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만 명 대상 16조 소각 '배드뱅크' 도입형평성·도덕성 논란 속 "납세자 동의 미흡"동의 없는 8000억 투입·민간 출연금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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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장기 연체자 113만명의 채무 16조4000억원을 최대 100%까지 탕감하는 ‘배드뱅크’ 프로그램을 지난 19일 발표하자 형평성 논란과 도덕적 해이 우려가 들끓고 있다. 진짜 억울한 사람은 ‘성실 상환자’라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정책의 정당성 자체가 도전받고 있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번 채무조정의 핵심은 ‘7년 이상 연체된 5000만원 이하 무담보 채무’를 국가가 일괄 매입한 뒤, 연체자의 소득·재산 심사로 전액 소각 또는 최대 80% 감면·10년 분할상환을 허용하는 구조다. 대상은 전국의 113만4000명, 채권 규모는 16조4000억원이다. 예산 8000억원 중 절반(4000억원)은 정부 재정에서, 나머지는 금융권 출연으로 충당한다.

    그러나 온라인 커뮤니티와 자영업자 모임에는 “버티면 탕감, 성실 상환자는 손해”, “내 세금으로 남의 빚을 다 갚아주나”라는 원성이 쏟아진다.

    ◇사회적 관용 vs 비용 전가 … 납세자 동의 미흡

    채무조정은 ‘실패한 이웃을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관용 제도’이자 ‘사회 전체가 위험을 분담하는 장치’다. 내수 부진이 극심한 현 경제 상황에서 개인 신용 회복, 생산가능인구 복귀, 경제 회복력 확보에 기여한다는 긍정론도 있다. 그러나 관용이 지나칠 경우 ‘책임 전가’라는 부작용도 따른다. 이번 채무조정은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한 사후 모니터링 매뉴얼과 재심사 체계가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욱이 채무조정은 국민 세금이 투입되므로 ‘납세자 동의’가 필수적이다. 이를 확보하려면 제도적 투명성, 공정한 심사, 납세자에 대한 성실한 설명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공론화나 별도 동의 절차 없이 정책을 밀어붙였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심사 기준과 결과도 공개되지 않아 절차적 정당성 확보에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간 금융사 출연은 ‘의무화 비용’ 전가인가

    금융권이 부담하는 출연금 4000억원은 ‘사회적 책임’과 ‘신용질서 유지’라는 이중 책무의 대가다. 그러나 매입 가격(5% 수준 제안), 3~6개월 심사 기간 등 구체적 조건이 불투명해 “단기 비용만 늘고, 장기 이익은 없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재정적 인센티브(세제 혜택· 국제결제은행 기준 자본 비율·ESG 가점), 제도적 안정장치(표준 지침·리스크 분담), 사회적 명분(공공기관 거래 우대·공동 홍보)이 모두 갖춰져야 자발적 참여가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후속 조치 없이 ‘대증요법’ 그칠 것” … 성실 납부자에 보상 설계 필요

    이재명 대통령의 대표 공약인 배드뱅크와 새출발기금 확대는 ‘사회적 관용’이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납세자 동의·민간 참여·도덕성 논란을 해소하지 못하면 ‘불완전한 대증요법’에 그칠 공산이 크다.

    금융권 관계자는 “심사·감면 기준과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공청회·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납세자 동의를 얻어야 한다”면서 “성실 상환자 인센티브도 법제화해야 정책이 완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배드뱅크 도입 후에도 신용 회복 프로그램과 자립 지원책, 성실 상환자 보상이 병행되지 않으면 또 다른 부채 순환만 반복될 뿐”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