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 분리 설계 오류, 교수·재정·수련환경 '모두 한계' 지적 새 의대·부속병원 설립시 지역 1·2차 의료 기반 약화 성가롤로·목포한국병원 등 기존병원 기능 강화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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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순천대·목포대 통합의대 신설 논의가 다시 추진력을 얻고 있다. 최근 민주당은 통합대학 명칭으로 '국립 김대중대학교'를 제안하며 지역 정체성, 동서 통합, 지역 발전과 같은 가치들을 내세웠다. "전남에는 의대가 없다"는 메시지만 반복된다. 

    의료계는 정치적 명분만 있을 뿐 교수·재정·수련 구조는 여전히 현실성이 부족하고 오히려 지역 의료체계를 더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역 의료의 기능 회복이라는 본래 과제는 뒤로 밀린 채 신설 드라이브만 강조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1일 의료계 주요 관계자 등은 "통합의대 신설과정에서 전남과 광주를 분리한 설계의 오류가 있다"며 "광주에는 전남대의대와 조선대의대가 존재하고 특히 화순전남대병원은 암 등 중증의료의 중심축 역할을 수행 중인데 광주를 뺀 전남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형 국비사업을 밀어붙이기식으로 진행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책의 목적과 인력 구조, 재정 부담, 의무복무, 지역전형 등 핵심 골조는 공공의대 신설의 시발점으로 해석되며 실효성이 없다는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구체적으로 지역공공의료과정 설계, 국가 또는 지자체의 재정투입, 10년 의무복무, 지역전형 확대 등은 공공의대의 핵심요소를 유지한다. 학생을 교육·선발·배치하는 방식 또한 국가 또는 지방정부의 통제하에 놓인다는 점이다. 

    국립 김대중대로 제안받은 전남 통합의대가 만들어지면 교수진 확보가 최대 난제로 꼽힌다. 기초의학 분야는 전국적으로 인력이 부족하고 기초의학 박사나 연구 교수가 지방 신설대학으로 이동할 유인책이 없다. 매달 1000만원 이상의 급여가 지급돼야 하는데 이를 충족할 여건이 되는지도 의문이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기초의학 교수가 지방에 왜 가겠냐"며 "기초 100명, 임상까지 포함하면 300명 이상이 필요한데 교수 확보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의대 설립 논의를 하는 것은 역행"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매달 수십억의 인건비를 지급해야 하는데도 어떻게 조달할지에 대한 계획이 없다는 것이 한계"라며 "부지 매입, 건축비 인건비와 운영비까지 합치면 조 단위 비용이 소용되는데 정부와 정치권은 어떤 구조로 유지할지 답을 내놓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통합의대 설립을 통해 '우수한 지역 의사'를 배출하겠다는 설명도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 실제로는 환자가 적은 지역에서 고난도 술기·중증환자 경험을 쌓기 어렵기 때문에 우수 인력이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고 10년 의무복무 기간이 끝나면 대부분 지역을 떠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더구나 지역 인구 감소 추세가 뚜렷한 전남 동부권에 1조 원대 의대를 설립하는 것은 '소멸 지역'에 대학을 짓는 역설적 정책이라는 비판 역시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10년 후 지역 인구 구조를 보라. 소멸 가능성이 높은 지역에 대규모 국비 투입은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 지역 생태계 왜곡 … 성가롤로 등 지역 2차 역량 강화가 우선 

    더 큰 문제는 지역 의료 생태계의 왜곡 가능성이다. 지역의사제·지역전형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정책이라는 평가가 의료계 내부에 자리 잡았다. 지역 의료기관들이 새 의대의 인력과 시스템에 흡수되거나 경쟁력에서 밀리면서 오히려 지역 1차 의료 기반이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통합의대 논쟁이 정작 시급한 지역의료 기반 강화 문제를 가리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지역의료 현장에서는 성가롤로병원, 목포한국병원 등 지역 주력 2차 기관들이 중증·아급성기 진료에서 역할을 확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훨씬 실효적이라는 의견이 많다.

    모 지역의사회장은 "기존 지역 병원에 대한 지원만으로도 환자의 접근성을 높이고 급성기 사망률을 줄일 수 있는 구조가 충분히 가능하다"며 "통합의대에 투입될 막대한 예산을 지역 병원의 시설·장비·인력 확충으로 전환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했다. 

    특히 뇌졸중, 교통사고, 분만 등 시간에 민감한 급성기 질환의 특성을 언급하며 "지역 2차 병원이 제 역할을 하면 서울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의대 설립에 15년이 걸리는 반면 지역 병원 지원은 즉각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한 의료계 인사는 "새 의대와 부속병원이 들어서면 기존 지역 2차는 물론 1차의료의 경쟁력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는 지역 의료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고갈시키는 조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통합의대 신설 논의가 안고 있는 복합적 한계는 공공의대 초기 논쟁과 정확히 겹쳐진다. 교수 확보 불가·수련환경 부족·중증의료 붕괴·재정 지속 불능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본질이었다. 통합의대는 이러한 한계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역 정치의 요구가 결합하며 더 복잡한 형태로 재도입된 셈이다.

    의과대학 신설은 지역의료 강화의 해법이 아니라 수단일 뿐이다. 문제는 '어디에 의대를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지역 의료의 기능을 어떻게 복원하고 지방 대학병원의 역할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다. 그 질문에 대한 해답 없이 의대 신설만 반복되는 것은 국민과 환자를 위한 조치로 보기 어렵다는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