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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브란스병원
'치료 가능한 치매'로 알려진 특발성 정상압 수두증 환자가 알츠하이머병 등 퇴행성 뇌질환을 함께 앓고 있더라도 수술을 통해 의미 있는 기능 회복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퇴행성 병리 동반 여부를 이유로 수술을 단념해 온 기존 임상 인식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세브란스병원 신경과 예병석 교수 신경외과 장원석 교수 병리과 김세훈 교수 공동 연구팀은 특발성 정상압 수두증 환자의 뇌 조직 검사 영상 검사 수술 예후를 종합 분석한 결과를 국제 학술지 Alzheimer’s & Dementia 최신호에 발표했다고 29일 밝혔다.
특발성 정상압 수두증은 뇌척수액이 과도하게 축적되며 보행 장애 인지 저하 요실금이 함께 나타나는 질환으로 고령층에서 주로 발생한다. 현재로서는 뇌척수액을 다른 부위로 배출하는 '뇌실복강단락술(VP shunt)'이나 '요추복강단락술(LP shunt)'이 유일한 치료법이다.
하지만 실제 임상에서는 정상압 수두증 환자 상당수가 알츠하이머병이나 루이소체병 같은 퇴행성 뇌질환을 동반하고 있어 '수술을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치료 결정의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 특히 수술 중 시행하는 뇌 조직 검사가 실제 뇌 병리를 얼마나 정확히 반영하는지 도파민 신경 손상이 수술 예후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근거는 충분하지 않았다.
연구팀은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세브란스병원에서 VP 션트 수술을 받은 특발성 정상압 수두증 환자 58명을 분석했다. 수술 중 전두엽 피질에서 채취한 소량의 뇌 조직을 면역염색으로 분석해 알츠하이머병 관련 단백질을 확인했고 일부 환자에게는 '아밀로이드 PET'과 '도파민 수송체(DAT) PET' 검사를 시행해 퇴행성 병리와 도파민 신경 기능을 함께 평가했다.
분석 결과 전체 환자의 약 40%에서 알츠하이머병 병리가 확인됐다. 특히 수술 중 시행한 뇌 조직 검사 결과는 아밀로이드 PET 검사 결과와 95% 이상 일치해 제한된 조직 검사만으로도 실제 뇌 병리를 매우 정확히 반영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술 효과를 살펴보면 차이는 명확했다. 알츠하이머병 병리가 동반된 환자에서는 기억력 등 인지 기능 회복은 제한적이었지만 보행 능력과 일상생활 수행 능력은 수술 후 유의미하게 개선됐다. 환자와 보호자가 체감하는 '걷기 능력'과 '생활의 독립성' 측면에서는 충분한 치료 효과가 확인된 셈이다.
특히 도파민 수송체(DAT) PET 검사에서 도파민 신경 기능이 저하된 환자군이 도파민 기능이 비교적 유지된 환자군보다 수술 후 기능 회복 폭이 더 컸다는 점이 주목된다. 연구팀은 정상압 수두증에서 보행 장애의 상당 부분이 '가역적 요인'과 연관돼 있음을 시사하는 결과로 해석했다.
예병석 교수는 "정상압 수두증 환자에서 알츠하이머병 병리가 동반됐다는 이유만으로 수술 효과를 부정적으로 판단해선 안 된다"며 "인지 기능 회복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지만 보행과 일상생활 기능은 충분히 호전될 수 있다는 점이 이번 연구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어 "뇌 조직 검사와 도파민 영상 검사를 함께 고려하면 어떤 환자가 수술로 이득을 볼 수 있는지를 보다 정밀하게 예측할 수 있다"며 "환자 개별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치료 전략의 과학적 근거를 제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는 정상압 수두증 치료에서 퇴행성 뇌질환 동반 여부를 단순한 '수술 금기'로 볼 것이 아니라 증상 유형과 기능 회복 가능성을 중심으로 입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수술 여부를 결정하는 임상 현장의 기준을 한 단계 확장했다는 평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