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Cannes Lions 참관기①성민정 중앙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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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라이언즈 행사가 개최된 팔레 데 페스티벌 (Palais des Festivals)은 파란 하늘과 꼬뜨다쥐르의 푸른 바다, 그리고 하얀 백사장을 배경으로 한다. 그림 같은 남프랑스의 풍경 속에서 치열한 경쟁과 진지한 토론, 그리고 세상의 변화를 읽는다는 것은 실로 비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제 71회 칸 라이언즈 (Cannes Lions International Festival of Creativity)가 2024는 6월 17일부터 21일까지 프랑스 칸(Cannes)에서 열렸다. 아직까지도 많은 이의 입에서 일명 ‘칸 광고제 (Cannes International Advertising Festival)’ 로 불리는 이 행사는 이미 2011년부터 ‘광고’ 이상으로 그 도메인을 확장하기 위해 공식 행사 명을 변경했는데,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지금, 그것이 꽤나 발 빠른 대응이었음을 확인하는 동시에 이 행사는 앞으로 어떻게 얼마나 진화할지 참으로 궁금해졌다.2016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행사장을 방문한 필자에게 가장 먼저 눈에 띈 변화는 행사장 주변 해변에 빼곡히 세워진 다양한 스폰서 기업들의 카바나와 항구에 정박된 요트들이었다.비치 중심이었던 과거에 비해 카바나와 요트가 빡빡하게 들어찬 것도 눈에 띄었지만, 가장 큰 변화는 대형 프라이빗 비치 운영 기업들로, 전통적인 광고회사로는 덴츠가 유일했다. 과거 칸의 주인공이었던 광고회사들은 물론 프로그램의 연사와 진행자, 그리고 심사자와 수상자로 여전히 많은 역할을 하고는 있지만, 눈에 띄는 대형 비치나 각종 행사장은 Pinterest, Meta, LinkedIn, Reddit, TikTok, Spotify, Stagwell, Amazon 등이 운영해, 크리에이티브 업계의 지형과 생태계의 변화를 짐작할 수 있었다.그리고 그들이 제공하는 세미나와 토크가 단순히 매체 판매에 그치지 않는 바, 빅테크와 미디어가 크리에이티브 전달 채널에 그치지 않고 실로 크리에이티비티 산업의 주축이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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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몇 년간 화두였던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는 올해도 칸의 무대를 장악했다. 다만, 과거 ‘AI란 무엇인가(what is AI)’에 대한 탐색이 주를 이루었다면, 금년에는 Microsoft나 Google 같은 빅테크 기업들이 자신들의 AI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AI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how to use AI)’의 경향이 강했다. 즉, AI에 대한 막연한 공포나 경계, 거부감이 완연히 줄어들었고, 이미 크리에이티브 업계에서 AI 활용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칸 사무국에 따르면 2024년 제출된 출품작의 12%가 AI를 활용했다고 하니, 실로 AI는 이미 크리에이티비티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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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가장 핫한 세션은 WPP의 CEO인 Mark Read와 X의 Chief Technology Officer인 Elon Musk의 대담 형식으로 진행된 “Exploring the New Frontiers of Innovation”로, AI에 대한 관심과 Musk의 화제성으로 행사장 내 가장 큰 극장인 Lumiere Theater 앞에는 한 시간 전부터 길게 입장 대기 줄이 만들어졌다.내년이 AI에 있어서 획기적인 한 해가 될 것이며, 향후 5년 이내 더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 Musk는 AI의 발전이 사람들이 하는 일을 모두 대신 해 줄 수 있으므로 효율적으로 AI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하며, AI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은 AI를 활용하는 사람과의 경쟁에서 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다소 극단적인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다만 막상 AI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 또는 Musk 다운 파격적 선언이 이루어지지 않은 점은 다소 실망스러웠다.이 날 Musk는 AI와 혁신의 전도사보다는 광고 매체인 X의 경영자로서 칸 무대에 오르지 않았나 싶다. 지난 해 칸을 들뜨게 했던 챗GPT 개발사 OpenAI 세션에서 최고 기술 책임자(Chief Technology Officer) Mira Murati는 AI가 이제 누구나 접근하기 쉽고 특별한 기술 없이도 사용할 수 있는 도구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필자가 기대한 언제, 어떻게, 얼마나 AI가 크리에이티브 생태계를 바꿀 것인가에 대한 ‘AI스러운’ 명쾌한 예측 없이 모호하고 열린 미래를 제시하는 것으로 아쉽게도 세션이 마무리되었다.이외에도 꽤 많은 AI 관련 세미나 가운데 인상적이었던 것은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두 빅테크 기업의 세션으로, 양사 모두 제품보다는 사용자인 사람을 중심임을 강조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이들은 AI는 ‘재화(commodity)’에 불과하므로 “orchestrator”(마이크로소프트) 또는 “difference maker”(구글)로서 사용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또한 AI를 통해 제작 기간 단축과 대량 생산이 가능하며, 소비자 행동 분석을 통한 타겟 맞춤 전략 도출에서부터 실시간 효과 측정에 이르기까지 크리에이티브 프로세스의 거의 전과정을 대신해주기 때문에 사용자는 오로지 크리에이티브 아이디어에만 집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조사와 인사이트 도출에만도 2-3개월, 그리고 전체적으로 18개월이나 소요되는 크리에이티브 프로세스를 획기적으로 단축시킬 뿐만 아니라 실시간 VOC까지 반영하는 것은 모든 마케터의 꿈이 아닐까?이와 더불어 각 사가 시연한 텍스트, 이미지, 비디오를 총망라한 다양한 영역의 AI 프로그램들은 빨리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충분히 유혹적이었다. 그러나 일반 참여자들이 테스트용 PC에서 프로그램을 테스트하는 것을 지켜본 결과,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결과물들이 사용자의 문제인지 AI 프로그램의 문제인지 궁금해졌다.‘AI is not creative, you are’라는 슬로건이 사용자를 주인공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결국 결과의 책임까지도 그 몫으로 돌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AI는 결국 휴대폰 카메라와 같다는 Google의 개발자의 표현이 수긍되었다. 한편 테크놀로지를 바라보는 크리에이티브 전문가들의 시각에는 여전히 기대와 경계가 공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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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The Next Creative Revolution” 세션에서 진행자인 BBH의 Sir John Hegarty는 테크놀로지를 “친구이자 적(both friend and foe)”라고 칭하며 기대와 적대감을 동시에 표현했으며, 같은 세션에서 대담자인 System 1의 Orlando Wood(Chief Innovation Officer)는 타게팅에 기반한 미디어 전략은 ‘스토킹’이라고 냉소했다.그는 기술의 진보가 오히려 크리에이티브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아날로그 정서 충만한 견해를 보였는데, 지난 20여 년 간의 Ad-Tech 황금기 동안 정확한 타겟팅을 통해 브랜드나 제품에 이미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낼 수 있게 됨에 따라 관심이 없는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창출해낼 매력적인 크리에이티브는 고민하지 않는 나태함이 만연한다는 것이다.즉, 소비자 행동에 있어서 ‘관심’ 단계가 생략되면서 새로운 유형의 크리에이티브 도전은 등한시하고, 효율성만을 추구하면서 동질적인 크리에이티브만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크리에이티브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AI는 비슷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하므로 결국 그 산출물은 비슷비슷할 것이라는 AI 부정론자들의 지적과도 유사한 것이기도 하다.Wood는 또한 연 평균 7천 500억 달러 이상의 광고 예산에서 실제 효과가 있는 것은 6%에 지나지 않는다는 다소 충격적인 수치를 제시하며 효율성이 아닌 효과성의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는데, 효율성 중심의 작금의 환경에서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또한 ‘현재 과학이 중요하긴 하지만 크리에이티브 도약을 위해 상상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인문학적 견해 역시 테크놀로지 일변도의 칸 행사장에서 신선한 울림을 던졌다. 하지만 금년도 스포츠와 필름 두 부문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프랑스 오렌지사의 ‘WoMen’s Football’이나 PR 부문의 금상 수상작 ‘VW 70 Years Campaign’처럼 꽤 많은 수상작들은 테크놀로지가 상상을 현실로 구현한 사례들이었다.실로 기술과 상상력의 균형이 마법과 같은 크리에이티브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 황금 비율에 대한 추구가 칸의 미래를 이끌어 가는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싶다. [성민정 중앙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