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줄 마른 중소·중견기업 … 단기자금·기업 도산 급증정부 역할론 대두 … 기업 자금지원 '옥석 가리기' 필요전문가 "부실기업 구조조정, 기술 기업 세제 혜택 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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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소·중견기업이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회사채와 은행권 대출 등 주요 자금조달 창구가 동시에 막히며 경영 악화를 우려하는 기업들이 속속 법정관리 절차를 밟고 있다. 

    내수 부진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발(發) 관세 충격까지 겹친 이중고 속에 기업들의 ‘돈맥경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은행, 대출 문턱 높여 … 비우량채 외면, CP·전단채도 발행 막혀

    21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은행권 기업대출 잔액은 1324조3000억원으로 전달보다 2조1000억원 감소했다. 특히 중소기업 대출은 1조4000억원 줄었다. 환율 변동성과 대외 금융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시중은행들은 위험가중자산을 줄이기 위해 신용도가 낮거나 담보력이 부족한 기업에 대해 대출을 꺼리는 상황이다.

    회사채 시장에서 신용등급 A급 이하 비우량 채권에 대한 수요가 급감하면서 발행 실패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반면 AA급 우량 채권에는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 자금이 몰리며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실제 CJ대한통운은 AA- 등급으로 2500억원 규모 회사채를 발행하며 5배 넘는 수요를 확보했지만, 하림지주(A-)는 수요예측에서 목표액을 채우지 못했다. 신용 스프레드(회사채의 금리 격차)도 확대되고 있어 A급 이하 발행 기업은 더 큰 부담을 안고 있다.

    단기자금 시장도 얼어붙었다. 홈플러스의 기업회생 신청 이후, CP(기업어음)‧전자단기사채(전단채) 등 A3 이하 채권 발행이 사실상 중단되면서 투자심리가 급속히 위축됐다. 고액 자산가를 중심으로 신용등급이 낮은 채권 기피 현상이 두드러지며 증권사들도 판매 가이드라인을 강화하고 있다.

    ◇기업들 단기차입 급증, 기업공개도 위축

    IPO(기업공개) 시장도 급속히 위축됐다. 3~4월 상장을 위한 예비심사를 청구한 기업은 8곳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국내 전체 상장사들의 단기차입금도 급증세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상장사 2449개사의 재무제표상 단기차입금은 전년 대비 52조원 늘어났다. 올해 들어서도 약 3조8000억원이 추가 조달돼 전년 동기(2조6000억원) 대비 45.8% 늘었다. 경기침체 장기화와 실적 악화로 현금 자산이 줄어들자 운영자금 확보를 위해 금리가 높고 만기가 짧은 단기 급전 의존도가 커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법정관리 신청도 잇따르고 있다. 홈플러스에 이어 온라인 명품 플랫폼 '발란', 골프웨어 브랜드 'JDX' 운영사 신한코리아, 지방 건설사까지 유동성 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잇따라 무너지고 있다. 부동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시공능력 순위 300위 이내 건설사 중 11곳이 연초 이후 법정관리 신청을 했다. 나이스신용평가가 펴낸 ‘부동산 양극화 심화로 건설사 리스크 확대’를 보면 올해 시공능력 순위 1~100위 건설사 중 부실 징후를 보이는 기업은 지난해 11곳에서 올해 15개로 늘어날 전망이다. 

    애경그룹은 결국 그룹 모태인 애경산업까지 매각 검토에 들어갔다. 코로나19 이후 실적 부진과 항공사 사고, 증자 실패가 연달아 겹치며 자금난이 악화됐고, 부채비율은 328%를 넘어섰다.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최후의 카드로 알짜 자회사 매각을 꺼내 든 것이다.

    정부에 대한 역할론과 기업 지원에 대한 옥석 가리기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책금융 확대, 업종별 맞춤형 자금 지원책 등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부가 기업들의 매출 부진 요인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그룹핑해서 내수 기업들에게는 민간소비를 살릴 수 있도록 지원하고 수출기업에는 환율 상승에 따른 채산성 악화 요인 등을 찾아 맞춤형 정책지원을 해야 한다”면서 “무조건적인 지원보다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기”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경영이 악화된 기업들 중 구조적으로 부실한 기업에 대해서는 정부가 구조조정을 유도하고 시장 논리에 따라 접근할 필요가 있다”면서 “우량한 기술 기반 기업은 세액 공제, 고용보조금 등 맞춤형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