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94세, 연말에 물러나기로"버크셔 남겠지만 전권 넘길 것"'투자 귀재' 퇴진에 주주들 기립박수
  • ▲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최고경영자(CEO) 겸 회장ⓒ오마하=AP/뉴시스
    ▲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최고경영자(CEO) 겸 회장ⓒ오마하=AP/뉴시스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94)이 올해 연말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3일(현지시간)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열린 제60회 버크셔 해서웨이(Berkshire Hathaway) 연례 주주총회에서 은퇴 계획을 공식 발표하며, 차기 CEO로 그렉 아벨(62) 부회장을 지목했다.

    버핏은 이날 “이제 아벨이 회사를 이끌 시점이 왔다”며 “나는 여전히 회사에 남겠지만, 향후 운영과 자본 배분을 포함한 모든 최종 결정은 아벨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벨은 훌륭한 리더가 될 것이고, 내가 해온 것보다 더 나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버핏은 은퇴 이후에도 버크셔의 지분을 그대로 보유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약 14%의 버크셔 지분을 소유한 최대 주주이며, 그 가치만 약 164억 달러(한화 약 23조 원)에 이른다. 또한 그는 “버크셔는 여전히 나의 집이며, 필요할 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며 경영권은 넘기되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버핏의 은퇴와 아벨의 승계는 4일 열리는 이사회에서 공식화될 예정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이 계획이 승인될 경우 “현대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기업 중 하나, 그리고 가장 유명한 투자자의 시대가 끝나게 된다”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버핏이 말을 마치자 CHI 헬스 센터의 주주총회장은 조용해졌고, 이내 아벨을 포함한 수천 명의 주주가 기립박수로 그를 기렸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이번 발표는 철저히 비공개로 준비됐다. 버핏은 이날 “이사회 중에서 미리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사람은 나의 아들 하워드 버핏과 딸 수전 버핏뿐이었다”고 밝혔다. 아벨 본인 역시 놀란 듯한 반응을 보였다고 NYT는 보도했다. 이전에도 버핏은 자신의 아들 하워드가 이사회 의장직을 이어받게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지만, 경영권은 넘기지 않겠다는 점을 거듭 강조해왔다.

    아벨의 승계는 전혀 뜻밖의 일이 아니었다. 그는 캐나다 출신으로, 2018년 버크셔의 비(非)보험 부문을 총괄하는 부회장직에 오르며 이사회 멤버가 됐다. 버핏의 오랜 동반자였던 찰리 멍거 부회장이 2023년 별세한 이후에는 매년 주주총회에서 버핏 옆자리에 앉아 그의 후계자라는 이미지를 굳혀왔다. 버핏은 2023년 12월에도 “아벨은 내가 이룬 것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1965년, 당시 직물회사였던 버크셔 해서웨이를 인수하며 투자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버핏은 회사를 세계적 복합지주회사로 키워냈다. 보험, 철도, 에너지, 소비재 등 다양한 산업에 걸쳐 수십 개의 자회사를 두고 있는 버크셔는 오늘날 미국 시가총액 1조1000억 달러를 자랑하는 초거대 기업이다. 버크셔 해서웨이 A주는 2일 종가 기준 주당 80만9808.50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연초 이후 20% 가까이 상승했다. 같은 기간 S&P 500 지수가 3% 하락한 것과 비교하면 압도적인 성과다.

    버핏의 은퇴 시점은 절묘했다는 평가도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버핏은 버크셔를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은 순간, 스스로 물러났다”고 평가했다. 그는 “자신의 성공은 시장을 예측하기보다 사업의 본질을 꿰뚫고, 장기적으로 기업을 신뢰한 결과”라고 회고해왔다.

    이날 총회에서는 정치적 발언도 있었다. 버핏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대해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무역은 무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건 현명하지도 않고 옳지도 않다”며 “세계 다른 나라들이 번영할수록 미국도 함께 번영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는 트럼프가 재임 중 밀어붙인 보호무역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된다.

    버핏은 이처럼 주주총회 마지막 무대에서도 기업가 정신과 국제 협력의 가치를 설파하며 퇴장을 알렸다. 이제 세계는 ‘포스트 버핏 시대’를 맞이하게 됐고, 그렉 아벨이라는 이름은 그 새로운 장의 주인공으로 본격 등장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