巨與, '더 쎈' 상법개정안 경쟁적 발의자사주 강제소각 폭주… 즉시 소각 조항까지재계 차등의결권 등 최소방어책 없어… 기업들 비명"외국계 자본 먹잇감 노출… 유동성 위기도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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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정부의 ‘코스피 5000’ 공약을 뒷받침하기 위해 자기주식(자사주) 의무 소각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이 앞뒤를 가리지 않고 발의되고 있다.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까지 확대한 앞선 상법 개정보다 '더 쎈 상법 개정안'들이다. 일부 의원들은 누가 더 강력한 조항을 넣는지를 경쟁하듯 발의하고 있어 기업들의 우려는 극에 달한 모습이다.

    22일 국회 사무처와 재계에 따르면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신규 자사주를 취득하는 즉시 소각하도록 규정하는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자사주 소각 원칙에 따라 신규 자사주는 즉시 소각하도록 하고, 이 법이 시행되기 전 상장회사가 보유한 기존 자사주는 6개월 이내에 소각하도록 한다.

    앞서 김 의원은 자사주 소각 기한을 ‘3년 이내에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간’으로 한 상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러나 개인 투자자들로부터 “3년은 너무 길다”는 항의가 빗발치자 기존 법안을 철회하고 소각 시한을 ‘3년 이내’에서 ‘즉시 소각’으로 변경, ‘더 센’ 법안으로 재발의했다.

    김 의원은 “기존 발의 법안은 독일 사례와 시장 충격 등을 감안해 3년 이내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한 것으로 1년이 될 수도, 6개월이 될 수도 있는데 시장에서 3년으로만 보고 계신 것 같아 법률로 명확히 한다”며 “국내 증시와 미국 사례를 더 고려해 법안을 성안했다”고 설명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 안 돼… 기업 '경영권 방어' 무방비 우려"

    정부·여당이 집중투표제 도입과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를 위해 2차 상법 개정을 밀어붙이고 있는 가운데 자사주 소각 의무화 논의가 본격화하며 기업 불안감이 극대화하고 있다. 해외와 달리 차등의결권,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제도) 등 경영권 방어 장치가 부재한 상황에서 자사주 소각 의무화로 기업들이 외국 자본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여권 내 관련 법안이 소각 시한에서 차이를 보일 뿐 핵심 내용은 유사한 상황으로, 경쟁적으로 포퓰리즘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사주 취득 후 소각 시한을 ‘1년 이내’,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은 ‘6개월 이내’로 제시했다. 여기에 최근 김현정 의원이 ‘3년’ 시간을 ‘즉시’로 바꾸며 수위가 더 높아졌다.

    이들 법안에는 신규 취득 자사주는 물론 기존 자사주에 대한 소각 원칙도 담겼다. 법 시행 이전에 상장사가 보유한 자사주 역시 해당 기한 안에 소각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김현정 의원은 ‘6개월’, 차규근 의원은 ‘5년 이내’에 소각하도록 했다.
  • ▲ 대한상의 하계포럼서 기자간담회 중인 최태원 SK그룹 회장. ⓒ연합뉴스
    ▲ 대한상의 하계포럼서 기자간담회 중인 최태원 SK그룹 회장. ⓒ연합뉴스
    자사주는 기업이 발행한 주식 중 스스로 매입해 보유한 주식을 의미한다. 이는 주주환원(주가 상승, 주당 배당 증가), 임직원 보상 또는 인수합병(M&A) 자금 조달 등으로 활용된다. 다만 자사주 자체로는 의결권이 없지만, 백기사(우호세력)에 매각할 시 의결권이 부활해 경영권 방어에 쓰일 수 있어 외국인투자자와 소액주주 등은 기업의 자사주 보유에 반대해왔다.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법안은 기업의 자사주 활용 꼼수를 막고, 소각을 원칙으로 해 주주환원 효과를 높인다는 명분을 앞세우고 있다. 그러나 재계에선 차등의결권(특정 주주에게 더 많은 의결권 부여)이나 포이즌필(적대적 M&A 방어로 기존 주주에게 저가 신주 매수권 부여)  등의 ‘최소한의 방어권’이 없는 상태서 해당 법의 추진에 강한 우려감을 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치권에서 주주환원을 명분으로 한 포퓰리즘 정책을 잇따라 쏟아내고 있다”며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주주가치를 제고할 수 있지만, 기업의 전략적 선택권을 과도하게 데한하면서 경영권 방어와 자금 유동성을 위협하며 산업계 전반에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경고했다.

    재계 불확실성 '최고조'… '차등의결권', '포이즌필' 도입 필요성↑

    재계는 비상이다. 실제 국내법상으로 자사주 외에 뚜렷한 경영권 방어 수단이 없어 이를 법적으로 제한흐는 경우 투자자 공격에 대응할 수단 자체가 사라진다. SK그룹은 2000년대 소버린이 10% 이상 지분율을 취득, 경영권 위협에 나선 당시 자사주를 우호기업에 매각해 경영권을 지키기도 했다.

    특히 정부의 상법 개정과 자사주 의무 소각법안 등이 안정적인 경영환경을 위협함은 물론 국내 기업들의 유동성을 악화시키고 투자 여력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제기된다. 기업은 자사주를 활용해 교환사채(EB) 등을 발행, 유동성을 강화할 수 있지만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할 시 이러한 자금 확보 방안이 사라지게 돼서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은 지난 17일 경주에서 대한상의 하계포럼을 계기로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자사주 의무화 법안 관련 “지금까지 자사주를 쓸 수 있는 자유가 어느 정도 있었는데 이게 줄어든다는 이야기로 이해한다”며 “자사주를 살 사람이 앞으로 이걸 과연 사겠느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금융정보제공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발행 주식 총수 대비 자사주 보유 비율이 10% 이상인 국내 상장사는 219곳이다. SK그룹 지주사 SK㈜는 자사주 비율이 25%로 높은 편이다. 최 회장 측의 지분이 25%대에 불과해 자사주를 의무 소각하면 자사주로 경영권을 방어하기가 어려워진다.

    ㈜두산은 자사주 비율은 18%가 넘으며, LS(자사주 13.9%)와 HD현대(자사주 10.5%)도 10%대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다. 주요그룹 지주사 외 ▲인포바인(54.2%) ▲신영증권(53.1%) ▲일성아이에스(48.8%) ▲텔코웨어(44.1%) ▲부국증권(42.7%) ▲모아텍(35.8%) ▲엘엠에스(35.0%) ▲대동전자(33.4%) 등도 높은 비율의 자사주를 보유 중이다.

    재계 관계자는 “자사주 의무 소각은 기업 자금 유동성과 경영권 방어에 심각한 제약을 초래할 수 있다”면서 “주주가치를 논하는 다수는 개인주주가 아닌 외국인·기관이라는 점을 감안해 상법 개정을 논할 필요가 있다. 차등의결권과 포이즌필 도입을 통해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