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나프타 재고 4월이 한계 … '산업의 쌀' 동난다LG화학 가동중단 수순 … 석유화학 도미노 셧다운 눈앞전쟁 종식돼도 복구에 수 년 … 환율 등 금융시장 혼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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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일 서울 만남의광장 주유소에는 주유를 기다리는 차량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뉴시스
중동발 에너지 위기가 심상치 않다. 산업의 쌀로 불리는 나프타 재고가 바닥을 보이면서 신생아 젖병부터 임종 전 병원에서 사용하는 수액 팩까지 생활 경제 전 영역에서 생산 차질이 예고되고 있다. 여기다 인플레이션 파고에 금리 인상론까지 등장하고, 미국에서 사모펀드의 환매 사태가 심해지면서 복합 악재가 퍼펙트스톰으로 한국을 향하고 있다.불안해진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돈을 빼자 증시 폭락과 원화 가치 수직 하락을 불러 왔다. 23일 환율은 16.7원 급등, 1517.3원까지 솟구쳤다. 금리인상 가능성에 국채 금리는 치솟고 있다. 10년물 국채 금리는 하루에만 5% 넘게 대폭등했다.고환율, 고유가, 고금리 등 3高 현상이 가중되면 연쇄 도산이 이어지고 여파는 금융 위기로 전이된다. 시장에서는 '4월 위기설'이 힘을 싣는 모습이다. 복합 위기에 기업들이 견딜 수 있는 힘이 4월에 한계에 다다르고, 실물 위기가 금융으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물과 금융에 동시다발적으로 퍼지고 있는 위기의 모습을 시리즈로 들여다 본다.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여파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정유·석유화학 업계의 원유와 나프타 등 수급 차질로 한국 경제가 전례 없는 ‘퍼펙트 스톰’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한국은 원유·나프타·LNG 등 에너지 자원의 90%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어, 석유화학 산업에서 생산되는 비닐봉투와 자동차 내장재 등 거의 모든 플라스틱 제품의 원료 공급이 중단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LG화학은 공장 셧다운을 검토 중이며, 정유사들의 기존 재고분도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항공유 부족은 비행기 운항에 직접적인 차질을 빚을 수 있고, 휘발유와 경유 부족은 서민들의 경제활동에도 심각한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정부는 수급 불안 진정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중동 전쟁 여파로 원·달러 환율은 17년 만에 장중 1510원을 돌파했다. 고유가와 고환율이 동시에 겹치면서 국내 기업들은 비상경영체제를 선언하고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23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이 4주 차에 접어들면서 '4월 에너지 위기설'이 고조되고 있다.전쟁 직전 호르무즈 해협 봉쇄 직전 간신히 빠져나온 한국행 일부 유조선들이 지난 20일을 끝으로 입항을 마치면서, 현재는 중동을 통한 원유 공급선이 끊긴 상태다. 국내로 수입되는 원유 중 중동산 비중은 69.1%로 이 가운데 95% 이상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난다.문제는 당분간 정부와 민간 비축유로 버텨야 하는 상황이지만, 물량이 충분하지 않아 4월 말이 사실상 임계점으로 지목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정유사 등 민간이 9000만 배럴, 정부가 1억 배럴의 비축유를 보유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기준으로는 최대 208일을 버틸 수 있는 물량이지만, 실제로는 훨씬 못 미친다. 국내 정유사들은 보유한 재고를 소진 중이다. 국내 정유 4사(SK이노베이션·HD현대오일뱅크·GS칼텍스·에쓰오일) 가 보유한 원유 비축 물량은 다음달 말이면 한계치에 도달할 것으로 관측된다.정부와 정유사들이 스팟 거래를 통해 긴급히 물량을 조달하고 있으나, 이는 몇 일을 연장하는 수준에 불과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정부는 UAE로부터 원유 2400만 배럴 우선 공급을 약속받았지만, 실제 한국에 도착할 시점은 불투명하다. UAE에서는 오만만의 푸자이라 항구로 이어진 송유관을 활용한다. 하지만 이란이 푸자이라에 대한 공격을 시작한 상황이다.국내 정유사들이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해 원유를 확보할 수 있는 대안으로 삼아온 사우디아라비아 홍해 연안의 얀부 항구 역시 안전하지 않다. 최근 이란의 공격 범위가 확대되면서 얀부항과 연결된 송유관 역시 잠재적 위협에 노출됐다. 실제로 이란은 에쓰오일의 최대 주주인 아람코의 정유시설인 삼레프(SRAS) 정유소를 공격했으며, 이곳에는 국내로 공급될 원유 저장탱크가 위치해 있다.정유업계 관계자는 “위기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우려해 공개 발언은 자제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원유 수급에 대한 불안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LG화학 2공장 셧다운 현실로 … 도미노 셧다운 우려석유화학 업계는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국내 석유화학 산업의 핵심 원료인 나프타 수급이 사실상 끊기면서 산업 전반이 마비될 수 있는 위기에 직면했다.LG화학은 이르면 이번 주 전남 여수 국가산업단지 내 2공장 가동을 중단할 예정이다. LG화학 관계자는 “가동 중단을 검토하고 있으며, 확정되면 공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LG화학은 여수와 대산산단에서 총 3개 공장을 운영 중인데, 이 가운데 연간 80만 톤 규모의 2공장을 셧다운하는 것이다. 앞서 LG화학과 롯데케미칼, 여천NCC 등 주요 석유화학사들은 최근 고객사에 에틸렌과 고부가 합성수지 등 핵심 소재의 공급 불가 가능성을 통보한 바 있다.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각 기업들의 나프타 재고는 이달 말로 소진될 것"이라며 "연쇄적으로 불가항력 선언은 물론이고 공장이 셧다운될 것"이라고 말했다.한국화학산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1월 t당 595달러였던 나프타 가격은 지난 20일 1141달러로, 에틸렌은 705달러에서 1425달러로 폭등했다.원료 공급난은 중소기업의 연쇄 셧다운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한 중소기업 공장은 평소 100톤 수준이던 폴리에틸렌(PE) 원자재가 10톤 남짓으로 줄어 가동률이 반 토막이 났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돈을 줘도 원료를 살 수 없는 불가항력에 의한 공급 불가 통지도 받고 있는 상태라"며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재고로 급한 계약 물량만 겨우 내보내고 있다"고 말했다.산업계의 포장재 대란은 소비자의 일상을 덮치기 시작했다. 온라인 도매처에서는 출고 지연과 재사용 봉투 대체 발송이 시작됐고, 다이소와 편의점 등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비닐류 발주 제한과 일시 품절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생활물가 대란에 불안감을 느낀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사재기 조짐도 나타난다.한 편의점 점주는 "오늘 아침부터 종량제 봉투를 30장, 50장씩 묶음으로 사 가는 손님들이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각종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가격이 오르거나 아예 못 구할까 봐 미리 사뒀다"는 구매 인증 글이 쏟아지며 불안감이 빠르게 확산하는 양상이다.실제 종량제 봉투 유통 사이트에 ‘전 지점 출고 지연 및 공급 중단’ 공지가 뜬 상황이다. 업계는 현재 남은 재고가 길어야 15일에서 30일 치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정부는 이르면 이번 주 중 나프타 수출 제한 조치를 발표하고 기업들의 러시아산 대체 계약을 지원할 방침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 조치만으로는 수급 불안을 잠재우기 역부족이다.한국프라스틱공업협동조합연합회 관계자는 "국내 석유화학사들이 중국의 자체 공장 풀가동에 밀려 실적이 악화하자 이미 종량제 봉투나 플라스틱 등에 쓰이는 폴리에틸렌 같은 범용 수지 생산 라인을 크게 감축하고 고부가가치 제품에 집중하던 상황이었는데 이마저도 위기다"고 말했다. -
- ▲ 여수 석유 화학단지.ⓒ연합뉴스
◇ 환율 1510원 돌파 … 반도체·자동차 등 산업 전반 위기전쟁 초기 정유·석유화학에 국한됐던 중동발 '공급망 붕괴'의 충격이 반도체, 자동차, 조선, 철강 등 전 산업으로 번지고 있다.특히 반도체 공정에 필수적인 헬륨은 액화천연가스(LNG)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데, 한국은 그중 90% 이상을 중동에 의존하고 있다. 최근 이란이 글로벌 LNG 생산 거점인 카타르 생산시설을 공격하면서 전체 LNG 수출 용량의 17%가 손상됐다. 카타르에너지는 "피격된 LNG 시설을 복구하는 데 최소 3~5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분쟁 장기화는 원가 부담을 키우며 칩플레이션을 더욱 가중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에너지 분석기관 AKAP에너지는 "현재와 같은 공급 충격이 지속될 경우, 전쟁 이전 MCF당 500달러 수준이던 헬륨 가격이 최대 4배 치솟아 2000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석유화학업체들은 지난주 요소수 관련 비상 대책 회의를 열고 수급 상황을 점검했다. 현재 10L당 1만 원 안팎이던 요소수 가격은 1주일 새 2만 원대 초중반으로 급등했다. 현장에선 판매를 중단하거나 제한하는 곳도 생겼다.국제 유가와 함께 원·달러 환율도 1500원을 돌파하며 단순한 비용 증가를 넘어 산업 전반의 생산 구조를 동시에 압박하고 있다. 고유가·고환율로 기업들은 기존 경영 전략의 수정이 불가피하다.산업연구원은 약 3주간의 단기 공급 충격만으로도 전 산업 평균 생산비가 4.2% 상승하고, 제조업은 5.2%, 서비스업은 1.4%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공급 차질이 장기화될 경우 제조업 생산비 상승률은 최대 11.8%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그럼에도 정부는 '4월 원유 수급 위기설'에 대해 대체 물량 확보와 비축유 방출 등을 통해 수급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양기욱 산업통상부 산업자원안보실장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일일 브리핑을 통해 "4월에 도입되는 원유 물량이 평소보다 줄어드는 것은 맞지만, 대체 물량이 꾸준히 들어오고 있고 4월 중순에는 비축유 방출까지 계획돼 있어 전체 수급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정부는 자원 안보 위기 경보를 '주의' 단계로 격상하고, 러시아산 등 원유 대체 공급망 확보와 함께 민간 차량 5·10부제 시행 등 에너지 수요 절감 움직임도 구상하고 있다.서민들의 체감 물가를 좌우하는 '석유 최고가격'도 이번 주 인상이 예고된 상태다. 지난 13일 발표된 1차 최고 공급가격(ℓ당 휘발유 1724원·경유 1713원)은 중동 전쟁 직전인 2월 4주 차 국제 석유제품 가격이 기준이다. 전쟁 이후인 3월 1주 차 가격은 휘발유와 경유 모두 30~40% 급등했다. 원가 상승분 일부를 정부가 흡수하더라도 오는 27일 발표될 2차 최고가격은 1800원대로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