계 역시 리튬, 흑연 등 핵심 원자재의 높은 해외 의존도로 인해 고환율로 인한 악영향이 우려된다. 여기에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이 미국에 배터리 공장 신·증설을 활발하게 하고 있어 강달러로 인한 투자액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정유·석유화학 업계도 달러 강세 국면을 맞으면서 원유 구입 비용이 올라가면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하다. 업계 관계자는 “원유수입 시 은행이 우선 수입처에 대금을 지급하고 일정기간 후 정유사가 은행에 대금을 상환하는 구조인데, 환차손이 발생해 경영환경 악화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유통업계 판매가 인상 불가피

    식품업계 등 유통업계도 고환율로 직격타를 맞을 수 밖에 없다. 국내 식품제조업의 국산 원재료 사용 비중은 31.8%로 밀, 대두, 옥수수, 원당 등 주요 원재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수입 원자재값이 상승하면 제품가격 인상 압력도 커지지만 현실적으로 단기간내 식료품 가격상승으로 반영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수출 호조를 누리던 화장품업계도 긴장하고 있다. 팜유, 글리세린 등 주요 화장품 원료를 수입에 의존하는 만큼 환율 급등이 원재료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수출비중이 높은 조선, 자동차, 기계산업 등의 경우 고환율이 긍정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들 역시 고환율이 장기화될 경우 원가상승에 따른 판매가 상향, 수요시장 위축, 물류비 상승 등 역풍이 우려된다.

    전문가들은 환율 급등이 장기화할 경우 기업 수익성 악화를 넘어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의 중소기업 환율 리스크 분석에 따르면 제조 중소기업의 환차손익 비중은 영업이익 대비 최대 25%에 달하며 원·달러 환율이 1% 오를 때 환차손은 약 0.36%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재계 관계자는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면 달러로 결제하는 수출 비중이 큰 기업에는 단기적으로는 유리할 수 있지만, 대부분 기업은 원자재 가격 상승과 해외 투자 비용 증가로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