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재벌총수, 연예인 사생활 등 총망라최진실 사채설, 나훈아 신체절단설도 퍼뜨려
  • 우리나라에서 루머를 옮기는 대표적인 매체 중의 하나가 흔히 '찌라시'로 불리는 증권가 사설정보지다.

    연예인의 사생활에서부터 정치인, 대기업 총수, 고위 관료, 스포츠 스타 등 뉴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각종 소문이 담겨 있다.

    기업 간 인수합병(M&A)설, 신기술 개발설, 권력 이면의 실세에 관한 루머, 연예인들의 신변잡기 등등이 그것이다.

    ◇ 찌라시 어떻게 만들어지나

    찌라시는 1980년대 중반 처음 생겨난 것으로 알려졌다.

    초창기엔 '주식종목 분석'이란 증권가 고유의 수요에 맞춰 종목정보가 중심을 이뤘다.

    증권사 정보담당 직원들이 매주 모여 정리한 종목정보들이 A4 용지 한두 장으로 요약돼 '투자분석', '정보분석' 같은 이름을 달고 유통되는 방식이었다.

    찌라시는 90년대 초반 들어 여의도 정가의 소식을 궁금해하는 대기업의 정보 수요가 가세하면서 콘텐츠가 대폭 확장된다.

    기업분석 정보 외에 정치권, 경제계, 연예계, 스포츠계, 언론계 등 사회 각 분야의 정보를 담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기업 정보 담당자는 물론 정보기관 직원,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 관계자, 국회의원 보좌관, 언론사 기자 등이 정보 교류와 생산에 참여하게 됐다.

    이들 각자가 내놓는 '전공 분야' 정보를 한데 취합하면 종합적인 정보꾸러미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A증권사 관계자는 "10∼12명 정도가 한 팀을 구성하고 1∼2주에 한 번씩 정해진 장소에서 만나 각자가 입수한 정보를 교환하면서 정보지가 생산됐다"고 말했다.

    지금도 이런 팀은 10여개에 달하는데 이렇게 생산된 정보지 중 실제 시중에 유통되는 것은 3∼4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정보팀 대부분은 대기업 등에서 정보 수집 그 자체를 목적으로 운영돼 상부에 보고하는 것으로 끝난다"며 "그중 일부만이 찌라시 업체에 넘어가 '상품'으로 거래된다"고 덧붙였다.

    말하자면 정보를 취합.생산하는 부문과 이를 재가공해 돈을 받고 유통시키는 부문으로 이원화돼 있다는 것이다.

    또 흔히 '증권가 찌라시'로 불리지만 실제론 증권가 쪽보다는 정치권이나 대기업 등에서 더 많이 유통된다는 지적도 있다.

    다른 증권업계 관계자는 "증권가에 정보가 많이 유통되고 또 필요하다는 속설 탓에 증권가가 찌라시의 주요 유통 경로로 지목되지만 실제 찌라시 내용은 대부분이 정치 얘기여서 증권가에 크게 쓸모있는 정보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 찌라시의 역기능..악성루머의 진원지

    찌라시의 역기능이 특히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 온라인 매체가 발달하면서다.

    그전까지만 해도 주로 인편에 의해 문서 형태로 주고받으면서 극소수 사이에서만 유통되던 찌라시가 이메일, 메신저 등 전달.복제가 용이한 매체에 실리면서 전파력이 급격히 커진 것이다.

    특히 증권가에서 쓰는 메신저는 한번에 다수에게 동일한 내용을 전송할 수 있어 폭발적인 속도로 퍼져 나갈 수 있었다.

    월 50만∼100만원을 줘야 볼 수 있던 유료 정보가 이들 매체와 만나면서 무료 콘텐츠로 둔갑해 마구 확산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된 것이다.

    찌라시의 역기능이 단적으로 드러난 사례는 2008년 배우 최진실씨의 자살 사건이었다.

    찌라시가 출처인 악성루머를 증권사 여직원이 인터넷에 옮기면서 급속도로 확산됐고 결국 최씨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가수 나훈아씨와 관련된 괴소문도 진원지는 찌라시였다.

    나씨는 한 여성 연예인과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다 신체 일부를 잘렸다는 루머가 점점 확산하자 기자회견을 자청해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해야 했다.

    또 이보다 앞서 2005년엔 '연예인 X파일' 사건으로 정부가 대대적인 단속을 벌여 찌라시 업체들을 적발하기도 했지만 그 뿌리를 뽑지는 못했다.

    2005년 단속에 관여했던 경찰 관계자는 "수사 결과 찌라시 유통 업체는 대부분 영세한 규모로 운영되는 군소 업체들"이라며 "하지만 결국 이런 정보에 대한 수요가 끊이지 않다 보니 찌라시 유통이 근절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소문에 사서 뉴스에 팔아라'라는 증권가 격언이 시사하듯 여전히 증권가에서 소문은 투자 판단의 큰 지침이다.

    채 검증되기 이전의 빠른 정보에 대한 수요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찌라시 단속에 회의적인 목소리도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각 조직에서 서로 정보가 필요하다 보니 찌라시가 없어지지 않는 것"이라며 "극소수만 볼 수 있는 정보라면 받아보는 사람은 특권의식을 가질 수 있지만 많이 퍼지면 언론 등을 통해 걸러지는 측면도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