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환경·환율·유가 변수에 성장·물가 리스크 공존이창용 "금리 동결·추가 인하 모두 열어둔 상태"
  • 한국은행이 내년 우리 경제 성장률 전망을 1.8%로 끌어올리며 ‘완만한 회복’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다만 물가는 2%대를 이어가고, 성장·물가 모두에서 대외 통상환경과 금융시장 변동성에 따른 상·하방 리스크가 공존하는 구조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금융안정 리스크를 이유로 통화정책 완화에도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한은이 27일 발표한 11월 경제전망(Indigo Book)을 보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올해 1.0%, 내년 1.8%로 제시됐다. 8월 전망 당시 각각 0.9%, 1.6%를 제시했던 것에서 0.1%포인트, 0.2%포인트씩 상향한 것이다. 2027년 성장률은 1.9%로 2026년 1.8%보다 소폭 높은 수준을 예상했다.

    성장 상향의 배경은 뚜렷하다. 한은은 올 하반기 이후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이 예상보다 빠르게 살아났고, 민간소비도 회복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내년에는 건설 부진이 다소 완화되고 소비 회복이 이어지면서 내수 기여도가 커질 것으로 봤다. 다만 미국의 관세 정책이 교역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전체 수출 회복 속도를 제약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 총재는 "반도체 등 IT 부문의 성장세는 견조하나 관세 영향이 큰 업종과 지방 중소기업 등에는 여전히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며 "내년 성장에는 기저효과도 반영되는 만큼 성장 경로에는 상·하방 불확실성이 모두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경제 그림도 8월보다 다소 밝게 조정됐다. 한은은 세계 성장률을 올해 3.3%, 내년 3.0%로 제시했다. 미국은 통화·재정 완화와 AI(인공지능) 인프라 투자 확대를 바탕으로 2% 안팎의 성장세를 이어가고, 유로지역은 금융여건 개선과 국방비 확대 등으로 완만한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미국의 관세 인상 효과가 시차를 두고 실물에 반영될 수 있는 만큼 통상환경의 불확실성은 여전히 위험요인으로 남겨뒀다.
  • ▲ ⓒ한국은행
    ▲ ⓒ한국은행
    물가는 이전 전망보다 한 단계 위에서 머무는 그림이다. 올해와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모두 2.1%로 제시됐다. 8월 전망(각각 2.0%, 1.9%)과 비교하면 0.1~0.2%포인트 상향된 수치다. 식료품·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는 올해 1.9%, 내년 2.0%로 내년 전망이 0.1%포인트 높아졌다.

    국제유가 하락은 물가의 하방 압력으로 작용하지만 환율 상승과 내수 부진 완화, 개인서비스 가격 오름세가 상방 요인으로 겹치는 구조다. 실제로 10월 소비자물가는 농축수산물과 여행 관련 서비스 가격이 뛰면서 2.4%까지 올랐다. 한은은 향후 물가가 2% 수준으로 점차 수렴하더라도, 환율과 서비스 물가 흐름에 따라 8월에 제시한 경로보다 다소 높은 궤적을 그릴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번 전망에서 반도체는 성장 시나리오를 좌우하는 핵심 축으로 제시됐다. 기본 시나리오에서는 AI 서버 수요 확대에 힘입어 고성능 메모리와 범용 제품 모두 견조한 수요가 이어질 것으로 봤다. 반면 AI 투자 과열 조정이나 미국의 IT·반도체 관세 부과 여부에 따라 경기 흐름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도 함께 곁들였다. 

    한은은 낙관 시나리오에서 반도체 수출 증가세가 현재와 같은 두 자릿수 중반을 유지할 경우 2026년과 2027년 성장률이 기본 전망보다 각각 0.2%포인트, 0.3%포인트 높아질 수 있다고 추정했다. 반대로 내년 하반기부터 수출이 둔화돼 2027년에 정체될 경우 성장률은 각 연도별로 0.1%포인트, 0.3%포인트 낮아지는 것으로 분석했다.

    대외수지와 고용은 ‘완만한 개선’에 무게가 실렸다. 경상수지 흑자는 올해 990억달러, 내년 1150억달러, 2026년 1300억달러로 전망했다. 반도체 단가 상승과 국제유가 안정에 따른 교역조건 개선, 본원소득수지 흑자 확대가 뒷받침할 것으로 예상했다.

    취업자 수는 올해 18만명, 내년 15만명 증가로 제시됐다. 건설·제조업 고용은 부진하지만, 서비스업이 정부 일자리 정책과 민간소비 회복에 힘입어 증가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설명이다. 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줄면서 고용 증가 폭은 과거보다 작지만 서비스업 업황 개선과 건설 조정 마무리로 민간 고용의 체질은 점차 나아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한은은 성장과 물가 모두에서 상·하방 위험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진단했다. 성장의 상방 요인으로는 미·중 통상갈등 추가 완화, 반도체 경기 추가 개선, 방한 관광객 증가를, 하방 요인으로는 무역갈등 재점화, 국제금융시장 불안, 비IT 부문 부진 심화를 꼽았다. 물가의 경우 고환율과 농축수산물 가격 강세가 상방, 원유 공급 확대와 정부 물가대책 강화가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