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재정 건전화에 밀린 환자 요구도 연간 1억원 이상 초고가 의약품 보험 급여까지 1년 이상 소요글로벌 제약사의 '한국 패싱' 현상 심화국내 신약 약품비 지출 비중 13.5% … A8국가 평균(38%) 3분의 1 수준유승래 동덕여대 교수 "치료제 적기 도입해 비급여 부담 줄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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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오기술의 발전으로 세포유전자치료제(CGT), 방사성의약품(RPT) 등 새로운 모달리티(치료기법)를 기반으로 난치성 희귀질환을 정복하기 위한 의약품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연간 1억원이 넘는 가격이 붙어 건강보험 재정 고갈 우려로 국내에 들어오기까지 하세월이 걸리면서 환자들은 질병과 싸우는 동시에 의약품 확보까지 직접 나서야 하는 실정이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희귀질환인 골수섬유증 치료제 '옴짜라(성분 모멜로티닙)'와 중증 B형 혈우병 치료제 '헴제닉스(성분 에트라나코진 데자파르보벡)'를 승인했다.

    글로벌 제약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가 개발한 옴짜라는 한달 기준 7069유로(1034만원), 연간 기준 1억2408만원 수준에 판매되고 있는 초고가 의약품이다. '원샷 치료제'로 주목받고 있는 CSL베링의 헴제닉스 약가는 350만달러(47억원)에 이른다.

    이들 치료제는 식약처 허가를 받았지만 보험급여에 등재돼 실제 국내 출시까지는 다소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국내 출시된 초고가 의약품의 경우 허가를 받은 뒤 보험급여에 등재돼 국내 출시까지 1년 이상 소요됐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보험급여 체계에 들어온 의약품 중 최고가는 노바티스의 '졸겐스마(척수성 근위축증 치료제)'로 19억8173만원이다. 노바티스의 '킴리아(림프성 백혈병·미만성 거대 B세포 림프종 치료제)' 3억6004만원, '럭스터나(유전성 망막위축 치료제)' 3억2580만원, 바이오젠의 '스핀라자(척수성 근위축증 치료제)' 9236만원, 노바티스의 '루타테라(신경내분비종양 치료제)' 2210만원 순으로 뒤를 이었다.

    졸겐스마는 2021년 5월 식약처로부터 품목허가를 받았지만 2022년 7월이 돼서야 건강보험 급여가 등재됐으며 킴리아는 2021년 3월 승인받고 2022년 4월 급여가 인정됐다. 스핀라자도 2017년 12월 허가를 받았으며 1년 4개월이 지난 2019년 4월 건강보험 급여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8~2022년 국내외 신약이 보험급여 목록에 등재되기까지 평균 6.5개월(194.4일)이 걸리는 것으로 조사됐는데 이 결과와 비교하면 초고가 의약품의 급여 인정기간이 훨씬 긴 셈이다.

    글로벌 제약사는 국내 시장의 낮은 약가에 출시한 약의 공급을 중단하거나 품목허가를 받았음에도 아예 출시 자체를 하지 않는 '패싱' 조짐도 보이고 있다. 환자들은 투병과 비용부담을 넘어 의약품 확보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는 셈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국내 도입신약의 약가를 결정할 때 참조하는 8개국(A8, 미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스위스·영국·캐나다·일본)의 신약 약품비 지출 비중은 38%인 반면, 한국은 3분의 1 수준인 13.5%에 불과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 33.9%에도 미치지 못했다.

    신약 약품비 지출이 낮다는 것은 환자의 신약 접근성이 낮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실제 미쓰비시다나베파마는 지난 4월 기면증 치료제 '와킥스'의 공급 중단을 예고했다. 프랑스에서는 1정에 1만원가량 하는데 국내 등재된 보험약가는 1정에 2448원으로 4분의 1 수준이다. 아스트라제네카도 지난해 말 당뇨병 치료제 '포시가'의 국내 철수를 결정했고 6월부터 급여목록에서 사라졌다. 

    다케다제약의 유전성 혈관부종 치료제 '탁자이로'는 2021년 2월 식약처 승인을 받았지만 아직 보험 급여에 등재되지 않아 출시되지 않고 있다. 일본에서는 2022년 3월 승인받고 같은 해 5월 출시됐다.

    건강보험공단에서 약제관리실 팀장을 지냈던 유승래 동덕여대 약학대학 교수는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외면받는 중증·희귀질환, 치료기회 확대 방안'을 주제로 열린 2024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 심포지엄에서 "암과 희귀질환 등 4대 중증질환 및 환자 1인당 중증 및 고액진료비 질환 보장률을 개선하고 치료제를 적기 도입해 비급여 부담을 줄여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주요국들과 신약 지출비중 격차를 감안해 환자 질병부담이 큰 질환의 혁신신약을 급여화하는 등 치료보장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심포지엄을 공동주최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비례대표)은 "이번 심포지엄을 통해 정부가 추진해야 할 중증·희귀질환 치료 접근성 강화 정책의 방향성과 구체적 개선방안을 논의할 것이며 이 문제를 지속 살펴 의정활동에 힘쓰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