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TV 규제 강화 후 비담보 차입 급증…DSR 사각지대 여전영국·호주·캐나다 등 해외선 행태 중심 감독, 한국만 상품 단위 규제 지속고금리 단기자금 확산…가계 연체율 상승 위험 가시화"총량보다 질 관리가 시급"…실시간 차주감독체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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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의 고강도 부동산 대출 규제로 금융 리스크가 담보에서 비담보로 전이되는 풍선효과가 현실화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LTV·DTI) 문턱이 높아진 뒤 자금이 신용대출·마이너스통장 등 비담보 차입으로 몰리며 가계의 재무 구조가 한층 불안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 주담대 막히자 마통으로 … 예금은 투자처로 이탈

    10·15 부동산 대책으로 서울 전역과 경기 12개 지역이 규제지역으로 묶이면서 주담대 LTV가 70%에서 40%로 하향됐다. 대출을 받아 집을 갈아타거나 전세금을 반환하려던 실수요자들은 대출 한도 부족에 부딪혔고, 결국 신용대출이나 마이너스통장으로 자금을 돌렸다.

    실제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10월 신용대출 잔액은 104조 5000억원으로, 한 달 새 7000억원 넘게 증가했다. 같은 기간 마이너스통장 잔액은 5000억원 넘게 불어나 14개월 만에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반면 주택담보대출은 1조 2000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문제는 이런 비담보 대출이 담보대출보다 금리와 상환 위험이 훨씬 높다는 점이다. 신용대출 금리가 연 7~9%대에 달하는 상황에서 경기 둔화가 겹치면, 취약 차주 연체율 급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회전성 신용은 실제 상환이 이뤄지기 전까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계산에 반영되지 않아 감독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다.

    은행 예금에서도 자금 이탈이 뚜렷하다. 5대 은행의 수시입출금식 예금(MMDA 포함) 잔액은 이달 23일 기준 649조 5000억원으로, 9월 말(669조 7000억 원)보다 약 20조원 줄었다. 하루 평균 8000억원 이상이 빠져나가는 추세가 이어질 경우 2024년 7월(-29조원) 이후 최대 감소폭을 기록할 전망이다. 시장에선 이 자금 상당 부분이 부동산 매입자금이나 증시 투자로 흘러든 것으로 보고 있다.

    ◆ 해외는 '행태 규제'로 리스크 차단 … 한국은 '상품 규제'에 갇혀

    영국과 호주, 캐나다는 이미 '담보규제 풍선효과'를 경험한 뒤 행태 중심의 감독체계로 전환했다. 영국 금융감독청(FCA)은 모기지 규제 이후 카드론과 BNPL(후불결제)이 급증하자 모든 금융상품에 '지속가능한 상환능력(affordability test)'을 적용했다. 차주가 빚을 '얼마나 갚을 수 있는지'를 상품이 아닌 소득·소비 행태 단위로 평가하도록 바꾼 것이다.

    호주 금융감독청(APRA)은 담보 규제 강화 후 개인신용대출이 급증하자, 은행의 내부 한도관리 시스템에 위험 가중치 자동 조정 기능을 도입했다. 한쪽 상품이 급격히 불어나면 자동으로 해당 금리가 올라가는 시장 내 '셀프 브레이크' 장치를 건 셈이다. 캐나다는 회전성 신용(HELOC)과 고한도 리볼빙 계좌에 자본가중치 상향을 적용, 비담보 대출의 비용 자체를 높였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상품 중심 규제에 머물러 있다. LTV·DTI를 손질할 때마다 규제 지역과 예외 기준이 수차례 바뀌고, 각종 가이드라인이 오락가락하면서 시장의 예측 가능성은 낮아졌다. 실수요자는 규제가 언제 바뀔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결국 비담보 대출로 몰린다. 

    ◆ "숫자는 안정, 구조는 불안" … 실시간 감독체계 필요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증가율 둔화를 근거로 정책 성과를 내세우지만, 질적 리스크는 커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담보대출의 장기·고정 구조가 신용대출의 단기·변동 구조로 바뀌면서 상환 일정의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 경기 하락이나 금리 급등 시 연체율 급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전문가들은 "총량보다 질이 문제"라고 진단한다. 담보대출을 옥죄는 대신 신용대출·마이너스통장 등 회전성 신용을 포함한 차주 단위 실시간 감독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실수요자가 대환이나 전세자금 등 불가피한 자금 수요를 해결할 수 있도록 정책성 브리지론 같은 완충장치 마련도 병행돼야 한다고 제언한다.

    경제학계 한 교수는 "가계부채는 더 이상 금리나 한도 문제만이 아니다"라며 "비담보 전이와 자산시장 과열이 동시에 진행되는 지금이 정책 방향 재점검의 분수령"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