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 봉쇄 여파로 국제유가 급등…WTI 90달러 돌파 원화, 주요통화 중 가장 큰 약세…장기화땐 환율 1600원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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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동 전쟁 확산 여파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넘나드는 불안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특성상 고유가와 강달러가 동시에 나타날 경우 환율이 1600원대까지 상승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물가 상승과 성장 둔화가 동시에 나타나는 '복합 충격'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국내 경제에 초비상이 걸렸다는 평가다.

    8일 금융시장과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중동 지역 긴장이 확대되면서 국제유가와 환율 변동성이 동시에 커지고 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90.90달러로 전 거래일보다 12% 넘게 급등하며 마감했고 브렌트유 역시 92달러대를 기록했다. WTI는 주간 기준 35% 넘게 오르며 선물 거래 집계 이후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유가 급등의 핵심 배경은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협이다. 전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핵심 에너지 통로가 막힐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글로벌 원유 공급 차질 우려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쿠웨이트와 이라크 일부 유전에서 생산 조정 움직임이 나타나는 등 산유국 공급 불안까지 겹치며 시장 긴장은 더욱 높아지는 분위기다.

    에너지 시장에서는 유가 상승 전망도 빠르게 상향 조정되고 있다. 카타르 에너지 장관은 분쟁이 장기화할 경우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글로벌 투자은행들도 실제 공급 차질 가능성이 가격에 반영되기 시작했다고 분석한다.

    문제는 유가 급등이 곧바로 외환시장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대표적인 에너지 수입국으로 원유 가격이 오르면 무역수지와 경상수지 부담이 동시에 커진다. 

    시장에서는 국제유가가 10달러 상승할 경우 원·달러 환율이 약 15원 정도 상승 압력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수준에서 유가가 150달러까지 오를 경우 환율이 1550원 안팎까지 상승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거론되는 이유다.

    이미 원화는 주요 통화 중 가장 큰 약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이달 들어 원·달러 환율의 일일 변동폭은 평균 13.2원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였던 2020년 3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원화 가치는 달러 대비 2.8% 하락하며 유로, 엔화, 파운드 등 주요 통화보다 더 큰 약세를 나타냈다.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 구조상 원화가 지정학적 리스크와 유가 상승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분석한다. 한국이 원유의 약 70%, 액화천연가스의 약 20%를 중동에서 수입하는 만큼 중동 불안이 곧바로 외환시장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환율 급등은 실물경제에도 직접적인 충격을 줄 수 있다. 환율이 오르면 수입 물가가 상승해 소비자물가를 끌어올리고 기업 생산 비용도 증가한다. 동시에 경기 둔화 압력이 커지면서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

    한국은행 역시 유가 상승이 물가 상승 압력을 키우고 있다고 경고했다. 한은은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을 2.2%로 제시하면서 국제유가를 배럴당 65달러 수준으로 가정했지만 이미 시장 가격은 이를 크게 넘어선 상황이다.

    외환시장에서는 향후 환율 방향이 중동 정세에 크게 좌우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사태가 빠르게 진정될 경우 환율이 다시 1430~1470원 수준으로 내려갈 수 있지만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현실화하고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1530~1600원대까지도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 외환시장 전문가는 "고유가와 강달러가 동시에 나타나는 상황이 이어지면 원화 약세 압력은 더욱 커질 수 있다"며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환율 1600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