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부진-재무악화에 곤두박질美 정부 200억달러 지원도 안 먹혀고강도 구조조정… 앞날 깜깜'종합반도체' 닮은 꼴 삼성-SK 위기감 고조韓 정치권 생색만 요란… 용수-전력도 제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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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도체 제왕으로 군림했던 인텔이 곤두박질 치고 있다. 거듭된 실적 부진과 재무악화로 혹독한 대가를 치를 처지가 됐다.

    투자축소는 물론 배당 중단, 인원 감축을 넘어 한때 삼성을 추월하겠다며 기세를 높였던 파운드리 사업의 매각까지 내몰릴 지경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인텔의 위기가 단박에 해결이 쉽지 않다는데 있다. 

    글로벌 업계는 상위기업을 무리하게 추격해 온 전략이 실패로 돌아간 것이라며 앞으로도 상당기간 동안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인텔의 위기는 정부는 물론 여야 정치권으로부터 별다른 지원을 받지 못한 채 고군부투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기업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같은 종합반도체기업(IDM)으로 닮은 점이 부쩍 많기 때문이다.

    3일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은 최근 인텔이 반도체 파운드리 부문 분할이나 매각, 제조시설 확장 프로젝트 중단 등 다양한 구조조정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한 때 CPU 시장을 주름잡으며 수년동안 반도체 왕좌를 지켜왔던 인텔이 본업인 CPU는 AMD에 자리를 내주고 AI 반도체 마저 시장 대응에도 뒤쳐지면서 총체적 위기를 맞았다는게 업계의 평가다.

    최근 실적은 이 같은 인텔의 상황을 한 눈에 보여줬다. 지난 2분기 인텔은 어닝쇼크 수준의 실적을 공개하면서 글로벌 반도체 톱3 자리에서 내려올 수 밖에 없었다. 매출은 128억 달러(약 16조 9000억 원)로 월가 전망치인 129억 4000만 달러를 하회했고 올 3분기엔 영업적자 가능성도 점쳐진다.

    인텔과 반도체 왕좌를 두고 엎치락 뒤치락을 반복했던 삼성은 올해 메모리 반도체 업황 회복으로 상승가도를 달리고 있다. 지난 2분기 인텔 실적을 월등히 앞선 것에 더불어 AI 반도체로 초고속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엔비디아에 이어 반도체시장에서 두번째로 높은 매출을 기록했다.

    심지어 인텔은 SK하이닉스에게도 순위를 내줄 확률이 높다. 하반기엔 HBM(고대역폭메모리)을 앞세운 SK하이닉스가 빠르게 수익을 올리면서 인텔을 넘설 가능성이 제기된다. 지난 2분기 119억 달러(약 15조 7000억 원) 매출을 기록한 SK하이닉스는 인텔과 불과 9억 달러 차이로 바짝 뒤를 쫓고 있다.

    한국 메모리업체들에게마저 뒤지고 있는 인텔의 상황은 미국 정부가 든든한 뒷받침을 해주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평가다. 미국이 반도체 자급력을 높이기 위해 글로벌 반도체 기업 유치에 적극 나서면서 이들 기업에 보조금과 대출, 세제혜택 등을 몰아주는 이른바 칩스법(CHIPS Act)을 추진하고 있는데, 사실상 가장 큰 수혜를 보는 곳이 자국 기업인 인텔인 상황이다.

    인텔은 지난 5월 미국 상무부로부터 85억 달러(약 11조 3000억 원) 직접 보조금과 최대 110억 달러(약 14조 7000억 원) 규모의 대출 지원 등을 약속 받았다. 여기에 25% 투자 세액 공제까지 받게 되면 전체 지원 규모는 200억 달러를 넘는다.

    삼성전자도 미국 텍사스 테일러시에 파운드리 공장을 신설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보조금으로 인텔보다 적은 64억 달러(약 8조 8000억 원)를 받는다. 이마저도 최근 일부만 지급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사비 상승으로 신공장 준공 일정이 1년 이상 뒤로 밀릴 가능성까지 비쳐져 대미 투자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 ▲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클린룸 전경 ⓒ삼성전자
    ▲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클린룸 전경 ⓒ삼성전자
    반도체업계에선 인텔이 이 같은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아 파운드리 사업 재건을 시작한만큼 이번 구조조정으로 파운드리 사업을 접거나 매각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오히려 인텔이 매각까지 고려해야 할 정도로 어려운 회사 상황을 대외적으로 밝히면서 미국 정부로부터 추가 보조금을 얻어낼 심산이라는 추측까지 나온다.

    문제는 인텔이 정부를 동원해서라도 글로벌 경쟁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순간에도 국내 기업들은 자력으로 반도체 전쟁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정치권에도 반도체 기업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지만 실질적인 지원은 태부족인데다가 전력이나 용수 공급 등 인프라 구축 등 시간이 소요되는 지원에는 아직 추진력도 붙지 않았다.

    정부와 정치권, 부처 간 이견도 여전하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위한 특별법을 당론으로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며 대통령 직속 특위로 반도체 산업 지원 정부 기구를 신설하자는 입장이지만 내부 의견을 정리하고 정부의 동의를 얻을 때까지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삼성과 SK 같은 손꼽히는 대기업에 반도체 보조금 같은 직접 지원을 한다는데 대한 반대 여론도 넘어야 할 산이다. 여당은 반도체 보조금과 세제 혜택 등을 담은 초안을 담아 정부 설득에 나섰지만 기획재정부 등에서 난색을 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정부안에도 관련 내용이 포함돼있고 이를 더 확대하는 차원은 어렵다는 의중으로 해석된다.

    민주당 역시 겉으론 반도체 지원법과 함께 '세액공제 상향.정부지원 의무화' 등을 내세우고 있지만 직접보조금 등 업계가 가장 필요로 하는 부분에선 입을 닫고 있다.

    반도체업계에선 AI 시대를 맞아 급속도로 변하는 반도체 시장 판도를 감안하면 신속하고 파격적인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