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유통 5년간 2000억 적자에도 임직원 보수는 요지부동중국산을 국산으로, 구호품은 선물로 … 무너진 협동조합의 최소 윤리적자는 조합원이 메우고, 성과는 조직이 나눠 갖는 '역진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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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은 법적 지위로는 '협동조합'이지만, 현실에서는 금융·유통·보험·언론을 아우르는 거대 복합 조직이다. 농협중앙회를 정점으로 한 이 구조는 수십 년간 '농민을 위한 조직'이라는 명분 아래 성장해 왔지만, 최근 드러난 각종 비리와 사고는 그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적자에 빠진 유통 계열사, 되풀이되는 금융사고, 조합장 장기 집권과 보은성 인사, 번번이 공수표로 끝난 지배구조 개편 공약까지 문제는 개별 사건이 아니라 시스템에 있다. 농협은 어떻게 견제받지 않는 권력과 기득권 카르텔로 변질됐는지, 그 구조적 뿌리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농협 유통 계열사의 재무제표에는 아이러니한 숫자가 동시에 찍혀 있다. 5년 사이 매출은 3조원에서 1조원대로 쪼그라들었고, 누적 적자는 2000억원을 훌쩍 넘었다. 그럼에도 견고한 임직원 보상 체계와 농협중앙회장의 특혜·비위 논란은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이어진 모럴해저드(도덕적해이)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농협 하나로유통·농협유통은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매출 3조원을 넘나들던 '유통 공룡'이었지만, 지금은 2200억원(농협유통 974억원, 하나로유통 1322억원)에 달하는 누적 적자를 떠안은 '구멍가게' 신세로 추락했다. 전국 2200여개 하나로마트 중 절반이 넘는 매장이 적자를 내고, 일부 점포는 수년 연속 수십억원씩 손실을 내고도 버텨 왔다. 날짜로 환산하면 2021년 이후 지난 5년 동안 하루 1억원씩 길바닥에 뿌린 셈이다. 10곳 중 6곳이 문을 열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인데도, 구조조정이나 책임 논의는 요원하다.이 과정에서 농민·조합원 돈은 사실상 '완충 장치'로 쓰였다. 유통 계열사의 손실은 출자금과 중앙회 지원, 내부 정산을 통해 메워졌다. 경영 실패의 책임이 시장의 징계로 돌아오지 않다 보니, 현장에서는 "망해도 내 돈 아니다"는 식의 인식이 자리 잡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적자는 조합원이 메우고, 조직은 비교적 안전한 급여·퇴직금을 보장받는 구조다.문제는 숫자만이 아니다. 구조가 만든 도덕적 해이 사례는 적지 않다. 재난 이재민에게 전달돼야 할 구호품 일부가 창고에 방치되거나, 조합원 선물용으로 전용된 정황이 드러난 사례는 농협에 대한 신뢰를 뿌리부터 흔들었다. 피해 농민을 돕기 위한 국민 성금과 구호품이 지역 조직의 '표 관리용 선심'으로 활용됐다는 지적에 농업계 안팎의 분노가 커졌다.원산지 둔갑 의혹 역시 반복됐다. 중국산 표고버섯과 마늘, 외국산 농산물이 서류상 '국산'으로 둔갑해 하나로마트와 로컬푸드 매장을 통해 유통된 사실이 적발되면서 소비자들의 신뢰는 깊게 금이 갔다. 서류상 생산계획이 단기간에 수 배로 뛰어도 현장 실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일부 지역농협은 "서류가 완전해 몰랐다"며 책임을 피했다. 농산물 유통을 책임지는 조직이 품질 관리와 원산지 검증에 사실상 눈을 감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협력업체를 대상으로 한 '갑질 관행'도 반복돼 왔다. 목표 매출을 채우기 위해 허위 매출을 강요하거나, 재고·인력을 협력사에 떠넘기는 식의 불공정 관행으로 공정당국 제재를 받은 사례가 잇따랐다. 과징금이 부과됐지만 관행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벌금보다 협력사를 상대로 거둘 수 있는 이익이 크다는 계산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농협 내부에 공공연히 들리는 지적이다.현장에서 도덕적 해이가 일상화된 배경에는 중앙회 차원의 통제 구조 부실도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림축산식품부 특별감사에서는 중앙회 주요 보직의 겸직·보상 체계가 “경영 통제 사각지대이자 과도한 보상 구조”라는 지적을 받았다. 일정 직위 이상이 여러 법인과 재단의 직책을 겸임하며 별도 보수를 받는 구조 자체가 내부 견제 장치를 무력화시키고, 책임 소재를 흐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감사에서는 해외 출장 경비 집행과 업무추진비 사용 등에서도 내부 기준이 느슨하게 적용된 정황이 드러났고, 제도 개선 필요성이 권고사항으로 제시됐다.국정감사 과정에서도 중앙회 및 계열사 일부 사업을 둘러싸고 계약·발주 구조의 불투명성과 관리 부실 문제가 반복적으로 지적됐다. 특정 품목의 판촉물·용역 계약에서 단가 산정과 물량 관리가 허술하게 이뤄졌다는 문제 제기가 이어졌고, 관련 사안들은 감독당국의 점검 및 조사 대상으로 넘어간 상태다. 개별 사건으로 치부되기에는 유사한 지적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에서, 중앙회 차원의 내부 통제와 책임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된다.농협은 최근 각종 논란에 대해 쇄신과 제도 개선을 약속하고 있지만, 금융권과 농업계의 시선은 차갑다. 유통 적자, 원산지 둔갑, 협력사 갑질, 금융사고, 중앙회 특혜까지 이어지는 문제의 공통분모가 '책임의 부재'이기 때문이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사과와 쇄신을 반복해 왔지만, 지배구조와 보상 체계, 내부 통제 방식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뒤따른다.그럼에도 내부에서는 '어차피 출자금과 중앙회 지원으로 버틸 수 있다'는 인식이 뿌리 깊은 실정이다. 민간 유통기업이라면 수년 적자를 기록한 사업부는 과감한 구조조정이나 매각 대상이 됐을 상황이지만, 농협 유통 계열사는 적자에도 조직과 권한이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손실은 조합원과 농민이 부담하고, 관리 권한은 임직원이 쥐는 구조인 셈이다.전문가들은 농협 유통의 위기를 '시장 실패'라기보다 '지배구조 실패'로 본다. 공급·구매·판매 조직이 분절돼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구조, 본부와 지역조직 간 책임이 불분명한 수익·손실 배분 방식, 내부통제와 감사 기능이 실질적 견제장치로 작동하지 않는 시스템이 겹쳐 있다는 것이다. 특히 유통 적자가 누적되는 동안 임직원 보상과 의사결정 구조는 거의 손대지 않은 점이 '손실의 사회화, 이익의 내부화'를 보여준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