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복귀에도 필수과 기피·지방 의료 붕괴는 여전의사 수 늘리기만으론 해결 불가, 사본축말식 처방국민 피해 반복되는데 정치 구호만 요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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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공의들이 현장으로 돌아오지만 필수과 기피 현상은 여전하고 지방 의료의 열악한 현실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재명 정부는 공공의대 설립과 지역의사제 도입을 공식화하며 지역·필수·공공의료 인력 확충을 약속했다. 그러나 이는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의대 정원 증원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방법만 다를 뿐 방향성은 동일하다. 

    문제는 현실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의사 인력을 늘려도 근무 여건이 열악하면 정착하지 않는다. 필수과의 낮은 수익성과 지방병원의 적자 구조는 여전히 방치됐다. 근본은 외면한 채 겉가지 대책만 만지작거리는 꼴이다. 바로 사본축말(舍本逐末), 근본을 두고 말단만 손대는 전형적 정책의 오류다. 

    공공의대·지역의사제, 우려되는 이유는 

    공공의대는 국립중앙의료원 부설 교육기관 형태로 신설돼 국가와 지자체가 비용을 부담하고 졸업생은 일정 기간 지방이나 공공의료기관에서 의무 복무하는 구조다. 일종의 '의무사관학교'로 국가가 직접 필요한 인력을 길러내겠다는 발상이다. 지역의사제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르면 2028년 신입생부터 의대 정원의 일정 비율을 지역의사 전형으로 뽑아 졸업 후 특정 지역에서 10년간 의무 복무하도록 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정부는 지방 의료 공백과 필수과 붕괴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의료계는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무엇보다 공공의대 하나를 세우는 데만 2000억~3600억 원이 필요하고 이후 운영비와 교수 확보 문제까지 감안하면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국립대 의대 한 곳의 연간 등록금으로 수천 명 학생을 지원할 수 있는 재원이라는 점에서 '비용 대비 효과'에 대한 논란이 불가피하다.

    또 다른 문제는 제도의 지속 가능성이다. 일본은 이미 지역의사제를 운영하고 있지만 의무복무 기간을 채우지 않고 이탈하거나, 채운 후 대부분 대도시로 이동한다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도 직업선택의 자유 침해라는 위헌 논란이 반복될 수 있다.

    황규석 서울시의사회 회장은 "지역의료 공백과 필수과 부족의 본질은 의사 수가 아니라 인력 재배치 문제"라며 "13년 이상 걸리는 신규 의대 설립보다 기존 인프라 개선과 재정 지원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유일 대한의학회 정책이사도 "공공의대는 설립비뿐 아니라 교육의 질 유지, 운영비, 배출 인력 배치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며 "지역 정주 여건 개선, 환자 이송 체계 강화 같은 구조 개편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의사협회 역시 국회 제출 의견서에서 "공공의대나 지역의사제는 지역의료 공백 해소의 근본 해법이 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국민참여 의료혁신위원회' 출범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따라 내달 출범하는 '국민 참여 의료혁신위원회'는 이런 비판을 의식한 시도다. 윤석열 정부의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대체하며 시민패널과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전문가·환자·시민이 함께 논의에 참여하는 구조를 설계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회 보고에서 "성과보상 중심의 합리적 수가체계 개편"을 주요 과제로 언급했다. 필수의료 보상체계 개선, 지역·과목별 의료공급 격차 해소, 소아·응급의료체계 개편, 희귀·난치질환 지원 확대 등도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그러나 중요한 건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다. 국민 참여라는 이름만 내걸고, 실제 정책에 반영되지 않는다면 또다시 사본축말에 불과하다. 겉모습은 화려하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전공의 복귀, 그러나 남은 혼란

    전공의들의 복귀 결정은 사태 봉합의 신호탄처럼 비쳤지만 현장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무엇보다 사과 없는 복귀는 뒷맛이 씁쓸하다. 정부와 의료계 모두 환자와 국민에게 충분한 사과를 내놓지 않았다. 갈등의 책임을 둘러싼 말싸움만 있었을 뿐, 피해를 직접적으로 겪은 국민 앞에 고개 숙이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일부 수련병원에서는 복귀 전공의의 당직 배치나 수련 과정 재개 방안을 놓고 혼선이 빚어졌다. 파업과 사직, 복귀를 오가는 과정에서 남은 공백이 크고 현장 의료진은 다시 시작된 수련 체계에 불안을 토로한다. 복귀가 곧 정상화는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이대로면 현장의 피로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전가된다.

    국민은 피해자였지만…

    국민은 이번 의료대란의 가장 큰 피해자였다. 그러나 환자 피해에 대한 면밀한 검증은 없었다. 초과사망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제대로 된 분석은 이뤄지지 않았다. 환자와 가족의 고통은 뒤로 밀린 모양새다. 

    정부는 전공의 복귀라는 성과를 강조했고 의료계는 기득권 방어 논리로 맞섰다. 국민은 철저히 들러리에 머물렀다. 뒤늦게 이러한 문제를 인식한 듯 의료대란의 상황을 점검한다는 정은경의 장관이 발언이 있었다. 면밀한 조사와 재발방지 대책이 나와야 한다. 

    필요한 것은 숫자가 아닌 구조 개혁

    필수의료 위기의 본질은 단순한 인력 부족이 아니다. 지방병원의 만성 적자, 필수과의 낮은 수익성, 왜곡된 수가 체계, 수도권 쏠림. 이 구조적 모순을 정면으로 다루지 않는 한 공공의대도, 지역의사제도, 단순 증원도 모두 실패한다.

    정치는 해마다 같은 해법을 반복하며 당장의 불을 끄는 데 급급했다. 그러나 불씨는 꺼지지 않고 되살아났다. 이제는 근본을 직시해야 한다. 구조 개혁 없이 숫자만 늘리는 처방은 사본축말일 뿐이다.

    공공의대와 지역의사제는 진정한 해법인가, 아니면 정치적 구호를 포장한 또 다른 실험인가. 전공의가 복귀해도 필수과는 비었고 지방은 무너지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현실을 직시한 구조 개혁이다. 국민은 더 이상 정치의 실험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