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록수 청산 등 당국 압박에 부실채권 자체 소화 부담 가중1분기 은행권 자체 채무조정 3456건 … 3.5배 급증고금리 겹치며 연체율 상승세… 일각선 불성실차주 증가 우려도
  • ▲ 시중은행 대출창구 모습 ⓒ 뉴데일리
    ▲ 시중은행 대출창구 모습 ⓒ 뉴데일리
    정부의 포용금융 청구서가 늘어나면서 시중은행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저신용자 대출 확대 요구뿐만 아니라, 장기 추심을 억제하는 당국의 기조 탓에 은행이 연체채권을 자체적으로 떠안는 규모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국이 상록수에 이어 다른 장기연체채권 보유회사들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서는 등 전방위 압박이 거세지자, 하반기 은행권 건전성 관리에 비상등이 켜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는 민간 배드뱅크인 '상록수제일차유동화전문유한회사(상록수)'의 보유 대상채권을 최단시일 내 새도약기금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일괄 매각하기로 합의했다. 새도약기금이 매입하는 즉시 추심은 중단되고, 기초생활수급자 등 사회 취약계층 채무는 상환 능력 심사 없이 소각될 예정이다. 상록수의 청산으로 약 11만명의 장기 연체 채무자가 약 8450억원 규모의 장기 추심 굴레에서 벗어나게 됐다. 

    이번 조치는 이재명 대통령이 장기 추심과 배당 논란을 빚은 배드뱅크를 "원시적 약탈 금융"이라 강도 높게 비판한 직후 이뤄졌다. 앞서 이 대통령은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포용금융 실현 정도를 평가해 금융사에 이익 또는 불이익을 주는 제도는 없냐"는 발언을 하면서 은행권을 향한 압박 수위는 이미 한층 높아진 상태였다. 여기에 금융위는 한발 더 나아가 장기연체채권을 보유한 회사들에 대한 전수조사 방침까지 밝히면서, 은행권의 부실채권 조정에 대한 압박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통상적으로 은행은 연체채권이 장기화되면 이를 민간 배드뱅크 등 NPL(부실채권)시장에 매각한다. 부실채권이 장부에 남을 경우 연체율이 상승해 건전성 지표가 훼손되기 때문이다. 매각을 통해 자금을 일부라도 조기 회수하면, 이를 다시 정상적인 대출 재원으로 활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자금 순환 구조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장기 추심과 부실채권 시장 구조를 문제 삼으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연체채권 외부 매각에 신중한 분위기가 형성됐고, 대신 자체 채무조정을 확대하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주경제 보도 등에 따르면, 실제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자체 채무조정 건수는 지난해 1분기 989건에서 4분기 3456건으로 3.5배 급증했다. 반면에 연체채권 매각 건수는 2025년 중 3만5000건에서 올해 1분기 11건으로 급감했다. 개별 금융사의 대규모 감면 조치도 이어지고 있다. KB금융은 취약계층 1만2433명을 대상으로 2785억원 규모의 특별 채무감면을 실시하기로 했다. 원금을 최대 90%까지 깎아주고 장기 연체 차주 2074명의 잔여 채무는 즉시 소각한다는 방침이다. 신한은행 역시 지난 1월 사회배려계층 등 3395명을 대상으로 2694억 원 규모의 특수채권을 감면한 바 있다.

    외부 매각 대신 자체 채무조정이 확대되면서 은행들의 재무 및 실무 부담도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조기 현금 회수가 불가능해지면서 대손비용이 증가하고, 관련 기관의 업무였던 부실 차주의 사후 관리와 심사 업무까지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고금리 장기화 여파로 은행권의 건전성이 나빠지면서, 연체율은 이미 눈에 띄게 상승한 상태다. 5대 시중은행의 올해 1분기 연체율은 전년 말 대비 0.06%포인트(p) 오른 0.4%를 기록했다. 특히 하나은행 전체 연체율은 0.39%로 2017년 1분기(0.41%) 이후 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NH농협은행 역시 전체 연체율이 0.49%에서 0.55%로 뛰었으며, 가계 연체율은 0.46%로 2016년 3분기 이후 1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핵심 건전성 지표가 뚜렷하게 악화하면서 금융권 안팎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매각하지 못하고 부실을 계속 쌓아두는 구조는 장기적으로 금융권 전체의 기초 체력을 훼손할 수 있다"며 "당국의 채무 감면 기조가 강해질수록 빚을 갚을 여력이 있어도 고의로 상환을 미루거나 감면을 노리는 불성실 차주가 늘어날 우려도 크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