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4일자 오피니언면에 김호영 전 KBS 교육국장이 쓴 시론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야당인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가 결정되고, 범여권의 대변인이 “검증은 이제부터”라고 호언함으로써 선거전은 이제 막을 올렸다. 바야흐로 방송이 때를 만난 듯 활개칠 숨가쁜 계절이 다가왔다.

    아니나 다를까, KBS는 21일(화) 밤 11시 뉴스라인에서 재빨리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새로운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명박씨가 서울시장 재임 시에 퇴임을 앞두고 AIG 건물 기공을 자신의 공적으로 만들기 위하여 기공식 날짜를 서둘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기공식에서 행한 이명박씨의 연설 동영상을 찾아내서 보여주기도 했다. 이날의 보도는 KBS가 앞으로 선거일인 12월 19일까지 대선관련 보도에 얼마든지 깊이 관여하며 그 위력을 보여 줄 수 있다는 신호탄으로 느껴졌다.

    앞서 2002년 대선에서 KBS가 얼마나 편파방송을 했는가를 수치로 보여준 논문이 공개된 적이 있지만, KBS가 이번에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여러 시민단체가 이번만은 그런 KBS를 철저히 감시할 것이라고 진작부터 엄포를 놓고 있으나, 안타까운 것은 이 단체들의 감시란 모니터를 하겠다는 것이고 그 모니터 결과는 방송된 한참 후에야 발표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발표들이 국민의 귀나 눈에 도달할 때는 이미 시청자들이 보도를 통하여 세뇌되었거나 동조한 다음이 되고 만다.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방송보도를 시청하면서 바로 그 자리에서 보도내용이 무슨 목적으로 이런 말을 하고 있으며, 어떤 의도로 지금 왜곡, 과장, 음해하고 있는가를 꿰뚫어 보고, 분별할 수 있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필자는 방송이 시청자를 오도하기 위하여 얼마나 교묘하게 보도를 활용하고 있는가를 지적하여 우리 모두가 방송국의 교묘하고 지능적인 운영에 넘어가지 않도록 새겨듣는 법을 알려드리고자 한다.

    우선 방송은 범여권의 20명에 가까운 후보자들이 야당의 후보자 이명박에 대하여 한마디씩 하는 네거티브(음해·폭로)를 거의 빠짐없이 보도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명박 후보라는 ‘시한폭탄’을 해체하겠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이 후보에 대해 토목공사 기술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등 별의별 말들을 다 쏟아내고 있다. 방송은 이들의 말들을 여과 없이 다 다루어 주면서 이명박 후보의 얘기는 어느 구석에서 다루는지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방송사가 ‘일시적’이라고 하는 방송의 특성을 최대한 악용하는 것이다.

    이명박에게 이롭지 못한 보도는 시청률이 높은 시간대의 뉴스에서 다루고, 이명박에게 유리한 보도는 시청률이 낮은 시간대의 뉴스에서 다룬다.

    물론 방송보도가 사실이 아닌 것을 다루거나 사실인 것을 다루지 않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실을 사실로 다루면서 표현하는 용어에서 여권이냐, 야권이냐에 따라 그 선택하는 언어가 달라져서 자세히 들으면 누구에게는 좋지 않은 말을 쓰고 누구에게는 좋은 말을 쓰는가를 알아들을 수 있다. 그리고 뉴스 끄트머리에서 사족과도 같은 코멘트를 한마디씩 하는 것으로 보아 방송국의 속내도 알 수 있다.

    KBS가 정말 이번 선거에서 공공성을 지켜 줄 것인지 아무도 장담을 못하지만,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선출된 다음 날 일찌감치 새로운 의혹을 보도하는 것을 보니, 걱정스럽기 이를 데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