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한 마리에서 생산되는 햄버거 패티 1200장, 가죽 핸드백 4개 예약 판매 나서예약자의 50%가 최종 구매 포기하면 송아지 '앵거스'의 생명 살릴 수 있는 투표 진행육식·가죽 패션 소비에 대한 도덕적·윤리적 문제 파격적 방식으로 공론화송아지 '앵거스'의 운명은 소비자 손에… 결과 발표는 600일 뒤
  • ▲ 미스치프의 '앵거스' 프로젝트. ©MSCHF
    ▲ 미스치프의 '앵거스' 프로젝트. ©MSCHF
    "햄버거 패티 팩 또는 송아지 가죽으로 만든 고기 모양 핸드백을 팝니다! 송아지 앵거스(Angus)의 운명은 여러분의 투표에 달려 있습니다."

    독창적이고 대담한 프로젝트로 유명한 뉴욕 브루클린 기반의 예술 집단 미스치프(MSCHF)가 이번엔 육식과 관련한 파격적인 사회 실험을 선보였다. '앵거스'라는 이름을 가진 실제 살아있는 송아지의 운명을, 소비자들의 선택에 맡기기로 한 것이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미스치프는 '앵거스'의 운명을 결정짓기 위한 사회적 실험을 위해 '목초를 먹고 자란 소'로 만든 햄버거 패티 3개가 들어있는 400팩을 각 35달러(한화 약 4만7000원)에, '윤리적으로 제작한' 고기 모양의 송아지 가죽 핸드백 4개를 1200달러(약 160만원)에 예약 판매 한다고 밝혔다. 

    미스치프에 따르면 태어난 지 몇 개월 되지 않은 송아지 '앵거스'는 현재 목초지에서 풀을 뜯으며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앞으로 600일 이내에 '앵거스'의 운명은 갈리게 된다. 미스치프 측은 햄버거 패티 팩과 핸드백 예약 구매자의 50%가 최종 구매를 포기하면 '앵거스'는 도축장이나 디자이너의 작업대가 아닌, 뉴욕 주의 한 농장에서 여생을 평화롭게 보내게 될 것이며 모든 판매 수익금은 '앵거스'의 안전한 노후를 위해 사용될 것이라고 공지했다.
  • ▲ 미스치프의 '앵거스' 프로젝트. ©MSCHF
    ▲ 미스치프의 '앵거스' 프로젝트. ©MSCHF
    미스치프가 판매하는 햄버거 패티 1200장과 핸드백 4개는 소 한마리를 도축했을 때 평균적으로 생산되는 양이다. 투표 마감이 600일인 이유는, 소의 평균 도축 시기와 관련 있다. 소의 자연 수명은 약 15~20년이지만, 연하고 부드러운 식감을 좋아하는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대부분의 소들은 생후 600일 안에 도축되고 있다. 나이 든 소는 근육이 발달하고 운동량이 많아 육질이 질겨지기 때문이다.

    미스치프는 이번 '앵거스'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가 매일 식탁 위에서 마주하는 음식과 그 출처인 동물 간의 직접적인 관계를 날것 그대로 드러내면서 많은 사람들이 쉽게 외면해 왔던 문제를 직시하도록 만들고 있다. 또한 제품 홍보 포스터에 고기 브랜드와 가죽 제품 브랜드들이 자주 사용하는 '목초를 먹고 자란', '유기농의', '윤리적으로 제작한'과 같은 문구를 넣음으로써, 그러한 방식은 소비자들의 죄책감을 덜어 줄 상술일 뿐 송아지의 운명에는 어떠한 긍정적 영향도 미칠 수 없다는 점을 꼬집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표면적으로는 '앵거스'를 살리기 위한 1회성 투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햄버거를 먹거나 가죽으로 만든 핸드백을 구매하는 것이 송아지들의 운명을 결정 짓는 투표와 다름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 ▲ 미스치프의 '앵거스' 프로젝트. ©MSCHF
    ▲ 미스치프의 '앵거스' 프로젝트. ©MSCHF
    그렇다면 송아지 '앵거스'가 원래 수명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소비자들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미스치프는 구매 예약자들에게 소 귀에 다는 표식 모양을 본 뜬 '앵거스 토큰(Angus Token)'을 제공한다. 이 토큰에는 '후회의 직인(Seal of Regret)'이라고 씌여진 위변조 방지 스티커가 부착 돼 있으며, 예약 구매 취소를 원할때만 해당 스티커를 뗄 수 있다. 미스치프가 운영하는 '후회의 포털(Remorse Portal)'에 접속한 뒤, 토큰에 붙어 있는 '후회의 직인' 스티커를 제거하면 나타나는 코드를 입력해 사전 주문을 취소할 수 있다. 소비자들의 구매 예약 취소는 곧 '앵거스'의 생명 연장을 위한 투표가 되는 셈이다.
  • ▲ 미스치프의 '후회의 포털' 웹사이트 화면. ©MSCHF
    ▲ 미스치프의 '후회의 포털' 웹사이트 화면. ©MSCHF
    미스치프가 예약 판매한 햄버거 패티 400팩과 가죽 핸드백 4개는 모두 빠르게 완판됐으며, 투표 마감까지 571일이 남은 21일 현재 기준 예약 구매 취소율은 2.5%다. 

    미스치프의 '앵거스' 프로젝트는 단순한 소비자 참여 이벤트를 넘어 일상에서 쉽게 간과하게 되는 도덕적, 윤리적 문제를 공론화 함으로써 이에 대한 깊은 성찰과 행동을 촉구하는 대담한 크리에이티비티를 보여주고 있다.

    육식을 즐기고, 가죽으로 된 패션 제품을 소비하는 것이 동물의 생명에 정확히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직접적으로 인식하게 만들며, 우리가 구매하는 물건이 단순한 제품이 아닌 한 생명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선택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역설한다. 또한, 참여자가 직접 윤리적 선택을 내리게 함으로써 소비자들이 중요한 주체로서 책임감을 갖고 스스로 자신의 가치관과 윤리적 기준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파격적이고 크리에이티브한 접근 방식으로 현대 사회에 묵직한 '한 방'을 날린 미스치프의 이번 사회 실험이 600일 뒤 어떤 결과를 발표하게 될까. 송아지 '앵거스'가 너른 목초지에서 평생 풀을 뜯으며 자신의 수명대로 살아가게 될 지, 다른 소들과 마찬가지로 600일 뒤 햄버거 패티 또는 가죽 핸드백이 될 지는 오로지 소비자들의 선택에 달려있을 뿐이다. 

    미스치프는 전통적인 마케팅이나 예술적 표현의 틀을 깨는 독창적이고 도발적인 프로젝트를 통해 꾸준히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예술과 패션, 테크놀로지, 소비자 문화 등을 결합한 파격적인 작업을 선보이며, 그 과정에서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풍자하며 대중의 관심을 끌고 사회적 논의를 촉발시키고 있다.

    미스치프는 앞서 가수 릴 나스 엑스(Lil Nas X)와 협업해 사람의 피를 넣은 '사탄 신발(Satan Shoes)'을 666켤레 제작 판매해 전 세계적으로 논란을 불러 일으켰으며, 결국 나이키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또한 '아톰 부츠'를 연상시키는 비현실적으로 큰 '빅 레드 부츠(Big Red Boot)'와 현미경으로만 간신히 볼 수 있는 초소형 루이비통 가방, 에르메스 버킨백을 해체한 그 가죽으로 만든 '버킨스탁(Birkinstock)' 등 경계를 넘나드는 도전적인 작업을 통해 예술과 상업, 소비자 문화를 장난기(mischief)있게 풀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