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부진에 사상 초유 반도체 수장 반성문까지 HBM 실기 등 전략 부재 드러나사업별 미니 TF 한계 노정전환기 삼성, 대규모 M&A 등 시급
  • 삼성전자가 실적 부진에 사상 초유로 반도체 사업 수장이 반성문까지 내놓은 가운데 컨트롤타워 논란이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쇄신'을 앞세운 연말 인사와 조직개편이 예고됐지만 결국 예전 미래전략실 같은 컨트롤타워 재건이 이뤄지지 않으면 미봉책에 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10일 반도체업계와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지난 8일 3분기 잠정실적 발표와 함께 반도체 사업 위기 상황을 인정하는 사과문을 게재하면서 향후 삼성이 어떤 방식으로 이 같은 위기 상황을 해결해나갈지에 관심이 쏠린다.

    ◇ 글로벌 1위 위태한 반도체 사업에 어닝쇼크까지... 위기 표면화

    재계와 업계 안팎에서 언급됐던 삼성의 위기는 지난 3분기 실적에서 현실화됐다.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호황기임에도 영업이익은 전분기 대비 1조 원이나 줄었고 지난번 호황기 대비 반토막 수준의 이익을 내는데 그쳤다.

    삼성의 실적발표를 앞두고 재차 실적 예상치를 낮춘 증권사들의 전망보다도 낮은 실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삼성은 지난 3분기 매출 79조 원, 영업이익 9조 1000억 원을 냈는데, 앞서 증권업계에서 내놓은 전망은 이보다 1조 원 이상씩 높은 수준이어서 실망감이 더했다는 분석이다.

    잠정실적 발표와 함께 이번 실적 부진의 원인이 된 반도체 사업 수장인 전영현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장(부회장)은 입장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실적 악화와 사업 위기로 사업부 수장이 직접 사과문 형식의 입장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일 정도로 이례적 행보다.

    전 부회장은 입장문을 통해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로 근원적 기술 경쟁력과 회사의 앞날에 대해서 걱정을 끼쳐 송구하다"며 "모든 책임은 사업을 이끌고 있는 경영진에게 있고 위기극복을 위해 경영진이 앞장서 꼭 재도약의 계기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 부회장은 DS사업 위기 극복을 위한 3가지 쇄신 방안을 밝혔다. ▲기술의 근원적 경쟁력 복원 ▲철저한 미래 준비 ▲소통의 조직문화 재건이다.

    이번 전 부회장의 메시지가 결국 연말 대대적인 인사와 조직개편을 예고한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로 삼성 내부에선 비대해진 반도체 사업 임원 규모를 대폭 축소하고 소통이 막힌 조직 구조를 완전히 뒤바꿀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삼성전자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삼성전자
    ◇ 컨트롤타워 부재 한계..."계획 없다"지만 재건 필요성 대두

    하지만 DS 조직에만 손을 대는 것이 능사가 아닐 수 있다는 회의론도 공존한다. 현재의 반도체 사업 위기가 단순히 사업부의 구조나 임직원들의 능력 부족이 원인이기보단 보다 큰 구조적인 실기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은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결국 방대한 조직을 운영하고 있는 삼성이 제대로 된 컨트롤타워 없이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 다시 한계로 지목된다.

    삼성전자는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로 지난 2017년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이하 미전실)을 해체했고 이후 사업영역별로 3개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전자 계열사의 사업지원TF와 금융 계열사의 금융경쟁력TF, 삼성물산 계열 EPC TF 등이 사실상 미니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는 구조다.

    이재용 회장이 공식 취임하면서 새로운 컨트롤타워가 들어설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지만 삼성에선 "계획이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에서도 옛 미전실 부활 관련 논의는 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여러차례 밝힌 바 있다.

    그러는 사이 글로벌 1위를 휩쓸던 삼성에는 심각한 위기가 찾아왔다. 특히 반도체 사업처럼 연간 투자 규모가 막대하고 빠르게 변하는 시장 분위기를 지속적으로 이끌 수 있는 기술 혁신에 선제적인 투자가 필수인 분야에선 신속한 의사결정과 과감한 투자를 집행할 컨트롤타워 부재가 가장 아쉬울 수 밖에 없다.

    글로벌 경쟁사들이 AI(인공지능) 시대에 대비해 앞다퉈 지분 투자와 인수·합병(M&A)에 나서는 상황에도 삼성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삼성은 계열 벤처투자 회사나 글로벌 리서치 조직을 통해서 미래 먹거리 발굴을 이어가고 있지만 지난 2017년 전장업체 하만을 인수한 이후 대규모 M&A를 성사시키지 못하고 있다. 투자업계에선 삼성이 매해 다양한 잠재 인수 후보들을 둘러보지만 최종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번에 반도체 사업을 중심으로 삼성전자의 위기가 표면화되면서 옛 미전실 수준의 새로운 컨트롤타워 재건 논의가 다시 불 붙을지 주목된다. 이 같은 삼성의 고민이 가장 먼저 반영될 수 있는 올 연말 인사 및 조직개편에도 관심이 쏟아질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