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무역주의 심화… 미국·EU의 중국산 제품에 잇다 빗장태국·멕시코 등 신흥국도 동참… 경제 버팀목 수출에 큰 위협美 대선 결과도 불확실성 키워… "반사이익보다 부정적 영향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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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경제를 이끌어온 수출이 주춤하면서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과 EU(유럽연합)의 중국 때리기가 가속화되고 있다. 미국은 첨단 분야에서 중국으로 가는 자금을 통제하는 한편, EU는 중국 자동차 산업을 타깃으로 관세를 대폭 인상한다고 밝혔다. 이들의 의도는 첨단산업에 대한 견제와 중국의 과잉생산으로 인한 저가 제품 수출이 세계 경제에 위협이 되자 무역 장벽을 세우는 것이다.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29일(현지시간) 반보조금 조사 결과 중국산 전기차 수입품에 대해 5년간 확정적인 상계관세를 부과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확정관세 부과와 관련한 이행 규칙이 이날 오후 게재됨에 따라 인상된 관세는 30일 0시부터 적용된다.
이에 따라 기존 일반 관세율 10%에 7.8~35.3%포인트(p)의 추가 관세가 부과돼 최종 관세율은 17.8~45.3%가 된다. EU는 기존 10% 관세율에 더해 제조사에 따라 추가로 차등 부과한다. 테슬라는 17.8%로 가장 낮은 관세율을 적용받고, 비야디(BYD)는 27%, 지리는 28.8%다. 상하이자동차그룹(SAIC)은 45.3%로 가장 높다.
EU는 지난해 9월 불공정한 보조금을 받은 중국산 전기차가 값싼 가격에 유럽으로 수출되고 있다며 직권 조사를 벌이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조사 과정에서 중국 측이 관세를 내지 않는 대신 판매가 하한선을 정해 수출하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여러 차례 실무 협상에도 양측 간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면서 고율의 관세 부과를 강행하기로 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도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첨단 분야에서 중국으로 가는 자금을 통제하고 나섰다. 미국 재무부는 내년 1월 2일부터 반도체, AI, 양자 컴퓨팅 등의 분야에서 미국 자본의 중국·홍콩·마카오 투자를 통제하는 최종 규칙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미국 개인 및 기업은 중국 등의 반도체 고급 패키징 도구 및 슈퍼컴퓨터와 관련된 투자가 금지되며, AI 시스템 개발과 관련된 거래 역시 할 수 없다.
중국에 빗장을 거는 나라는 비단 미국과 EU뿐만 아니다. 올 들어 태국, 멕시코 등 10여 개 주요 신흥국들이 중국산 물품에 대해 관세 인상, 반덤핑 조사 착수 등 무역 장벽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산 수입 증가로 각국의 생산·고용 감소 등 산업 타격이 우려되는 것이 주된 원인이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이들 국가들의 중국산 수입 비중이 평균 20.7%로 지난 10년에 비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정부는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보고 있지만, 수출입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우리 경제의 버팀목으로 꼽혀온 수출이 최근 주춤하면서 경기 회복 둔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10월 1~20일 수출은 328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9% 줄었다. 조업일수를 감안한 하루 평균 수출액은 1년 전보다 1.0%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 기간 8월과 9월에 하루 평균 수출이 각각 18.5%, 18.0%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축소됐다.
특히 다음달 5일 치러지는 미국 대선에서 관세 공약을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할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내년에는 수출 회복세가 꺾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도널드는 중국산 제품에 6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우리나라 자동차 수출과 직결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지도 공약한 상태다.
남경옥 국제금융센터 전문위원은 "미국과 중국 대립이 본격화된 2018년 이후 전 세계 무역 규제 조치 건수가 3.7배까지 확대되는 등 각국의 자국 우선주의 및 보호무역주의 심화 추세가 뚜렷해지고 있다"며 "선진국에 이어 신흥국으로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확산됨에 따라 인플레이션 압력 강화, 공급망 불확실성 증대 등 부작용으로 글로벌 경제의 부담이 커질 수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심화 기조가 당장 우리나라가 반사이익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결국에는 부정적 영향이 더 클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정휘상 산업기술진흥원 연구원은 "트럼프가 집권하면 과거처럼 한국을 비롯해 미국을 상대로 무역흑자를 크게 기록하는 국가가 주요 타깃이 될 수 있다"며 "공급망에서 미국의 대중국 배제 정책은 우리 기업들의 미국 내 경쟁에서 단기적으로 유리한 위치의 반사이익이 될 수 있지만, 해당 물량의 공급 지역 전환이나 원자재 확보 제약 등 부정적 영향이 우려된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