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Cannes Lions 참관기⓶성민정 중앙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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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칸 라이언즈(Cannes Lions) 페스티벌은 인공지능(AI)과 기술 발전, 혁신의 열기로 뜨거웠지만, 그와 대조적으로 올해 행사의 주제는 'Humanity & Humour'였다. 행사 후 발간된 마무리 보고서(wrap-up report)에서도 밝혔듯이 올해 칸은 최첨단 크리에이티비티의 핵심은 여전히 인간애(humanity)와 유머(humour)임을 강조했다.기술의 발전이 효율성(efficiency)의 무한한 확대를 구현하고 있고 많은 미디어 기업이나 빅테크 기업 세션에서 앞다퉈 그것이 증명하고 있는 반면, 칸의 관심은 메시지와 효과성(effectiveness)에 쏠려 있었다. 그리고 꽤 많은 세션에서 'originality, creativity, culture'의 추구라는 표현 하에 알고리즘과의 전투—비록 전면전은 아니지만—가 모의되기도 했다. 예상대로 최근 사회적 화두인 DEI(Diversity, Equity, Inclusion)를 주제로 다양한 사회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또 그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또는 해결했다고 주장하는) 작품들이 수상작 리스트를 휩쓸었는데, 그 가치의 구현은 대부분 AI를 비롯한 기술의 발전에 기인한다는 점도 흥미로웠다.유머에 대한 칸의 지대한 관심은 올해 시상 부문에 'Use of Humour' 카테고리를 신설한 것으로 증명된다. 또한 'Ready to laugh again? The return of comedy' 세션을 행사 일정 중 가장 프라임 타임에 메인 행사장인 드뷔시 극장에 배치한 것으로도 유머에 진심임을 유추할 수 있었다. 이와 더불어 본 카테고리 출품작들의 수상률도 평균 대비 높았다는 점은 추후 칸 출품을 고려하는 크리에이터들이 염두에 두면 도움이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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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티브에 있어 유머의 중요성이나 효과성은 페스티벌 전체에 걸쳐 여러 세션에서 강조됐다. SNL(Saturday Night Live)의 크루이자 코미디언 케넌 톰슨(Kenan Thompson)은 올해 칸 무대에 올라 "재미가 있다면 사람들이 알아서 찾게 되므로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고 유머의 장점을 강조했다. 퍼블리시스(Publicis)는 자사 세션에서 유머 사용 시 이용자의 80%가 해당 브랜드를 재구매할 가능성이 높고, 72%가 경쟁사 대비 해당 브랜드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으며, 63%는 소비액이 증가한다는 자료를 인용하며 유머와 웃음의 효과를 제시하였다. 이와 유사하게 IPA 데이터 역시 유머의 사용이 매출, 시장 점유율, 이익 등 많은 측면에서 효과가 있으며, 특히 소비자 행동이나 습관 변화를 도출하는데 적합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동일 조사에 따르면 프리미엄 브랜드나 B2B 카테고리에서는 유머의 효과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 무작위적인 사용보다는 충분히 브랜드와 시장, 소비자에 대한 조사가 선행되어야 함을 유추할 수 있었다.유머가 소비자의 호감도를 높이고 지갑을 열게 만든다는 것은 전통적인 광고 이론과 연구에서 수 없이 검증된 것으로, 새롭거나 놀라운 사실은 아니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연구의 주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와 더불어 또한 PC(political correctness)주의 확산을 비롯한 복잡한 사회 환경 변화 속에서(누군가를 조롱하고 폄하하는 유머가 적절하다는 것은 물론 아님!) 모두가 공감하는 웃음 코드를 찾아내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에서 생각만큼 쉬운 전략은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도 있다. 기업 리더의 95%는 여전히 커뮤니케이션에서 유머를 사용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최고경영진의 지나친 경직성, 엄숙주의, 센스 부족 탓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같은 칸의 움직임을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inancial Times)는 AI에 대한 위기감의 반증이라고 해석하면서, 유머만은 AI가 인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음을 부각시키려는 시도라고 평가했는데, 과연 칸의 전략이 얼마나 현명한 것이었는지 조만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올해 칸이 추구하는 인간애(humanity)는 프로그램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소설가 제임스 패터슨(James Patterson)의 세션을 비롯해 여러 세션에서 그 어떤 기술적 접근도 뛰어넘는 인간 본연의 스토리 본능을 논하는 스토리텔링이 언급됐으며, 전통적인 Luxury/Lifestyle 부문 그랑프리 수상작인 로에베(Loewe)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전통적인 수공예와 장인의 활용 등은 그야말로 교과서적인 인간미의 추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가장 확실한 점은 주요 수상작이나 각 세션의 주제 상당 수가 사회적 가치, 특히 최근 유행처럼 확산되고 있는 DEI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에 대한 칸의 관심은 거의 십 년이 되어가지만,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브랜드의 사회 문제 해결 의지가 소구됐다.각 부문 그랑프리 작품들만 보더라도 절반을 훨씬 넘는 작품들이 건강, 장애 극복, 환경, 인권, 성차별, 난민 등 실로 다양한 '다양성'과 '포용성' 관련 주제들을 다뤘다. 여성 축구선수에 대한 차별적 고정관념을 지적한 Orange의 'Women’s Football'은 두 개 부문 그랑프리를 수상했으며, AI 음성 분석을 통한 당뇨 진단 기술을 소개한 KVI Brave Fund의 'Voice 2 Diabetes', 트랜스젠더 소비자를 위한 유니레버(Unilever)의 'Transition Body Lotion', 전쟁과 난민을 소재로 한 마스터카드(MasterCard)의 'Room for everyone', 일반인들의 청력 테스트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스펙세이버(Specsaver)의 'The Misheard Version'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즉, 기업과 브랜드들이 본연의 비즈니스 활동을 넘어 사회 구성원으로서 다양한 사회의 문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다양한 방식으로 실현하고 있으며, 칸은 '크리에이티브한 커뮤니케이션'을 넘어서 '크리에이티브한 솔루션'을 아우르고 장려하는 사회적 담론의 장을 추구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비즈니스 활동 이외에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거나 사회적 논쟁과 이슈를 촉발시키고 거대 담론에 참여하기 위한 크리에이티브는 마케팅이나 커뮤니케이션 부서·기능의 영역과 권한을 벗어나는 의사 결정이다. 따라서 칸이 추구하는 크리에이티브는 그야말로 전사적인 의사 결정을 필요로 하는 것이며, 이는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크리에이티브가 아니라 기업과 브랜드의 철학과 방향성 변화를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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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테크놀로지를 '적(foe)'으로 인지하는 전통주의 '기술경계자'들 입장에서는 유감스럽게도 대다수의 작품들은 AI를 비롯한 최첨단 기술 덕분에 그 크리에이티브가 구현될 수 있었다. 가령, 진동으로 전달된 음성 리듬을 통해 언어장애를 겪고 있는 사용자들도 말더듬 현상을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스마트워치용 인공지능(AI) 앱을 소재로 한 삼성의 'Impulse', 딥페이크 기술을 적용해 SNS 상 자녀 신원 노출의 위험성을 지적한 도이치 텔레콤(Deutsche Telekom)의 'Without Consent - A Message From Ella', 그리고 그랑프리 작품 중 언급된 Orange의 사례 등이 모두 이에 해당하며 테크놀로지가 적용되지 않은 작품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울 정도였다.효율성이 아닌 효과성 논의에서 CFO(최고 재무책임자)가 등장하거나 그에 대한 언급이 빠지지 않는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좋은 메시지, 훌륭한 크리에이티브의 임팩트는 여전히 숫자, 특히 매출로 증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맥도날드(McDonald’s), 크래프트 하인즈(Kraft Heinz), P&G(Procter & Gamble), 유니레버 등의 CMO가 CFO와 브랜드 가치나 크리에이티브를 논하는 무대는 사뭇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들 전통적인 마케팅 강자들은 갖은 세상의 변화 속에서도 칸의 무대를 주도하고 있었는데, (끌려 나온) CFO들 역시 비금전적, 무형적 임팩트의 사회적, 비즈니스적 가치를 충분히 납득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브랜드의 'purpose(목적)'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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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브(Dove)의 '리얼 뷰티(Real Beauty)' 캠페인은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는데, 그 긴 시간과 투자는 아름다움에 대한 도브의 진심이 단순한 유행이나 보여주기 차원이 아님을 보여주며, 충분히 진정성(authenticity)을 느끼게 한다. 올해도 도브는 아름다움을 왜곡시키는 필터앱을 반대하는 '#TurnYourBack'과 소셜미디어로 인한 마른 몸매 추구로 인한 섭식장애를 그린 'The Cost of Beauty' 캠페인으로 여러 개의 상을 수상해 그 지속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올해의 엔터테인먼트인'으로 선정된 완구회사 마텔(Mattel)의 CEO를 이논 크라이즈(Ynon Kreiz) 역시 모든 소녀들의 잠재력을 일깨워준다는 바비(Barbie)의 브랜드 purpose에 충실했던 것이 바비를 65년 간, 그리고 마텔 사를 80년 동안 지속시킨 원동력이라고 지적했다.칸은 세상에 대한 관심이 크리에이티브로 분출되는 장이었다. 지난 2016년 칸 라이언즈에서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이 SDGs(지속가능발전목표)를 주제로 한 캠페인을 요청한 이후, 칸의 크리에이티브는 캠페인 밖으로 나와 세상을 바꾸고 문제를 찾아내고 또 그 문제들을 해결하고 있다. 세상을 바꾸는 기술, 세상을 바꾸는 크리에이티브. 칸 라이언즈는 그야말로 모두의 크리에이티브 축제였다. [성민정 중앙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