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희(1917~79) 대통령 서거 30주년을 맞아 그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김형아(59) 호주국립대 교수도 그 중 한사람이다. 1974년 유신체제가 견딜 수 없어 대학 4학년 때 혼자 호주로 떠났다는 김 교수는 19일부터 20일까지 연세대 교내 장기원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박정희와 그의유산: 30년 후의 재검토' 국제학술회의에서 "새마을운동이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든 원천"이라는 주장으로 눈길을 끌었다.

    ◇"박정희 식 '할 수 있다'…자유민주주의 질서 기초 세운 혁신적 정신"

    김 교수는 이날 '한국인의 국민성 변화:박정희 시대와 오늘' 발표에서 박정희 시대의 물질적 유산 뿐 아니라 정신적 유산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김 교수는 "박정희의 '할 수 있다'(Can Do) 정신의 유산이 그것이 가지는 단점이나 모순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적 입장에서 약점보다 강점을 대표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박정희의 새마을운동 캠페인이 시작되기 이전, 한국 국민들의 특성은 그들 스스로에 의해서도 의존적이라 여겨졌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한 새마을운동이 한국인의 국민성을 바꿨고, 경제기적의 원동력이 됐다"고 평했다. 또 "박정희 식의 '할 수 있다' 정신의 유산은 가치 있게 평가돼야 한다"며 "궁극적으로 한국인들이 어렵게 성취한 경제적·교육적 자유의 배경 하에서 자유민주주의 질서의 기초를 세울 수 있도록 해준 혁신적 정신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인의 국민성인 '자신감' '효율성' 등은 박정희 시대의 '할 수 있다' 캠페인에서 나온 산물이라는 것이다. "한국 국민성의 극적인 변화는 불과 한 세대 내에 경제 기적을 이뤄낸 박정희 혁명의 유산이었다"고도 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1975년 새마을 지도자대회에 참석해 우수 새마을 지도자들을 표창하고 격려한 당시 ⓒ연합뉴스

    ◇"박정희 '국가 건설'하려면 국민성 바꿔야 한다고 생각"

    김 교수는 2005년 출간한 자신의 저서 '박정희의 양날의 선택'에서도 "박 대통령의 중화학공업 추진과 유신체제는 한쪽 없이는 나머지 한쪽도 존립할 수 없는 '양날의 칼'이었다"었다고 평했다. 또 "유신이라는 독재체제가 없었으면 경제성장은 이뤄질 수 없었다"고 했다. 유신체제가 싫어서 한국을 떠난 사람이 30년 후 한국에 돌아와 유신과 새마을운동을 재조명하고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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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아 호주국립대 교수 ⓒ조선일보
    학술회의를 마친 20일 오후 연세대 상남경영원에서 그는 "박정희의 과오를 미화해선 안되지만 그는 국가지도자로서 책임을 다했다"고 평했다. 유신체제 하에서 데모를 하다가 호주로 도망쳤다는 그가 30년이 지난 지금 "박정희 시대를 연구하다 보니 좋든 싫든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김 교수는 박 전 대통령의 '새마을 운동'이 한국인의 국민성을 바꿨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박정희 시대 이전 한국인은 게으르고 의타적이고 수동적이라는 인식을 스스로 했고, 장준하 함석헌 한태연 같은 지식인들도 국민성을 개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면서 "박정희는 '국가 건설'을 하려면 국민성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통해 '할 수 있다,하면 된다'는 캠페인을 일으킨 것은 그 때문"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산업화 공로는 평가받을만 하지만 독재는 잘못됐다'는 질문에 "한국 학자들이 유신과 경제성장을 따로 보는데 결국 이 둘은 '양날의 칼'"이라고 했다. 그는 "누이가 공장에 가서 받은 월급으로 대학 공부를 마치고 성공한 뒤 부모에게 왜 누이를 공장에 보냈느냐고 대드는 것과 비슷하다"면서 "현실의 이면을 보지 않거나 무시하면 안된다"고 반박했다.

    '민주주의를 하면서도 산업화를 이룰 수 있다'는 주장에 그는 "매우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주장"이라며 "어느 나라도 희생을 치르지 않고 산업화를 이룬 나라는 없었다. 박정희의 리더십은 전체적으로 평가할 때 과오보다 성과가 컸다"고 말했다.

    ◇"모든 세계가 강한지도자 찾는 상황…한국만 그렇지 않더라"
    "지금 중국 경제개발 모델이 바로 박정희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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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5년 부산 지방을 시찰중인 박정희 대통령이 부산 기계공고에 들러 학생들의 공작 실험장을 둘러보며 격려한 당시 ⓒ 연합뉴스
    한국 좌파학자들의 박정희 평가에 대한 안타까움도 묻어났다. 그는 "최근 박정희 시대 산업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진보학자도 생겨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지만 지금도 박정희의 리더십에 대해선 굉장히 부정적이고 평가자체를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독재에서 무슨 긍정적인 면을 찾을 수 있겠느냐'면서 학문의 문호를 열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지금 모든 세계가 '강한 지도자'를 찾고 있는데 한국만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국가 지도자 리더십의 성격은 무엇이며 지도자의 역량과 비전은 어때야 하는지 지성인들이 사상에 구애되지 말고 학술적·대중적 토론이 활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산업화와 독재를 '양면의 칼'이라고 평한 그는 "지금 중국의 경제개발 모델이 바로 박정희 모델이다"고 했다. 김 교수는 "유신이라는 악마적 독재를 했지만 그 체제와 그 시대의 산업혁명을 분리해 이해할 수 없다"면서 "그것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80년대 386세대는 절대빈곤을 경험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부모 세대와 다르지만 정신적인 면에서 계승한 게 있다"고 했다. 그것을 '할 수 있다, 캔 두(Can Do) 정신'이라고 칭한 김 교수는 "80년대 학생운동 주도 세력은 산업화 시대의 '캔 두 정신'을 갖고 민주화란 꿈을 이룬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박정희 시대와 시간적 거리를 두고 바라보니 객관적 시각이 생기는 것 같다고 했다. 또 한국이 아닌 호주에서 연구했기 때문에 이념을 따지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