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 공정 파업 제한 … 배양 등 초기 공정은 쟁의행위 가능법원, 쟁의권·생산 보호 '절충 판단' … 쟁의권 제한 첫 사례회사, 법원에 즉시 항고 제기 … 노조 5월 1일 파업 강행 수순
  • ▲ 삼성바이오로직스 노조가 24일 인천 바이오캠퍼스 1게이트 앞에서 열린 투쟁결의대회에 참여했다. ⓒ조희연 기자
    ▲ 삼성바이오로직스 노조가 24일 인천 바이오캠퍼스 1게이트 앞에서 열린 투쟁결의대회에 참여했다. ⓒ조희연 기자
    법원이 삼성바이오로직스 노조의 쟁의행위에 대해 일부 제동을 걸었다. 의약품 변질 가능성이 큰 마무리 공정에 대해 파업을 제한하는 반면 배양 등 초기 공정에 대해서는 쟁의행위가 허용됐다. 이번 결정은 바이오 산업 분야에서 쟁의권을 상황에 따라 제한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 첫 사례라 주목된다. 

    노조는 오는 5월 1일 예정대로 파업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다만 이번 결정에 따라 지난 22일 투쟁결의대회에 참여한 노조원 2100여명 가운데 실제 파업 참여 인원은 이보다 훨씬 줄어들 전망이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인천지방법원 민사합의21부(유아람 부장판사)는 지난 23일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삼성기업 초기업 노동조합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생지부를 상대로 낸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법원은 "노조가 쟁의행위 기간 중 조합원이나 제3자로 하여금 세포주 등 원료의 변질 또는 부패 방지 작업 중 일부를 중단하도록 지시하거나 지침을 배포해서는 안 된다"며 "유형력을 행사하거나 해악을 고지하는 등의 방법으로 임직원이 위 작업에 종사하는 것을 방해해서도 안 된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회사가 요구한 쟁의행위 전면 금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정문에 따르면 ▲농축 및 버퍼교환 ▲원액 충전 ▲버퍼 제조·공급 등 제품 품질과 직결된 공정은 파업이 제한됐다.

    반면 ▲플라스크 및 배양기 배양 ▲정제 및 바이러스 여과 등 초기 공정에 대해서는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며 쟁의행위가 가능하게 됐다.

    법원은 "연속 공정의 특성상 작업 중단 시 상당한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정만으로 모든 생산 공정을 '변질 방지 작업'으로 볼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이번 결정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38조 2항의 적용 범위를 바이오 산업에 구체적으로 적용한 첫 사례로 평가된다. 해당 조항은 원료나 제품의 변질 또는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작업은 쟁의행위 기간 중에도 정상적으로 수행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해당 조항을 근거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 1일 인천지법에 노조의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그동안 제조업 전반에서 해당 조항이 적용된 사례는 있었지만 세포주 기반의 연속 생산 구조를 갖는 바이오의약품 공정에 대해 법원이 명확한 기준을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바이오의약품은 살아있는 세포를 기반으로 생산되는 만큼 공정 중단 시 단순한 생산 차질을 넘어 수개월간 생산한 의약품을 전량 폐기해야 한다. 

    이럴 경우 수천억원에서 많게는 조 단위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업계의 분석이 나온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역시 파업 시 약 6400억원 규모의 직접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추산한 바 있다.

    이 같은 산업 특수성을 감안할 때 법원이 핵심 공정을 '변질 방지 작업'으로 인정한 것은 생산 안정성과 공공성을 일정 부분 고려한 판단으로 해석된다. 

    특히 글로벌 고객사의 위탁생산을 수행하는 CDMO(위탁개발생산) 사업 구조상 공정 중단이 계약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간접적으로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법원이 쟁의행위 전면 금지 요청은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노동조합의 쟁의권 역시 일정 부분 보장했다는 점도 이번 결정의 중요한 특징이다. 핵심 공정은 보호하되 파업 자체를 봉쇄하지는 않는 균형적 판단을 내린 셈이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쟁의권이 절대적인 권리가 아니라 산업 특성과 공정 안정성에 따라 제한될 수 있음을 확인한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또 동시에 "노조의 단체행동권도 인정받은 절충적 결정"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측은 "결정문을 수령했으며 일부 인용된 것을 확인했다"며 "인용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즉시 항고를 제기했다"고 밝혔다.

    이번 결정에 따라 노조는 오는 5월 1일 예정대로 파업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박재성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생노조 위원장은 "제품화시키는 일부 공정에 한해서만 작업을 해야 한다는 판결이기에 파업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바이오로직스 노사 갈등의 출발점은 신뢰 훼손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인사 문건 유출 논란을 계기로 노조는 회사의 의사결정 과정과 정보 활용 방식에 대한 불신을 키워왔고 보상과 후속 대책을 둘러싼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갈등이 봉합되지 못했다. 

    이후 인사 기준과 개인정보 활용, 내부 통제 문제까지 쟁점이 확대되며 단순한 임금 협상을 넘어 제도 전반에 대한 문제로 번졌다. 여기에 임금·복지 수준을 둘러싼 입장 차이까지 겹치며 갈등은 더욱 격화됐다. 회사는 단계적 임금 인상안을 제시했지만 노조는 보상 수준뿐 아니라 인사 권한과 교섭 방식 개선을 요구하며 맞서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