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용인세브란스병원
하지정맥류 치료가 수술과 시술 중심으로 굳어져 온 가운데 약물 복용만으로 정맥 기능 개선 효과를 확인한 국내 연구 결과가 나왔다. 포도씨 추출물을 복용한 환자에서 객관적 정맥 지표와 환자 체감 증상이 모두 유의미하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세대 용인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정인현·배성아 교수와 흉부외과 박성준·김학주 교수 연구팀은 하지정맥류 환자 200명을 대상으로 한 무작위 대조군 임상시험에서 포도씨 추출물 복용군의 정맥 역류 시간이 대조군 대비 뚜렷하게 감소했다고 29일 밝혔다.
하지정맥류는 다리 정맥 판막 기능이 손상되면서 혈액이 심장으로 원활히 돌아가지 못하고 아래쪽에 정체되는 질환이다. 다리 부종 통증 저림 피부 변화 등이 동반되며, 최근에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진단 사실이 알려지며 주목받은 '만성 정맥부전'의 대표적인 형태로도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는 성인 4명 중 1명, 60세 이상에서는 절반 이상이 앓고 있는 흔한 질환이지만 치료 선택지는 대부분 수술이나 시술에 국한돼 왔다.
연구팀은 도플러 초음파 검사로 정맥 역류가 확인된 19~80세 환자를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에는 포도씨 추출물 150mg을 하루 두 차례 12주간 복용하게 했다. 다른 그룹에는 약물 없이 생활습관 개선만 권고했다.
그 결과 포도씨 추출물 복용군의 평균 정맥 역류 시간은 약 3,600밀리초(ms) 감소한 반면, 대조군은 약 1100ms 감소에 그쳐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를 보였다. 정맥 역류 시간은 혈액이 역방향으로 흐르는 정도를 나타내는 핵심 지표로, 수치 감소는 정맥 기능 회복을 의미한다.
특히 시술이나 수술로 접근이 어려운 '심부정맥'에서 효과가 두드러졌다. 무릎 뒤 오금정맥의 역류 시간은 포도씨 추출물 복용군에서 4064ms 감소해 대조군 감소 폭인 1179ms를 크게 웃돌았다. 심부정맥은 그간 압박스타킹 착용 외에는 증상 완화 수단이 제한적이었던 영역이다.
객관적 지표뿐 아니라 환자가 느끼는 증상 개선도 확인됐다. 정맥 질환 임상 중증도 점수(VCSS)는 약물치료군에서 평균 3.95점 감소해 대조군 감소 폭의 두 배 이상이었다. 만성 정맥부전 삶의 질 설문(CIVIQ-14) 점수 역시 약물치료군에서 더 큰 폭의 개선을 보였다.
연구를 이끈 정인현·배성아 교수는 "포도씨 추출물이 하지정맥류 환자의 정맥 역류를 실제로 줄일 수 있다는 점을 임상시험으로 확인했다"며 "수술이나 시술을 원하지 않거나 시행이 어려운 환자에게 비침습적 치료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미국혈관외과학회와 미국정맥포럼의 공식 학술지인 Journal of Vascular Surgery: Venous and Lymphatic Disorders 2026년 1월호에 게재될 예정이다.
의료계에서는 이번 연구가 하지정맥류 치료를 둘러싼 기존 '시술 중심 접근'에 변화를 촉발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초기 또는 중등도 환자를 중심으로 수술 전 단계의 치료 전략이 재검토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