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통제→손실 보전→재정 확대 … '비용의 이동' 시작됐다은행채 3.57→3.90% … 한 달 새 0.5%p 급등, 금리 압력 현실화자영업 대출 1070조, 0.25%p 상승에 이자 1.8조 늘어난다눌러둔 기름값, 금리 부메랑으로 … "결국 국민 금융비용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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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름값은 눌렀지만 금리는 뛰고 있다. 휘발유 가격은 1900원대에 묶였지만 은행채 금리는 한 달 새 0.5%포인트 가까이 급등했다. 석유 최고가격제의 비용이 재정에서 금융시장으로 번지며, 1000조원대 대출 위에서 이자 부담으로 되돌아오는 '정책 역설'이 현실이 되는 모양새다.

    정부는 국제유가 급등에 대응해 정유사 공급가격에 상한을 두는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했다. 전국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870원대, 서울은 1920원대를 웃돌고 경유도 1900원을 넘어섰다. 가격 통제로 단기 급등은 억제했지만 시장에서는 이미 2000원 돌파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문제는 가격을 억지로 누른 대가다. 공급가격을 제한하면서 발생한 정유사 손실은 결국 보조금과 재정 지출로 메워야 하는 구조다. 나프타 수급 지원, 유류 보조, 민생지원금까지 포함된 추경이 20조~25조원 규모로 확대되면서 재정 부담 증가는 불가피해졌다. '가격 통제 → 손실 보전 → 재정 확대'라는 구조가 고착되는 모습이다.

    정부는 "국채 발행 없이 대응하겠다"고 강조하지만, 시장의 시각은 다르다. 가격 통제 정책은 보조금이나 세제 조정 없이 지속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재정 개입이 불가피하게 뒤따르는 경우가 많다. 특히 여유 재원이 빠르게 소진되고 재정 여력이 약화되면 결국 시장금리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채권시장은 선제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은행채 5년물 금리는 2월 말 3.57%에서 최근 3.90% 수준까지 상승했고, 한 달 기준으로는 0.5%포인트 가까이 뛰었다. 국채 금리 역시 상방 압력을 받으며 회사채 금리까지 동반 상승하는 흐름이다. 공급 왜곡과 정책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위험 프리미엄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금리 상승은 곧바로 대출자 부담으로 전이된다. 자영업자 대출은 1070조원을 넘어선 상태에서 금리가 0.25%포인트만 올라도 연간 이자 부담이 1조 8000억원 증가한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4.4~7.0% 수준까지 올라 상단이 다시 7%를 돌파했다. 금리 상승 속도가 빨라질수록 가계와 기업의 현금흐름 압박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이미 취약 차주부터 흔들리고 있다. 개인사업자 대출 사업장 362만 곳 가운데 50만 7000곳(14.0%)이 폐업 상태다. 비은행권 폐업 비중은 17.3%로 은행 대비 두 배 이상 높고 일부 업권은 30%를 웃돈다. 연체율 상승과 공실 확대 등 실물 충격이 금융 리스크로 번지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름값을 억제하면 비용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동한다는 점을 주목한다. 재정으로 옮겨간 부담은 다시 금리 상승으로 되돌아오고, 최종적으로는 대출자에게 전가된다는 것. 소비자 부담을 줄이려던 정책이 다른 소비자인 '대출자'를 압박하는 역설이 발생하는 실정이다.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가격 통제로 눌러둔 비용이 채권시장과 금리를 통해 다시 확산되는 전형적인 구조"라며 "정책이 길어질수록 부담은 결국 금융비용 형태로 국민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