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 등 5차례 연장 약속 불구 '대기업' 콕찍어 제외탄핵 정국 속 '소심한 정부', '정쟁 휩싸인 국회' … 서로 "나몰라"편가르고, 운동장까지 기울어 투자 위축 우려 … 정부 잃어버린 신뢰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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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산 에쓰-오일 샤힌 프로젝트 시공 현장. ⓒ에쓰-오일
"정부가 (뒤)통수 제대로 쳤습니다" 2월 기업 법인세 마감을 앞둔 한 대기업 관계자의 푸념이다.법인세 신고 마감을 앞두고, 정부 말만 믿고 대규모 투자에 나섰던 대기업들의 분위기가 흉흉하다. 적게는 수십 수백억, 많게는 1000억원대의 세제 혜택이 물거품이 됐기 때문이다.정부만 철석같이 믿고 투자에 집중했는데...반도체, 이차전지, 백신, 디스플레이, 수소, 미래형 이동수단, 바이오의약품 등 '첨단산업'에 포함되지도 못하고, '중소중견기업'도 아닌, 전통산업 대기업 이라는 이유로 석유화학, 방산, 식품 대기업들이 진행하고 있는 투자에 대한 임투세 혜택은 대상에서 제외됐다.앞서 정부는 2023년 '임시투자세액공제'를 12년 만에 재도입하면서 2024년까지 연장하겠다고 수차례 약속해 왔다. 기업의 투자가 1년 만에 끝날 수 없는 만큼 연속성을 보장하겠다는 강한 시그널을 수차례 보내 온 것.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가 앞장섰다. 지난해 첫 업무 시작과 동시에 투자 활성화를 강조하며 임투세 제도를 2024년 말까지 더 연장하겠다고 약속했다. 투자효과를 내기에는 적용기간이 짧다는 재계의 요구에 즉각 화답했다.이어 산업통상자원부도 '신성장 정책 2.0' 전략에 같은 내용을 담았고, 기재부는 또 7월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과 8월 추석 민생안전대책을 내놓으면서도 임투세 일몰 연장을 거듭 약속했다.하지만 하반기 들어 세수 감소에 대한 부담에 정부의 거듭된 약속은 오래가지 못하고 거짓말이 됐다.게다가 대통령 탄핵안 가결 이후 정부는 더더욱 소심해졌고, 국회 역시 정쟁에 휩싸이며 임투세 연장은 애초 투자 확대 목적 취지와 달리 '대기업 혜택'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졌다.현재 에쓰-오일은 국내 정유업계 역사상 단일 규모 최대인 9조원대의 샤힌프로젝트를 주진 중이며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탄약추진체 공장 증설에 6600억원을 투자 중이다. 또 풍산은 방산 설비에 2600억원, 효성중공업도 변압기 생산시설 증설에 1000억원을 투입하고 있다.임투세 일몰 연장이라는 정부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서 세금 환급 혜택은 고스란히 부담으로 되돌아 왔다.에쓰-오일의 경우 2023년 1조4000억원, 2024년 2조6000억원, 올해 3조4000억원에 이어 내년에도 약 3조원대의 투자가 예정돼 있지만, 지난해 정부의 연장 약속이 이뤄지지 않아 2024년 투입된 2조6000억원에 대한 혜택은 사라졌다. 결국 이달 법인세 신고를 통해 감액받을 수 있는 약 1500억원을 그대로 납부해야 한다.첨단산업분야만, 그리고 중소·중견기업에만 혜택을 줘야 한다는 정부와 정치권의 설명 역시 궁색하기 그지없다.첨단산업일수록 자동화 등을 기반으로 하다 보니 고용 창출은 그리 크지 않다. 중소·중견기업들의 경우 투자금액이 적어 지역경제 및 연관 산업으로의 활력 확산이 적을 수밖에 없다.이와 달리 대기업들이 추진하는 대형 투자의 효과는 확실하다. 공사를 담당하는 기업 대부분이 중소·중견기업이다 보니 사실상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지원과 같다.실제 에쓰-오일 샤힌 프로젝트의 경제적 파급 효과는 울산지역을 넘어 국내 제조산업 전반에 퍼지고 있다.국내 건설업체(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 롯데건설, DL이앤씨)들은 물론, 관련 협력사, 전문설비 제작사들이 대거 공사에 참여 중이다. 4월에는 하루 평균 1만명이 넘는 인원이 투입될 예정이며 가동 이후에도 상시고용 400명 이상과 3조원에 달하는 경제적 가치 창출이 기대된다.뿐만 아니다. 울산 기업인 에스디지(SDG)와 석유화학제품(올레핀 모노머) 공급 계약을 체결, 연간 60만t에 달하는 생산제품들이 산업의 혈관인 파이프라인을 통해 인근 업체에 안정적으로 공급된다. 이를 위해 SDG는 300억원을 투입 인프라 확충에 나선다.대기업의 투자가 연관 산업은 물론, 다양한 기업에 활력을 비롯해 또 다른 투자와 고용을 끌어내고 있다.지역 경제지표도 뚜렷한 개선을 이끈다. 울산연구원에 따르면 울주군 온산읍과 온양읍의 유동인구는 2021년 월 평균 10만3000명에서 2023년 12만3000명으로 2만명(월 평균 18.7%)이 증가했다. 가구 수 또한 7.1% 증가했으며 공실률은 42.9%나 줄었다. 고용률 또한 1.6% 증가했으며 취업률은 2.5%(2021년 56만→2023년 57만4000명) 늘었다.본격적인 인력투입이 시작되기 전부터 유동인구가 증가하며 소매업, 음식점, 숙박업 등의 활기로 이어졌다는 것이 울산연구원의 분석이다.이처럼 투자 효과가 분명한데, 정부가 앞장서서 첨단산업과 전통산업, 중소·중견기업과 대기업으로 편 가르기를 하며 운동장을 기울여서는 안 된다.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한 달, 미국발 통상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미국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전세계를 흔들고 있다.우방인 우리나라도 결코 예외는 아니다.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산업은 물론, 철강, 정유, 석유화학, 방산, 식품 등 모든 산업 분야와 기업들이 똑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미국발 통상 대응 역량이 시험대에 올랐지만, 이미 약속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고 어물쩍 넘어가려는 정부의 코는 길어질 대로 길어진 피노키오의 코가 됐다. 같은 편에게서조차 잃어버린 신뢰를 글로벌 전쟁에서 어떤 방법으로 회복할 수 있을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업종과 규모에 따라 정부의 지원이 차별적으로 이뤄지고, 약속조차 지켜지지 않는다면 기업의 투자 위축은 불 보듯 뻔하다.기업의 꺼져가는 투자 열기를 되살리고, 정부 정책을 믿고 투자를 진행 중인 기업들에 대한 신뢰를 위해 '한번 한 약속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지킨다'는 정부의 강력한 시그널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