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령 장관 취임 약 1년… 떨어지는 쌀값에 전국 각지서 논 갈아엎기비축량 늘어나 '재정부담' 딜레마… 無강제성 재배면적 줄이기도 도마 '쌀가공식품' 확대정책도 재탕·삼탕 맹탕 비판… "효과 작은 대책일 뿐"
  • ▲ 쌀 경작지 모습 ⓒ뉴시스
    ▲ 쌀 경작지 모습 ⓒ뉴시스
    정부가 쌀값 안정을 취지로 대규모 예산을 투입해 공공비축량을 늘리고 있지만 산지 쌀값 하락세로 정부 목표치인 20만원에 한참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국은 쌀 가공식품 육성 대책과 재배 면적 감축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뚜렷한 효과를 보기 어려울 거란 시각도 상존한다. 

    4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기준 산지 쌀값은 20㎏에 4만5725원으로 지난해(5만1142원)보다 10.6% 하락했다. 80㎏ 기준으로 보면 18만2900원으로 정부의 목표치인 20만원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올해 산지 쌀값은 9월25일 20㎏ 기준 4만3648원까지 하락했다가 10월5일 4만7039원으로 7.8% 올랐다. 그러나 같은 달 15일 4만6212원으로 1.8% 떨어졌으며 열흘 뒤인 10월25일에는 4만5000원대로 더 줄어들었다.

    강원도 철원과 경기도 안성, 충북 청주 등 전국 각지에선 농민들이 수차례에 걸쳐 논을 갈아엎는 상황까지 벌이지고 있다. 이훈구 한농연전북자치도연합회장은 "쌀값 폭락에 병충해 피해까지 겹치면서 지역 농민들의 고충이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며 "지역 곳곳에서는 답답한 심정으로 삭발식과 논 갈아엎기 등이 이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최근 정부는 산지 쌀값 폭락을 막기 위해 햅쌀 20만톤(t)을 사들인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아울러 올해 8월 말 기준으로 정부가 비축한 쌀 재고 물량은 115만6000톤(t)으로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권고한 한국 비축 물량(80만t)의 1.4배에 이른다. 정부가 사들인 쌀이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권고량보다 40%나 넘쳐나는데도 쌀을 계속해서 사들이겠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가격 안정화와 재정부담의 딜레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쌀값 하락은 농민들 생계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는 만큼 공공비축량을 늘려 가격 안정화에 나서고 있지만, 지난해 56조원 규모 세수 결핍에 이어 올해도 30조원의 세수 펑크가 확실시되는데 쌀 공공비축에 올해만 세금 2조원이 투입되며 비판 여론이 드세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공공비축으로 산지 쌀값 하락세가 멈춰 선 것도 아니다. 여기서 비축량을 더 늘리기에도 예산 추가 투입은 어려운 만큼 정부는 쌀의 공급 과잉을 이뤄내는 구조부터 바꾸겠단 계획을 세웠다. 내년 '벼 재배 면적'을 8만헥타르(ha) 줄이면서 쌀 가공식품을 늘려 수요량을 공급에 맞추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농업정책 전문가인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농정 총괄 수장에 오른지 1년 가까이 지난 상황에서 내놓은 대책들이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개진된다. 쌀 경작지 면적을 줄이고 쌀을 이용한 가공식품을 늘리겠다는 대책은 사실상 매년 나오는데 기존 정책을 재탕한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쌀 재배면적을 줄이는 정책은 강제성이 없어 십수년간 계획대로 추진되지 못했던 만큼 정부가 공공비축량을 줄이겠다는 선언적 모습을 먼저 보여야 한다는 필요성도 제기된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정부가 쌀 재배면적을 줄이는 정책을 펴낸 것은 십수년이 넘었는데도 야당의 반대로 추진이 안 되고 있었다"면서 "어떤 작물을 재배할지는 개인의 자유인 만큼 정부 목표치만큼 재배 면적을 줄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최근 기획재정부는 쌀 소비를 늘리기 위해 전통주 주세 경감 대상을 두 배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면서 즉석밥·볶음밥 등 밥류 제품에 사용되는 수입쌀 공급량을 점진적으로 축소해 쌀 국산화도 유도하기로 했다. 쌀 가공식품 산업을 육성 발전시키는 대책에 이은 소비 촉진 전략이다. 

    그러나 이같은 정책으로 쌀 상품 가격과 세수 투입만 오를 거란 우려도 제기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가공식품에 가격대가 높은 국산 쌀을 이용하면 소비자 가격이 높아질 수밖에 없고, 이 경우 정부는 세수 투입을 통한 지원책을 내놓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공공비축을 통한 시장 격리 등 단기 처방보다는 구조적 원인 타개할 근본적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쌀 소비 감소에 맞춰 재배 면적을 줄이기 위해서는 적절한 유인책과 함께 더욱 강력한 정부의 추진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은희 교수는 "나이대가 높은 농업인들이 경작물을 변경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는 만큼 60세 이하 젊은 농업인들이 교육을 통해 다른 농작물로 변경하도록 해야 한다"며 "정부는 더 강력하게 농업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