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15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기자실이 없어지자 기자들은 청사 로비에 돗자리를 깔았다. ‘돗자리 기자실’은 외신으로 세계에 알려졌다. 국가적 망신이다. 이 정권은 돗자리마저 치웠다. 기자들이 있을 곳이 없다. 사태의 근원적 책임자는 노무현 대통령이다. 그는 여러 그릇된 판단과 섣부른 행동으로 역사의 법정에 서게 될 것이다.

    첫째, 국민의 재산을 잘못 처분했다. 모든 공공건물은 국가의 소유다. 정부청사 내 기자실도 국민 소유다. 특히 그곳은 국민을 대신해 국정(國政)의 실상·부실·비리를 파헤쳐 달라고 국민이 세금으로 제공하는 공간이다. 정권은 5년 동안 위탁 관리할 뿐이다. 일종의 세입자다. 세입자가 집주인의 허락도 없이 마구 건물을 뜯어 고쳤다.

    둘째, 국민을 속였다. 정권은 “기자실을 아주 없앤 게 아니다. 부처마다 있는 기자실은 없애고 대신 중앙과 과천에 커다란 브리핑실과 기사송고실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언뜻 보면 그럴 듯하다. 그러나 이는 실상을 왜곡하는 것이다.

    정부가 마련한 통합 기사송고실은 책상·의자 수백 개가 한곳에 모여 있다. 올림픽 프레스센터 같다. 시장 바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문 분야와 출입처가 다른 기자들이 이런 운동장 같은 데서 일하면 제대로 능률을 올릴 수 있을까. 이런 기사송고실에 앉아 있으면 국정의 현장을 들여다 볼 수 없다. 기자실은 부처 내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기자들이 공무원을 직접 만나고 쳐다보면서 국정을 읽는다.

    기자가 공무원으로부터 멀어지면 국민이 국정으로부터 멀어진다.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간다. 정권은 이런 점을 국민에게 얘기하지 않는다.

    셋째, 언론자유를 훼방했다. 기자실 제도에 문제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권위주의 시절 사회의 많은 분야가 그랬던 것처럼 언론도 부적절하게 행동한 게 있다. 식사나 술을 공무원에게 의존하고 공무원을 윽박지르고 사무실에 무단 출입한 사례가 있다.

    그러나 이는 옛날 얘기다. 사회의 발전과 함께 이런 일은 거의 없어졌다. 민주주의와 예절로 무장한 젊은 기자들은 윽박지르는 대신 공무원과 대화하고 식사를 사면서 취재한다. 일부 문제가 남았더라도 언론 스스로의 고민에 맡겨야 한다. 언론이 자유와 책임을 조화롭게 가꿔 나가도록 정부는 돕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 헌법정신이다.

    기자들은 회사 매출을 위해 기자실을 고집하는 게 아니다. 국정현장과 가까운 전문적인 공간에서 더 열심히 일하려고 그러는 것이다. 제대로 된 정부라면 그런 기자들을 도와줘야 한다. 하지만 대통령은 자신을 매섭게 비판한 언론에 대한 나쁜 추억을 바탕으로 스스로, 또는 하수인을 통해 언론을 적으로 대하고 있다.

    넷째, 국민의 이익을 훼손했다. 기자들의 전화를 받으면 얘기를 하지 않는 공무원들이 늘고 있다. 지금은 후퇴했지만 하도 ‘취재는 공보관실을 통해’를 강조해 공무원들의 뇌리에 이런 의식이 남는 것이다. 이는 많은 이들이 보는 앞에서 선생이 학생더러 잘못한 게 있으면 얘기해 보라고 하는 것과 같다. 공보관실을 통해서 기자 접촉이 공개되면 어느 공무원이 부실·비리·문제점을 털어 놓겠는가. 공무원이 입을 닫으면 언론이 아니라 국민이 피해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