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20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KBS의 ‘수신료 60% 인상 작전’은 총체적인 대(對)국민 사기극을 연상케 한다. 프로그램의 공정성을 확보해 ‘코드 방송’의 오명을 씻어 내고, 방만 경영과 조직 내부의 도덕적 해이를 청산한 뒤에야 수신료 인상을 거론할 수 있다는 게 국민의 뜻이다. 그런데도 KBS는 여론을 왜곡하면서 인상을 밀어붙이고, 이를 견제해야 할 방송위원회는 그제 인상안에 동의해 ‘들러리’ 역할이나 하고 있다.

    KBS는 5월에 독자적인 여론조사를 실시하면서 객관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과학적 조사방법론’과는 동떨어진 이른바 ‘쇼 카드(유도성 설명자료)’를 동원했다. 즉 ‘현재의 수신료로는 디지털방송 전환과 공익적 역할 수행이 어렵다’는 자료를 보여 준 뒤 ‘디지털방송으로 전환하기 위해 현재의 수신료가 어느 정도 인상돼야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 결과, 응답자의 57.2%가 수신료 인상에 찬성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가 7월에 조사했더니 인상 찬성은 8.6%뿐이고 반대가 78.4%에 이르렀다. KBS는 원하는 답을 유도하기 위해 ‘여론 사기극’을 벌인 셈이다.

    7월 9일 KBS 이사회에서 일부 이사들은 수신료 인상안 의결 전에 KBS가 국민에게 공정성 강화, 방만 경영 해소를 약속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임기 내에 처리해야 한다”는 다른 이사들의 주장에 밀렸고 인상안은 의결됐다. 이 과정에서 일부 이사들은 의결 과정이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는 이 같은 내용을 이사회 의사록에서 확인해 이달 10일자에 보도했다. 그러자 KBS는 “명백한 허위보도”라고 주장하며 그제 본보를 상대로 2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도둑이 매를 드는 격이다. 본보는 사실관계를 분명하게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의사록 주요 내용을 오늘자 신문에 실었다(A3·4면 참조).

    KBS가 7월에 내놓은 ‘국민과의 10대 약속’에도 기만성이 있다. ‘10대 약속’에는 광고수입 비중을 현재의 47%에서 33%로 줄이는 방안이 들어 있다. 그러나 수신료가 60% 인상되면 수신료 수입이 연간 3000억 원이나 늘어나므로 광고수입 비중은 자동적으로 37%로 떨어지게 된다는 게 방송위원회 추산이다. 광고 수입 비중을 사실상 4%포인트만 낮추면서도 14%포인트나 애써 줄이는 것처럼 국민을 속인 것이다.

    국회는 KBS의 ‘선(先)공정성 확보’를 요구하는 국민의 뜻을 따라 수신료 인상안을 부결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