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요건 미충족" … 롯데손보 "투자자 보호" 맞서기이복현 "법규 따라 엄정 조치" … 당국, 재무평가 이후 조치 예고콜옵션 강행, 매각에도 부담 … 업계·시장 우려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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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롯데손해보험
    롯데손해보험과 금융감독원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롯데손보가 금감원의 불허 방침에도 불구하고 후순위채권 조기상환(콜옵션) 강행 의사를 공식화한 것이다. 이 같은 대립은 다른 업권에 비해 금감원의 감독 눈치를 유독 많이 봐야 하는 보험업계에선 찾기 힘든, 초유의 사태라 할 수 있다. 

    롯데손보는 "투자자 보호와 금융시장 안정"을 내세우고 있지만 금융당국은 법규 위반 가능성을 경고하며 엄정 조치를 예고했다. 업계에선 "이번 사태로 투자자 신뢰 저하와 더불어 장기화하고 있는 롯데손보 매각 절차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금감원 결정에 아랑곳하지 않은 롯데손보 … 이복현 원장 "심각한 우려, 법규에 따라 엄정 조치"

    롯데손보는 지난 2020년 5월 7일 발행한 9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에 대해 콜옵션을 확정적으로 행사하고 공식적인 상환 절차에 착수했다고 8일 밝혔다.

    롯데손보는 이날 설명 자료를 내고 “최근 후순위채 상환과 관련해 콜옵션 행사를 연기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며 “상환을 위한 충분한 자금 여력을 확보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어 “투자자 보호와 금융시장 안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를 고려해 콜옵션을 행사해 후순위채를 상환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롯데손보의 후순위채는 만기 10년으로, 발행일로부터 5년이 지나면 콜옵션 행사가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후순위채는 5년 후 콜옵션을 행사하고, 새로운 후순위채를 발행해 이를 상환하는 방식이 관례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이번 콜옵션 행사는 당국과의 갈등으로 논란이 불거졌다. 롯데손보는 콜옵션을 행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금융감독원은 이를 불허하며 일정이 12일로 미뤄질 가능성이 제기됐다.

    콜옵션 행사 요건으로는 상환 이후 신지급여력제도(K-ICS·킥스) 비율을 150% 이상 유지해야 하는데, 롯데손보는 이를 충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말 기준 롯데손보의 지급여력비율은 154.59%였으나, 콜옵션을 행사할 경우 149.49%까지 떨어져 감독 기준에 미달하게 된다.

    롯데손보는 이러한 규정이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받기 위해 ‘비조치의견서’를 금융감독원에 요청했지만 금감원은 전날 불승인 결정을 내리고 콜옵션 행사를 막았다. 롯데손보는 늦어도 오는 12일까지 상환 절차를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같은날 열린 금융상황 점검회의에서 "롯데손보가 지급여력비율 저하로 조기상환 요건을 미충족함에도 일방적으로 조기상환을 추진하는 것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다"며 "법규에 따라 필요사항을 엄정하게 조치하면서 막연한 불안심리 확산에 대비해 금융시장 안정에도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롯데손보 재무상황에 대한 평가 결과가 확정되는 대로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신속히 취해 나갈 계획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사가 당국의 방침에 이견을 보이며 대응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며 "업계에서는 다소 이례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2022년 흥국생명 사태 재현...? … 그때와는 다르다 

    이번 콜옵션 행사를 앞두고 금융당국이 제동을 걸자 시장에서는 논란이 일었다. 2022년 흥국생명이 해외 신종자본증권 콜옵션을 미행사하겠다고 발표했을 당시 글로벌 채권시장에서 국내 기업이 발행한 외화표시 채권 가격이 급락하는 등 충격이 확산됐던 전례 때문이다.

    보험업계 일각에선 이번 사태가 중소형 보험사를 중심으로 자본조달 경색 우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롯데손보보다 신용등급이 낮은 보험사들까지 투자자 신뢰 약화의 영향을 받을 경우 신종자본증권 발행이나 후순위채 재조달이 어려워지는 ‘도미노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다.

    다만 금융당국은 국내 금융시장이 금리 인하 기조와 채권시장 유동성 확대, 원활한 기업 자금조달 등으로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상황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이에 따라 국지적 신용 이벤트가 시장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당국은 “금융권과 기업들의 자금상황을 면밀히 점검하고 일부 취약 중소 금융사의 건전성 문제가 시장불안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과거 유사 사례 대응 경험을 바탕으로 긴밀한 협조체계하에 필요한 안정 조치를 신속히 검토·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최성종 NH투자증권 연구원은 8일 보고서를 통해 "2022년 흥국생명에 비교해 지급여력비율이 빡빡하다는 유사점도 있지만 시장금리 상황, 채권 규모, 차환을 위한 대응 등에 있어서 다른 모습"이라며 "조기상환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진 만큼 당분간 롯데손해보험이 기발행한 자본성증권의 가격 변동성 확대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크레디트 이벤트 발생 가능성은 제한적이며 투자자 풀이 상이한 만큼 흥국생명 달러화채권 신종자본증권처럼 급격한 가격하락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최 연구원은 "지급여력비율이 100%를 넘고 유상증자, 당사자 간 합의, 불리한 금리 조건 등이 충족되면 금융감독원장의 승인으로 상환이 가능하다"며 "조기상환 미실시 시 금리는 기존 5%에서 6.08%로 상향된다. 롯데손보는 단기간 내 조기상환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금융감독원의 승인 여부를 지속적으로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매각 잰걸음? 버티기 전략?… 사모펀드의 셈법은

    일각에서는 이번 조치가 롯데손해보험의 매각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주주인 사모펀드 JKL파트너스는 2019년 롯데그룹 금융계열사 매각 과정에서 롯데손보를 인수한 이후 지속적으로 매각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매각 시도가 무산된 데 이어 적절한 인수자를 찾지 못해 상시매각 체제로 전환한 상태다.

    실적 부진도 매각의 발목을 잡고 있다. 지난해 롯데손보의 당기순이익은 242억원으로 전년(2856억원) 대비 91.5% 급감했다. 같은 기간 손해율은 82.07%로, 전년보다 0.39%포인트 상승했다.

    재무건전성을 보여주는 킥스 비율 역시 하락세다. 지난해 말 기준 154.59%로, 전년(213.2%) 대비 58.6%포인트나 떨어졌다. 금융당국 권고치(150%)를 간신히 웃도는 수준이다.

    여기에 금융당국과의 갈등이 겹치며 매각 절차에도 난관이 예상된다. 롯데손보 인수에는 금융당국 승인이 필요하지만 투자자 신뢰 하락과 재무 악화가 승인 과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이번 콜옵션 강행으로 투자자 신뢰가 흔들리면서 매각에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며 "금리 인하로 자본비율 부담이 커질 수 있는 만큼 단기간 내 매각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