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이 정세균 대표, 이강래 원내대표 등 지도부를 총출동시키며 지난 28일과 29일 영등포역, 신촌역, 안산상록수역, 수원역 등을 돌며 일제히 거리투쟁에 나섰다. 그러나 시민들의 호응은 그다지 높지 못했다.

    28일 오후 3시 영등포시장 당사에서 가진 '언론악법 원천무효.민생회복 투쟁위원회' 출범식에는 전현직 의원 및 당직자들이 총동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0여명 밖에 모이지 못했다. 

    민주당 서울시당의 한 당직자는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예전에는 난닝구 부대(열혈 민주당원)만 하더라도 500명 이상은 족히 모였는데…"라며 씁쓸해했다. 수도권 지역구에서 낙선한 의원의 보좌관은 "현실적으로 볼 때 대국민설득 쪽보다 내부결속에 더 큰 의미를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상대적으로 호남지역 출신이 많은 영등포역에서 일부 시민들이 민주당이 외치는 'MB정권 심판', '언론악법 원천무효' 등의 구호를 따라하며 박수를 치자 다소 고무되는 모습도 보였으나, 신촌역으로 이동하면서 상황은 다시 바뀌었다. 10~20대 유동인구가 많은 이곳에서 민주당은 시민들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민주당 거리투쟁 첫날의 장면. 오른쪽 사진은 서울 영등포역에서 홍보를 벌이고 있는 민주당의 모습. 왼쪽 사진은 신촌네거리에서 홍보지를 전해주던 한 민주당 의원이 시민으로부터 외면받자 무안해하고 있다ⓒ 뉴데일리

    "높은 세비를 받는 국회의원이 아니어도 구호 외치고 데모할 사람은 많으니 제발 국회로 돌아가라", "독재정권이라고 목청높이는 저 사람들 안 잡아가는 것보니 독재정권이 아닌 건 확실한 모양", "미디어법을 강행통과시킨 한나라당도 못마땅하지만 껀수만 있으면 길거리로 쪼르르 나오는 민주당도 밉기는 마찬가지", "의회민주주의를 안 지키는 건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매한가지", "언론장악을 하려면 전두환처럼 방송을 통폐합해서 줄여야 하는 것 아냐? 근데 이번에는 늘리겠다는 걸로 아는데…"

    둘째날 안산상록수 역에서 민주당의 모습. 민주당은 이날 역시 '언론악법 원천무효'서명운동을 벌였으나 별다른 시민의 호응을 받지 못했다 ⓒ 뉴데일리

    한나라당 측 입장을 지지하는 시민들을 찾기도 쉽지 않았지만 민주당 측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냉담한 시민들의 표정 속에서 기자는 "제발 더 이상 국민 괴롭히지 말고 너희들끼리 국회에서 알아서 민생 좀 챙겨봐…"라는 뜻을 읽을 수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차분해지고 성숙해진 시민의식도 감지할 수 있었다.

    "노무현 정권 때도 사학법을 날치기 통과시키지 않았나? 그럼 그 때는 민주주의 절차를 지켰다는거야?", "미디어법 내용이 뭔지 도통 아는 사람들이 없는데…저렇게 자기주장만 하면서 상대방을 비난하면 쓰나", "방송들이 문제있는 건 사실 아닌가? 미디어법 내용에 대해 제대로 보도는 안하고 편들기만 하고 있으니…", "동네에 떡볶이집이 하나 밖에 없던 상황에서 2~3개 더 생기면 장사치들이야 죽겠지만 동네 사람들에게는 좋은 일 아냐?", "시민단체와 인터넷이 시끄러운 상황에서 어떻게 독재를 해?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민주당 지지성향 시민들의 비판도 봇물을 이루었다.

    "노무현 때 서로 자기들끼리 물어뜯고 싸우더니 결국 정세균 혼자 남아버렸네… 저래 가지고 여론전쟁에서 이길 수 있겠어? 정동영, 김근태, 유시민, 이해찬, 한명숙, 유인태, 신기남, 신계륜 등은 다 어디로 갔나?", "여론을 움직이는 건 인터넷과 방송에 민감한 20~30대들인데…저런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어필하겠어?", "특정 지역과 특정이념을 무기삼아 무조건적 지지를 호소하던 시절은 이제 지나갔어…논리를 개발해야지", "도대체 언제까지 독재타령과 민주화타령만 일삼으려는가? 요즘 당 돌아가는 꼴을 보면 울화통이 터져…"

    집회가 마무리될 무렵 한 중도성향의 시민이 던진 말 한마디가 여운을 남기며 기자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저런 식으로 해봐야 민주당이 패잔병이라는 이미지만 각인시키게 되지요. 최고로 좋게 봐줘야 '그래 너희들 정말 속상하겠구나', '억울하겠구나'…이런 생각들인데 그게 과연 당 이미지에 얼마나 플러스가 될까요? 예전에는 불쌍하다고 찍어주고, 분발하라고 찍어주었지만 요즘 사람들 똑똑해서 그런 짓 안해요. 강하고, 똑똑하고, 잘나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선택받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민주당의 길거리 정치는 21세기 유권자를 향해 1980년대 구호와 논리를 내세움으로써 도리어 당의 시대착오성만 부각시킬 가능성이 높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