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탄핵정국에 환율 발작, 주가 추락원/달러 1500원 대비해야… 기업들 곡소리대외신인도 하락 우려… 기업심리 역대 최악여객기 참사까지 겹쳐 소비심리 급랭 예고
  • ▲ 부산항 수출 컨테이너 모습ⓒ연합뉴스
    ▲ 부산항 수출 컨테이너 모습ⓒ연합뉴스
    미국의 압박과 중국의 추격 속에 갇힌 한국 경제가 국내 정치 리스크까지 맞닥뜨리면서 표류 직전의 위기에 봉착했다.

    주요 기업들은 끝간데 없이 치솟는 환율과 추락하는 주가 지수만 쳐다보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분위기다. 경제계는 윤석열 대통령부터 한덕수 권한대행 국무총리까지 이어진 야당의 탄핵 폭주가 그치기 전까진 이번 위기가 수습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의결된 27일 원/달러 환율은 장중 1486.7원까지 치솟았다. 1467.5원으로 거래를 시작한 환율은 국회의 탄핵소추안 표결 가능성이 굳어지며 발작 증세를 보이다 1470원과 1480원을 불과 2시간 만에 돌파했다. 장 중 고가 기준으로 2009년 3월 16일(1488.0원) 이후 최고치다.

    국내 증시도 외국인들이 일제히 던지면서 맥을 추지 못했다. 이날 코스피는 환율 급등에 장중 2388.33까지 하락하다 장마감 2400선을 겨우 회복했다. 외국인들이 1733억원을 순매도한 영향이다.

    한 권한대행 체제로 안정을 찾을 것으로 기대하던 기업들은 초비상 상태다. 통상 고환율이 반가운 일부 수출기업들도 높아지는 원자재가격과 달러 빚이 부담인데다, 한국 대외신인도까지 하락할 위기에 놓이면서 내년 사업계획을 마무리 지은 기업들도 다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계획 수정에 나서고 있다.

    기업들은 이미 국내 정치 혼란 상황이 장기화될 가능성에 대비 태세를 갖춘지 오래다. 가뜩이나 미국에 트럼프 행정부 2기가 들어서며 관세 등의 정책 변화 불확실성이 높아 수출 기업들이 한치 앞을 예견하기가 어려운 때에 요동치는 정국 상황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곡소리가 나오는 지경이다.

    유례없는 초고환율에 기업들은 원/달러 1500원 선까지 대비하는 모습이다. 이달 들어 1400원을 돌파한 환율은 불과 20여 일만에 5% 이상 급등했다. 야당이 공언한 '따박따박' 탄핵이 반복될 때마다 변동폭이 극심해진 탓이다.

    기업들은 이미 몇 주째 주말을 반납하고 금융시장 불안정성이 재무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느라 분주하다. 정국 혼란이 장기화되고 야당의 탄핵 폭주가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자칫하면 무역, 통상 같은 산업 근간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이미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수출기업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고환율은 통상 수출기업들에겐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줬지만 이번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는게 기업들의 중론이다. 최근 몇 년 사이 가파르게 오른 원자재값에 물류비까지 크게 오르는 분위기인데 여기에 환율까지 더해져 수출기업들이 고환율에 따른 이익 증가 효과는 커녕 부담만 더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미국이 대중국 관세인상 조치를 취할 경우 단기간 내 해상운임이 큰 폭으로 상승할 가능성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중국산에 60%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중국이 물량 밀어내기에 나설 수 있고 이 기간 동안 해상운임을 시작으로 물류비가 빠르게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 ▲ 우원식 국회의장이 27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탄핵소추안을 상정하고 있다ⓒ연합뉴스
    ▲ 우원식 국회의장이 27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탄핵소추안을 상정하고 있다ⓒ연합뉴스
    환율 변동에 대비해 환헷지 방식으로 고정 환율로 완충이 가능한 대기업과 달리 중소 수출기업들은 이미 파산 임계점에 달했다. 상당수 중소 수출기업들은 올해와 내년 사업계획을 1300원 중반 선으로 환율을 설정하고 있어 직격탄을 맞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베트남에 공장을 둔 한 제조기업 관계자는 "정국 혼란이 이어지면서 해외 거래처에서 결제를 독촉하고, 선금까지 요구하고 있어 막막한 지경"이라고 했다.

    최악까지 대비해야… 기업 심리 살얼음판

    이런 까닭에 기업들의 심리도 크게 위축됐다. 최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가 매출액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경기실사지수(BSI)를 조사한 결과 내년 1월 전망치가 84.6으로 하락세를 이어갔다. 코로나19 이후 4년 9개월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지난 2022년 4월 이후 2년 10개월 간 기준선 100을 하회했다. 이는 역대 최장기 연속 부진 기록이기도 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13개월 연속 내수 부진 상태라고 진단했다. 소비 지표인 소매판매액 지수도 지난 2022년 2분기 이후 10개 분기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내년 경제성장률이 잠재 성장률(2.0%)을 밑도는 1.9%로 전망되면서 기업들이 내년 투자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전반적인 비용을 감축하기 위한 움직임을 강화하는 분위기다.

    지난 1997년 IMF 사태 이후 처음으로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것도 수출기업들에겐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인 무디스, 피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한국의 정치적 불안정성이 장기화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신용등급 강등 여부를 저울질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디스의 경우 최근 프랑스 국가 신용등급이 정치적 분열을 이유로 강등된 사례를 들어 한국도 이와 유사한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외신들도 한국의 정치 위기 심화 가능성을 잇따라 보도하고 있어 한국 기업들에 대한 이미지 실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AP통신은 최근 보도를 통해 "한덕수 권한대행에 대한 잠재적 탄핵은 고위급 외교를 중단시키고 금융 시장에 혼란을 초래하며 정치 마비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통신도 "보호무역 정책이 수출 의존 국가인 한국 경제에 타격을 줄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정치적 불확실성이 경제를 더욱 압박할 것"이라고 평했다.

    안팎으로 기업 활동에 부정적인 환경들이 압박을 가하면서 기업들도 극단의 상황까지 고려할 수 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내년 사업 계획의 방점을 '긴축'에 둔 대다수 기업들이 이어지는 탄핵 정국과 대외적인 불확실성을 고려해 '초긴축'으로 방향을 수정하고 위기 대응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 ▲ 29일 오전 전남 무안 공항에서 동체착륙을 시도하다 충돌한 제주항공 여객기ⓒ연합뉴스
    ▲ 29일 오전 전남 무안 공항에서 동체착륙을 시도하다 충돌한 제주항공 여객기ⓒ연합뉴스
    에상치 못한 항공참사… 소비 심리 극도로 위축

    올해 마지막 주말인 29일 벌어진 무안공항 참사에 가뜩이나 위축된 내수가 더 쪼그라들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비상계엄으로 한차례 위축된 소비 심리가 최악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감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이달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88.4로 전월 대비 12.3포인트 급락했다. 계엄과 탄핵 등 정국혼란이 가져온 결과다. CCSI는 2022년 11월(86.6) 이후 최저치다.

    인명이 많이 희생되는 대형 사회적 참사는 정치적 갈등보다 영향이 더 클 수 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정부와 민간 기업들은 행사와 모임을 일제히 취소했다. 대중의 시선을 우려해 음주는 물론, 골프 등 야외 행사나 호텔을 비롯한 고급 시설에서 이뤄지는 일정들은 경계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2014년 2분기 국내총생산에서 민간 소비는 0.3% 감소하기도 했다.

    소비는 수출 증가세가 둔화된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바가 작지 않다. 하지만 소매판매지수는 9월과 10월 각각 0.5%, 0.4% 감소하며 급격히 축소되는 가운데 연이은 사회적 혼란이 내수 시장을 급격히 위축되게 만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재계 한 관계자는 "탄핵 정국에서는 일부 경제단체에서 연말 소비 심리 제고를 위해 행사와 모임을 권하기도 했지만, 이번 참사 이후로는 그럴 수도 없는 분위기"라며 "사태 수습과 애도 기간을 충분히 가진 뒤 고민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