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량-일조량 감소 … 면역력 저하되며 위협 증가초기 발진 없이 감기몸살 오인 … '골든타임' 놓치면 수년 고생극심한 통증에 신경통 후유증까지 … 지역별 지원액 '천차만별'주요 국가들 이미 국가 차원 지원 체계 구축 … "국가예방사업 전환해야"
  • ▲ 대상포진 치료. 연합뉴스TV 제공. ⓒ연합뉴스
    ▲ 대상포진 치료. 연합뉴스TV 제공. ⓒ연합뉴스
    겨울철 면역력 저하로 대상포진 환자가 늘고 있지만 예방접종은 여전히 개인 부담에 맡겨져 있다. 극심한 신경통과 장기 합병증으로 의료비·사회적 비용이 커지는 상황에서도 국가예방접종(NIP) 도입은 제자리걸음이다. 다수 학회와 정치권이 예방 중심 정책 전환을 촉구하는 가운데 경제성·해외 사례까지 갖춘 대상포진 백신이 왜 국가 접종 체계에 포함되지 못하는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24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상포진은 발병 이후 수개월에서 수년까지 이어질 수 있는 신경통(PHN), 시력·청력 저하 등 합병증으로 인해 의료 이용이 장기화되는 대표적 질환이다. 그럼에도 국내 정책은 여전히 치료 중심의 사후 대응에 머물러 있다.

    질병관리청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대상포진 신환자의 직접 의료비는 약 1837억원, 대상포진 후 신경통 관련 의료비는 1221억원에 달했다. 환자 1인당 의료비는 연령이 높아질수록 급증해 80대에서는 55만원 이상으로 증가했다. 발병 이후에는 건강보험 재정이 투입되지만, 발병을 막을 수 있는 예방접종은 전액 개인 부담이라는 점에서 정책적 모순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대상포진 예방접종은 국가필수예방접종이 아닌 선택예방접종으로 분류돼 지자체 자율사업에 맡겨져 있다. 전국 229개 기초자치단체 중 170여 곳에서만 접종 지원을 시행 중이지만 대상 연령과 지원 금액은 제각각이다.

    같은 조건의 고위험군이라도 거주 지역에 따라 접종 기회가 갈리는 불평등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지원 지자체의 대부분은 생백신 중심으로 접종을 운영하고 있어 면역저하자나 항암치료 환자 등 실제 고위험군은 제도 안에 포함돼도 접종이 불가능한 구조적 한계도 안고 있다.

    경제적 장벽도 크다. 현재 비급여로 접종 가능한 대상포진 백신은 회당 수만원에서 많게는 수십만원에 달한다. 특히 재조합 백신은 2회 접종이 필요해 실제 부담은 더 커진다. 사실상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에게는 예방 기회 자체가 제한되는 구조라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 보건복지위 소속 박희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현재 비급여 항목에서 '스카이조스터주'는 7만~30만원, '조스타박스주'는 7만~40만원, '싱그릭스주'는 13만~42만원으로 확인됐다.

    발병 이후 장기 통증과 생산성 손실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고스란히 개인과 사회가 함께 떠안고 있다. 국내 연구에 따르면 대상포진 환자의 절반 이상이 업무 시간 손실을 경험했고, 삶의 질 지표는 발병 전 대비 크게 떨어진 상태가 약 6개월간 지속됐다.

    결국 예방접종이 핵심이다. 50세 이상 모든 성인과 18세 이상 가운데 면역저하 상태로 대상포진 위험이 큰 경우, 또 과거에 대상포진을 앓았던 경우 등이 예방접종대상이다.
  • ▲ 대상포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 대상포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치료 중심의 사후 대응에 머무르고 있다. 이로 인해 건강보험 재정은 지속해서 압박을 받고 사회적 비용 또한 불필요하게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한가정의학회, 대한노인병학회, 대한류마티스학회, 대한신장학회, 대한장연구학회, 대한통증학회 등 6개 학회는 최근 성명을 통해 "여러 선진국이 이미 대상포진을 국가예방접종에 포함한 만큼 우리 정부도 예방 중심의 정책 전환을 위해 조속히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상포진 국가예방접종사업 도입 필요성은 정치권에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꾸준히 제기돼 왔다. 대선, 총선, 지방선거 과정에서 수차례 공약으로 제시됐고 지난해 국회에서는 관련 토론회도 개최된 바 있다.

    현재 국회에는 관련 법률 개정안 2건이 계류 중이며 올해 정부 예산 심사 과정에서 대상포진 NIP 예산이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지만 최종 예산에는 반영되지 못했다.

    반면 주요국들은 이미 국가 차원의 지원 체계를 정착시켰다.

    영국은 2013년 생백신으로 NIP를 시작해 2023년 재조합백신으로 전환, NHS(국민보건서비스, 영국의 국영 의료서비스) 예산으로 100% 지원하고 있다. 일본은 올해 4월부터 65세 이상을 대상으로 국가예방접종을 시행하며 5년간 단계적 따라잡기 접종을 병행한다.

    호주는 연방정부가 전액 지원하고, 프랑스는 건강보험이 65%, 개인이 35%를 부담하는 구조다. 싱가포르도 올해 9월부터 60세 이상과 면역저하자를 대상으로 정부가 최대 75%를 지원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경제성 분석도 명확하게 도출됐다.

    국내 연구에서는 50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 대상포진 예방접종의 사회경제적 편익(ROI)이 1.52로, 투입비용보다 효과가 크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영국 보건경제연구소는 인플루엔자, 폐렴구균, 대상포진, RSV(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 등 4대 성인 백신 접종이 투입비용 대비 최대 19배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다고 결론냈다.

    이처럼 경제적 근거와 해외 사례까지 누적됐지만, 우리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6개 학회는 적극적인 보건 정책 및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정부와 국회는 대상포진 국가예방접종 도입과 성인 예방접종 확대 논의를 구체화해야 한다"며 "각 학회는 국가적 성인 예방접종 정책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필요한 학문적·임상적 협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