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원 일상화, 환율보다 '하락 속도'가 더 문제원화 낙폭 주요국 대비 2배 … 유가·자금 유출에 '이중 압박'글로벌 금융사 이브리 "한국 원화는 이란전쟁의 루저"
-
- ▲ ⓒ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이번 중동 전쟁의 '승자와 패자'가 갈렸고, 원화는 대표적인 '루저 통화'로 지목됐다. 증시와 채권에서 시작된 외국인 자금 이탈이 환율로 직결되며, 한국 금융시장이 글로벌 자금 엑소더스의 '1순위 탈출구'로 작동하는 구조가 다시 한 번 확인됐다는 평가다.단순한 달러 강세를 넘어 유가 급등, 외국인 자금 유출, 수입 결제 수요, 국가신용 리스크 프리미엄 확대가 한꺼번에 겹치면서 원화가 사실상 '충격 흡수판'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환율보다 더 큰 문제 '하락 속도' … 원화, 이달 최고 4% 급락하기도25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지난 23일 장중 1518원선까지 오르며 2009년 금융위기이후 약 17년 만에 최고치를 다시 썼다.3월 들어 주간거래 종가 평균 환율(24일 기준)은 1486.33원으로, 이 같은 흐름이 지속되면 외환위기였던 1998년 3월(1488.87원) 이후 월평균 기준 최고치를 기록할 가능성도 제기된다.2월만 해도 1440원대에 머물렀던 환율은 불과 한 달 사이 1500원 안팎이 일상 구간이 된 모습이다.시장에서는 더 이상 1500원이 일시적 돌파 구간이 아니라, 외부 충격 발생 시 반복적으로 시험받는 새로운 상단 구간이 되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특히 주목되는 점은 주요국 대비 원화의 낙폭이다. 이달 들어 원화 가치는 달러 대비 4.1% 하락하며 주요 통화 대비 낙폭이 유독 컸다. 같은 기간 일본 엔화(-1.6%), 유로화(-1.8%) 등 주요 통화 대비 두 배 넘는 하락폭이다. 같은 충격에서도 원화가 가장 먼저, 가장 크게 약세로 반응했다는 의미다.◇유가 오르고 돈 빠지면 환율 뛴다 … 구조적 취약성글로벌 달러 강세라는 공통 변수 아래에서도 원화가 유독 더 크게 밀리는 것은, 대외 충격에 대한 국내 금융시장의 취약한 반응 구조가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특히 원화는 국제유가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통화 중 하나로 꼽힌다. 시장에서는 최근 원·달러 환율과 유가의 상관계수가 0.86 수준까지 높아진 점에 주목하고 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구조상 유가가 오르면 수입 부담이 커지고, 이는 곧 달러 수요 증가로 이어진다. 국제유가 상승이 무역수지와 기업 비용, 물가 부담을 동시에 자극하면서 환율에 직접적인 상방 압력을 가하는 구조가 더 뚜렷해졌다는 의미다.여기에 외국인 자금 유출까지 겹치면서 환율 상승 압력은 한층 커지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과 채권을 동반 순매도할 경우, 매도 대금을 달러로 바꿔 빠져나가는 환전 수요가 발생한다. 이는 국내 자산시장 약세가 외환시장 불안으로 곧바로 번지는 연결고리다. 증시에서 시작된 이탈 흐름이 환율을 밀어 올리고, 환율 상승이 다시 외국인 투자심리를 위축시키는 악순환 고리가 작동하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국가 위험을 반영하는 지표도 심상치 않다. 한국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33bp까지 올라 1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환율 급등이 단순 수급 불균형이 아니라, 대외 불확실성 속에서 한국 시장에 대한 위험 회피 심리가 강화된 결과라는 의미다. -
- ▲ 호르무즈 해협에서 정박 중인 유조선. ⓒ연합뉴스
◇에너지·자금 구조의 결과 … 원화, 전쟁 국면 '루저'로 지목문제는 이런 압력이 단기에 해소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중동 전쟁 장기화 우려가 이어지는 가운데 원유·가스 등 에너지 수입 대금 결제 수요는 당분간 계속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외국인 자금 이탈 흐름까지 진정되지 않으면 원화는 대외 변수에 따라 가장 먼저 흔들리는 ‘약한 고리’ 지위를 벗어나기 어렵다. 시장에서는 환율이 단기간에 급등한 뒤 되돌리는 국면이라기보다, 외부 충격이 누적될 때마다 상단을 높여가는 구조적 불안 국면으로 들어선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글로벌 금융업체 이브리(Ebury)의 매튜 라이언 시장전략 헤드는 24일 '이란전쟁:외환 승자와 패자'라는 보고서에서 '루저' 중 하나로 한국 원화를 꼽았다.라이언 헤드는 "석유와 가스를 순수입하는 국가의 통화는 원자재 가격이 높을 때 약세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당연하다"며 "한국으로 향하는 원유의 3분의 2, 인도의 경우 절반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기 때문에 더 많이 노출된 통화”라고 설명했다.외환시장에서는 이제 원·달러 환율의 절대 수준보다, 원화가 어떤 충격에 얼마나 빠르게 반응하느냐가 더 중요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때 신흥국 통화 전반의 약세 속 일부로 여겨졌던 원화가 이제는 글로벌 자금 이탈 국면에서 가장 먼저 매도 압력을 받는 통화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증시와 채권에 이어 환율까지 글로벌 위기 시 '탈출구'로 작동하는 구조가 반복되면, 원화는 글로벌 자금 엑소더스의 1순위 통화로 굳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문정희 KB국민은행 이코노미스트는 "특히 우리나라 경제는 원유 수입 비중이 높아 국제유가 상승에 취약한 구조로, 고유가가 장기화할 경우 외환시장 수급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당분간 중동 전황과 국제유가가 외환시장 변동성을 주도할 전망이다"고 분석했다.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환율 흐름은 단순한 달러 강세라기보다 한국 시장에 대한 위험 프리미엄이 동시에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며 "외부 충격이 들어올 때마다 원화가 가장 빠르게 반응하는 구조가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