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보유 대응 전략 부재 … 시장 신뢰 흔들단기적 4000억달러 붕괴 가능성 커졌지만금 편입·자산 다변화 고민은 여전히 '부재'
  • ▲ ⓒ연합뉴스
    ▲ ⓒ연합뉴스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4월 한 달 새 50억 달러 가까이 감소하며 5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한국은행은 국민연금과의 외환스와프 만기와 계절적 요인에 따른 일시적 하락이라며 "4000억 달러를 밑돌 가능성은 낮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단기적으로 4000억 달러 붕괴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이라며 한은의 지나치게 낙관적인 해석에 대한 회의론을 내놓고 있다. 

    ◇외환보유액 4046억 달러, 5년 만 최저치 … 단기적 하락 불가피

    한은이 8일 발표한 외환보유액 통계를 보면 2025년 4월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4046억7000만 달러로 전월(4096억6000만 달러) 대비 49억9000만 달러 감소했다. 이는 각각 2020년 4월 이후 5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자, 지난해 4월(59억9000만 달러 감소) 이후 최대폭 하락이다.

    한은은 감소 배경으로 △국민연금과의 외환스와프 계약 만기 도래 △1분기 말 회계 비율 관리를 위한 금융기관 외화예수금의 일시 유출 등을 꼽았다.

    황문우 한은 외환회계팀장은 “외환스와프 만기 시 자금은 환원되기 때문에 일시적인 영향”이라며 “외환보유액이 4000억 달러 아래로 장기 하락할 가능성은 낮다”고 설명했다.

    이런 해명과 달리 외환보유액 순위와 구성 모두 뚜렷한 악화 흐름을 보이고 있다. 3월 말 기준 한국의 외환보유액 순위는 세계 10위로, 2023년 8월부터 유지해온 9위에서 한 단계 떨어졌다.

    상위권에는 ▲중국(3조2407억 달러) ▲일본(1조2725억 달러) ▲스위스 ▲인도 ▲러시아 등이 포진해 있으며, 대만·사우디·독일·홍콩까지 한국보다 많은 외환을 보유하고 있다.

    보유 구성도 문제다. 전체의 88.1%를 차지하는 유가증권은 3565억 달러로 전월 대비 50억 달러 줄었고, 예치금도 232억3000만 달러로 9억 달러 감소했다. 반면 IMF 특별인출권(SDR)과 IMF 포지션만 각각 7억 달러, 2억8000만 달러 늘었고, 금 보유액은 수년째 47억9000만 달러로 제자리다. 

    한은은 "일시적이며 계절적인 요인"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그렇게 보기엔 올해 외환 환경이 지나치게 거칠다"고 반박한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전문위원은 “미국발 관세 전쟁 확산으로 우리나라 수출이나 외환시장이 악화되는 분위기가 나올 경우 국내 무역수지, 경상수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외환보유액 4000억 달러를 위협할 수 있는 요인들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박형중 우리은행 애널리스트는 “무역수지나 채권 자금 유입 등으로 장기적으론 4000억 달러 이상 유지 가능성이 있지만, 적어도 올 하반기까지는 하락 압력이 강할 것”이라며 “특히 7월부터 트럼프식 관세 정책이 재개될 경우 수출과 경상수지가 급격히 위축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원·달러 환율 역시 최근 1300원대 중반으로 소폭 안정됐지만, 1400원을 넘나드는 불안정 구간이 상존하고 있는 만큼 정부의 시장 개입 필요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이 나온다. 박 애널리스트는 “정부의 외환시장 안정 개입이 시작되면 보유액은 더 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 ▲ ⓒ한국은행
    ▲ ⓒ한국은행
    ◇ "달러 일변도 외환구조, 글로벌 추세 못 따라가" … 운용 개혁 시급

    전문가들은 한은이 대외 신뢰 유지를 위해 낙관적 발언을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실질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한은은 외환보유액의 구성 측면에서 20년 가까이 금 보유액을 늘리지 않았다.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달러 비중을 줄이고, 금 편입을 확대하는 흐름 속에서도 한국은 달러 의존이 과도하게 높은 구조를 고수하고 있다. 한은의 외환보유액 중 금 보유 비중은 1%도 되지 않는다. 

    최근 신흥국 중앙은행들은 달러 강세, 달러 무기화 가능성 등을 의식해 외환보유 자산 다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 인도, 러시아 등은 금 편입을 늘리고 있으며, 브라질, 멕시코 등도 위안화·유로화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은 여전히 달러 중심의 외환구조를 유지 중이다. 

    박 애널리스트는 “외환보유액은 단순한 양적 크기뿐 아니라 구성의 안정성, 유사시 사용 가능한 ‘질적 방어력’이 더 중요하다”며 “금리, 환율, 지정학 불안까지 겹친 지금이야말로 외환 자산의 포트폴리오 재조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문제는 외환보유액이 줄어드는 와중에 (한은의) 질적 내실화 노력도 없고, 대응 전략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한은이 단순 낙관 발언을 넘어서 외환정책 운용의 방향성과 구조조정 비전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