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1400~1500원 널뛰기 … 기업 재무·투자계획 줄도산 위기원가 급등·환차손·외화부채 3중고, 산업 전반에 ‘현금흐름 쇼크’중소·중견 제조업부터 흔들 … 은행은 ‘레드리스트’ 재정비‘고환율의 일상화’ 현실화 … 실물경제 체력 빨간불
  • 원·달러 환율이 1470원 선을 넘보면서 한국 경제 전반에 '조용하지만 깊은 금'이 퍼지고 있다. 제조업의 원가 부담은 치솟고, 금융권은 기업여신 건전성 악화를 우려하며 리스크 점검 빈도를 높이고 있다. 외환시장 변동성이 실물·금융을 동시에 흔드는 전형적 '퍼펙트 스톰'의 그림자다. 정부는 단기 유동성 공급과 외환시장 안정화 조치에 나섰지만, 글로벌 투자자 신뢰 회복과 기업들의 환위험 관리 없이는 충격이 장기화될 수 있다. 본지는 3부작 기획을 통해 한국 경제가 살아남기 위해 어떤 새로운 안전판을 세워야 하는지 면밀히 짚어본다. <편집자 주>


    원·달러 환율이 1650원을 찍고 1470원 선을 위협하며 실물경제 최전선에 선 기업들의 자금줄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주 한때 1475원을 돌파했던 이후 닷새만의 일이다. 

    '1470 공포'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환율 급등이 빠르고, 계엄 이후 불확실성까지 겹치며 외국인 매도가 집중된 결과다. 금융권과 산업계에서는 "환율이 1500원을 넘으면 중소·중견 제조업부터 연쇄 유동성 위기가 나타날 것"이라는 경고가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다.

    18일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현재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종가(1458.0원)보다 8.90원 상승한 1466.90원에 거래 중이다. 이날 환율은 전일 대비 5.0원 오른 1463.0원에 출발해 1460원대 상단으로 접근하고 있다. 환율이 1450원대를 웃도는 것은 지난 7일(1456.9원) 이후 열흘째다. 

    환율 상승은 반도체와 전자 업종에 고스란히 타격을 준다. 미국 텍사스 테일러 공장을 건설 중인 삼성전자의 투자비는 환율 1400원 기준으로 약 23조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환율이 1500원까지 올라가면 26조원 안팎으로 불어나게 된다. 환율 변동만으로 3조원 이상을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셈이다. 

    SK하이닉스의 미국 첨단 패키징 투자 역시 달러 투자 비중이 높아 환율이 한 단계만 올라가도 재무계획을 다시 짜야 한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여기에 뒤따르는 국내 소재·부품·장비 협력사들의 달러 조달 부담까지 감안하면, 반도체 밸류체인 전체에 ‘환율 스트레스’가 중첩되고 있다.

    철강·석유화학 업종은 전통적인 고환율 취약 산업이다. 철광석·유연탄, 나프타 등 핵심 원료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탓에 환율이 10% 오르면 제조원가도 10% 안팎으로 뛰는 구조다. 실제로 국내 열연코일 제조원가는 한 달 새 톤당 70만원 안팎에서 73만원을 웃돌기 시작했다. 

    항공·게임·제약 업종은 외화부채와 달러 지출 비중이 문제다. 대한항공은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약 330억원의 외화평가손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몇 달 사이 환율이 70원 가까이 뛰면서 2000억원대 잠재 손실 가능성에 노출된 셈이다. 글로벌 로열티와 인건비를 달러로 지급하는 게임사와, 중국·인도산 원료의약품 수입 비중이 높은 제약사들도 비슷한 고민에 빠져 있다.
  • ▲ ⓒ뉴데일리
    ▲ ⓒ뉴데일리
    문제는 이번 고환율이 '한 번 크게 올랐다가 내려가는 이벤트'가 아니라는 점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올해 초 50대 기업의 2025년 사업계획을 분석한 결과, 가장 많은 기업이 가정한 환율 구간은 1350~1400원(33.3%), 그다음이 1300~1350원(29.6%)이었다. 현재 수준인 1450~1500원을 전망한 곳은 10곳 중 1곳(11.1%)에 그쳤다. 결과적으로 90% 가까운 기업이 예상과 전혀 다른 환율을 현실로 맞게 됐고, 그 트라우마가 내년 계획을 훨씬 보수적으로 만들고 있다.

    특히 중소·중견기업의 피해가 훨씬 크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대기업은 선물환·옵션 등 다양한 환헤지 수단을 활용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 상당수는 여전히 단기 무역차입금과 일부 은행상품에 의존한다. 만기가 6개월~1년인 달러 대출을 갚지 못하면 곧바로 부도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다.

    기업들의 현금흐름 악화는 곧바로 금융권 리스크로 전이된다. 시중은행들은 이미 건설·철강·조선기자재·중견 제조업을 중심으로 '레드 리스트'를 재정비하고, 비상 모니터링 체계를 가동 중이다. 한 은행 리스크 부서 관계자는 "영업현금흐름이 플러스에서 마이너스로 돌아선 기업 비율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며 "환율이 1500원을 맞이하는 국면이 오면 지금의 경고음이 실제 부실로 바뀔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인 환율 레벨보다 '고환율의 일상화'가 더 큰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환율이 1300원을 넘어서면 원화가치 하락 속도에 대한 불안이 커지고, 1400원대는 이미 위기 구간이라는 것이다. 사실상 심리적 마지노선이 붕괴된 상황에서 1500원대 돌파는 시간문제라는 우려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앞으로도 고환율이 유지될 전망으로 1400원대 중후반까지 상승할 수 있다"며 "수급 불균형이 가시화하면 1500원까지도 상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택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과 미국의 기초체력(펀더멘털)의 격차가 원화 약세를 주도하고 있다"면서 "경제성장률을 높여 환율을 안정시키는 사고 전환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