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건 작성 의사 구속에 … 전방위적 '두둔' 행태피해자 입장 대변할 의료단체 無의사들·의대생 부모들 "돈벼락 맞게 하자" 모금운동까지
  • ▲ 의료계 블랙리스트 작성 혐의로 구속된 모 사직 전공의. ⓒ연합뉴스
    ▲ 의료계 블랙리스트 작성 혐의로 구속된 모 사직 전공의. ⓒ연합뉴스
    환자를 돌보려는 복귀 전공의는 부역자 낙인이 찍혔다. 폐쇄적 의사 집단에서 발을 못 붙이도록 족쇄를 채운 것이다. 압박에 못 이겨 중도 포기를 했다면 회개한 자로 여겨 이름을 빼준다. 참담한 전공의 블랙리스트는 의료공백을 키웠고 환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지금까지 블랙리스트 문건에 개입한 총 32명이 검찰에 송치됐고 작성자였던 한 사직 전공의가 지난 20일 구속됐다. 피해자 일부는 대인기피는 물론 극단적 선택의 위험성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전공의들은 개인 선택에 의한 사직을 강조하며 법망에서 벗어났으나 뜻에 따르지 않으면 린치를 가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각 수련병원별 세부 현황이 제보되는 형태였기에 동조자는 더 많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사실관계를 되짚어봐야 할 필요가 있다.

    MZ 의사들의 단합은 선배 의사들이 두려워하는 지점이다. 사직하지 않는 교수, 총파업을 하지 않는 의사단체에 경고했고 이들을 하찮게 보는 시선이 깔렸다. 부모와 자식 관계라던, 너무도 착한 후배라던 일부 교수와 단체의 옹호 발언이 우습게 보였던 이유다.

    결국 통제가 가능한 소수의 동료, 선후배 전공의가 공격의 대상이 됐다. 이들을 막으면 의대증원 철회라는 끌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을 것이다. 여기엔 환자 피해 발생으로 인한 정부의 백기 선언이라는 목표도 공존한다.
     
    물론 정부가 의대증원 정책 발표와 추진과정에서 소통 없이 강행했고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의료계, 특히 전공의와 의대생 입장에서 이를 반대하기 위한 투쟁에 정당성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열악한 상황에 남아 환자를 보고 수련을 이어가겠다는 소수의 의지를 꺾고 더는 발을 못 들이게 압박을 주는 행위까지는 하지 말아야 했다. 정작 괴롭히는 자들은 면허를 반납하거나 의업을 포기하진 않을 것이고, 언제든 수련을 이어갈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은가. 

    상황이 이런데도 선배 의사들은 엉뚱한 방향에다 대고 응원했고 격려가 필요한 곳에는 모른 척했다. 블랙리스트 작성자 구속을 중단하고 석방을 요구하는, 너무나 예측 가능했던 각 의료단체의 같은 외침에 남은 전공의들은 더 큰 상처를 받게 됐다.

    오히려 블랙리스트 작성자를 돕자는 취지의 모금행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의사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송금을 인증하는 글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으며 의대생 부모들도 나서 후원금을 전달한 것으로 파악된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은 구속된 사직 전공의를 '피해자'로 칭했고 보호하겠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는 지난 21일 성북경찰서를 찾은 후 "구속된 전공의와 리스트에 올라 피해를 입은 분들 모두가 정부가 만든 피해자다. 정부가 의사들 사이를 다 결딴내고 있다"고 했다. 

    서울시의사회, 경기도의사회, 전북도의사회 등도 '구속 근거 부족, 본보기식 수사'라고 비판하면서 석방을 요구했다. 노환규 전 의협회장 역시 "(블랙리스트 작성과 관련) 마녀사냥과 다름없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면서도 "도주와 증거인멸 우려가 없는데도 구속한 것"이라고 했다. 

    강희경 서울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5일 본인의 SNS에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배포하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을 하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보라"고 비판했지만 구속 이후 "적법한 구속이기는 한 것일까"라며 의료단체와 동일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남은 전공의를 보호하려는 선배들이 없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커진다. 이들은 맹공을 받으면서도 의료공백 상황에서 의사라는 직업의 가치를 지키고 있고 땅바닥에 떨어진 품격을 끌어올리고 있다. 그런데도 왕따 집단이 됐다. 

    의료단체 대표 격인 인물들이 블랙리스트 작성자를 계속 두둔한다면 과연 남은 전공의가 버틸 수 있을까. 병원을 떠나라고 종용하는 행위와 이에 대한 피해를 묵인하고 엄벌을 논하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시나리오는 불 보듯 뻔하다. 

    정책 투쟁의 노선과 별개로 남은 전공의를 보호하고 응원하는 분위기를 형성해야 한다. MZ 의사들의 단합에 위축된 선배 의사들일지라도 최소한 수련병원에 남은 후배만은 지켜줘야 하지 않겠는가. 이들의 편에 설 누군가는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