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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도 이런 코미디일 수 없다.
아니 외교통상부가 정신줄을 놓았다고 하는 표현이 맞다.
<#1> 여야가 4일 오후 한-EU FTA 비준안 처리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한나라당은 소속 의원 전원에게 ‘대기령’을 내리고 본회의 표결을 준비했다.
김무성 원내대표는 본회의장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인내심을 갖고 민주당을 기다리고 있지만 너무 심하다”면서 “전례 없는 여·야·정 합의안에 서명한 민주당의 (당내) 설득시간이 지칠 정도로 길다. 민주당은 합의내용을 지켜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김 원내대표는 직권상정 가능성에 대해 “박희태 국회의장에게 절차에 관해 말씀드렸다”며 “(한-EU FTA 피해대책에 대한) 부수법안 2개는 차치하더라도 한-EU FTA는 직권상정을 해서라도 처리하겠다”고 단언했다.
<#2> 민주당은 비준안 처리를 연기하자는 입장을 내놓았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비준안을) 오늘 처리하지 말고 다음 원내대표에게 넘기자고 말했다”면서 “그러나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가 합의한 대로 하지 않으면 (처리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동영, 천정배 최고위원 등은 한-EU FTA 처리에 격렬하게 반대했다. 야3당이 반대하니 일단 거부하고 보자는 식이다. 손학규 대표도 야3당의 눈치를 보는지 오전 열린 비공개 의총에서 “지금 이 상태로 합의해서 통과시키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생각한다”고 어물쩍 넘어갔다.
<#3> 이러한 가운데 뜬금없는 소식이 들려왔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타이밍이다. 이날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한-EU(유럽연합) FTA(자유무역협정) 비준안 한글본에 이어 한-미 FTA 비준안에서도 번역 오류가 발견됐다며 철회를 요청했다. 김 장관은 “송구스럽다. 다시는 이런 오역 사례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남경필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은 “상임위를 통과한 비준안에 대한 철회 요청을 한 것은 초유의 일”이라며 “다시는 이 같은 오역사례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벌써 몇 번째인가. 남 위원장의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음은 그의 어두운 표정에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야당의 집중 질타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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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상황이다. 정부가 너무나 조급해서 서두르다 보면 실수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러한 실수가 현 정권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국가적 망신이다. 해외토픽감이다.
앞서 문제가 제기됐던 한-EU FTA 협정문 한글본 번역 오류의 경우도 서두르는 바람에 한글본을 세 번이나 다시 써야 했다.
협정의 잠정 발효시기가 올 7월1일로 계획된 터라 다급하기도 했겠으나 결코 옳은 대응은 아니었다.
이밖에도 한-아세안 FTA, 한-인도 CEPA(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 한-싱가포르 FTA에서 번역 오류가 다수 나타났다. 엉터리 번역이 수두룩하다는 지적이 잇달았다.
급할수록 돌아가야 하는 법이다. 철저한 검독을 통해 번역 오류를 다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번역 오류라는 지엽적 문제가 FTA 반대 여론 확산에 기름을 붓게 된다.
FTA의 시작은 노무현 정권이었다. 그런데 욕은 MB정부와 한나라당이 다 들어먹고 있다. 군데군데 구멍이 발견되면서부터다. 그 빌미를 외교통상부가 제공하고 있다.
가뜩이나 한나라당은 4.27 재보선 패배 쇼크로 ‘혼란’에 빠져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외교통상부가 여당에 부담을 주고 있는 것이다. 말도 안되는 일이다.
엄격하게 번역 오류 책임을 분명히 물어야 할 것이다. 재발 방지 차원에서도 꼭 필요한 조치다. 그리고 외부에 검독 용역을 의뢰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일은 또 다시 반복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