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유동성 요인은 외면 … '수급 탓'에 갇힌 환율 진단美 재무장관까지 나섰지만, 반나절 만에 환율 1470원 회귀 기준금리는 제자리, 시장금리만 급등 … 대출·서민경제에 역풍개입 내성 커진 외환시장 … "통화스와프 외엔 설득력 있는 카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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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 후반에 고착되는 동안 정부와 한국은행이 꺼낸 카드는 사실상 소진됐다. 외환보유액 투입, 국민연금·대기업 설득, 구두개입, 미국 재무장관의 이례적 원화 옹호 발언까지 동원됐지만 결과는 제자리다. 시장은 매번 안정 신호를 잠깐 보이다 다시 1470원 안팎으로 돌아가고, 그 사이 금리·채권·대출 비용만 위로 밀려올라가고 있다. 외환 컨트롤타워의 판단과 신뢰가 동시에 흔들리면서 "이제 남은 실질적 카드가 한·미 통화스와프뿐"이라는 말이 금융권 안팎에서 공공연히 나온다.

    ◆ 환율 뛸 때마다 "수급 탓" … 통화·금리 요인은 뒷전

    한국은행은 최근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연 2.50%로 5연속 동결하면서, 그간 의결문에 넣어왔던 '금리 인하 가능성' 문구를 통째로 삭제했다. 이창용 총재는 "환율이 이번 결정의 중요한 배경이었다"고 인정하며 사실상 매파적 스탠스로 선회했다. 새해 들어 원·달러가 1480원선까지 치솟자, 경기 부양보다 환율 부담을 앞에 세운 셈이다.

    하지만 이 총재의 진단과 해법은 시장과 계속 엇갈렸다. 그는 "환율 때문에 금리를 올리지는 않는다. 한국은행이 통화량을 너무 풀어 환율이 무너졌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과잉 유동성과 통화정책을 환율 급등의 주범에서 사실상 제외했다. 대신 국민연금의 해외투자·환헤지, 서학개미의 해외 주식 매수, 대기업의 해외 직접투자 등으로 1000억달러 넘는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서울 외환시장의 '달러 수급'이 일시 왜곡된 결과라는 설명에 방점을 찍었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국회에 제출한 광의통화(M2)·ELQ(과잉유동성) 지표를 보더라도 한국의 유동성 수준과 증가 속도는 미국·유로존보다 높은 상태가 상당 기간 지속됐다는 점을 지적한다. 코로나 이후 미국과 유럽이 통화 공급을 빠르게 되감는 동안, 한국은 줄이긴 했으나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렸고 최근에는 다시 늘어나는 흐름까지 나타난다. 환율이 '통화 가치의 상대평가'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격차는 원화 약세 방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럼에도 이 총재가 "그 지표는 잘 보지 않는다"는 취지로 선을 긋자, 금융권에서는 정작 컨트롤타워가 중요한 변수들을 선택적으로 배제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미국발 구두개입이 보여준 것도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의 균열을 드러낸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이 "최근 원화 약세는 한국 펀더멘털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언급한 1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환율은 개장 직후 1465원까지 밀렸다. 그러나 이 총재의 기자회견에서 환율 때문에 금리를 조정하지 않는다는 기존 입장이 다시 확인되자 시장은 곧바로 달러 매수로 돌아섰고, 환율은 1470원대로 되돌아갔다. 미국 재무장관의 입까지 빌렸는데도 효과가 반나절을 넘지 못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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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책 공백에 시장비용만 급등 

    외환정책의 신뢰 부재는 채권·대출시장에도 왜곡된 비용으로 전가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묶어둔 채 인하 가능성 문구를 지우자, 3년·5년·10년 국채금리가 일제히 급등했다. 기준금리는 정지돼 있는데, 통화정책의 방향성이 애매해지면서 시장금리와 은행채 금리가 먼저 튀어 오른 셈이다.

    국채금리 상승은 고정형 주택담보대출 금리와 직결된다. 이미 5대 은행의 고정형 주담대 금리는 연 3%대 후반~6%대 초반까지 올라와 있고, 변동금리의 기준인 코픽스(COFIX)도 3개월 연속 상승했다. 금통위 결정은 동결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대출자에게 추가 부담을 안기는 '숨은 긴축'이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가계부채는 1970조원을 돌파했고, 이자 비용은 서민·실수요자 계층에 집중되고 있다.

    물가와 자산시장 측면에서도 비용은 중첩되고 있다. 고환율은 수입 원가를 통해 소비 가격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12월 수입물가가 전월 대비 0.7% 상승하며 6개월 연속 올라섰고, 두바이유가 하락했음에도 평균 환율(1467원)이 충격을 상쇄한 것으로 분석된다. 소비자물가는 2%대 상승률이 네 달 연속 이어졌고 석유류·수입식품 가격이 뚜렷하게 뛰었다. 고금리·고환율 조합이 생활 물가에 이중 부담을 전가하는 구조다.

    부동산도 이 총재의 정책 프레임과 따로 움직이고 있다. 그는 동결을 통해 금융안정과 주택시장 과열을 제어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시장은 다른 셈법을 택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48주 연속 상승했고, 연초 상승률을 연율로 환산하면 두 자릿수에 근접한다. 금리가 낮아지지 않아도 가계 유동성과 정책 기대가 가격을 떠받치는 현상이 고착되는 모습이다.

    그 사이 환율은 여전히 1470원 안팎에서 좀처럼 내려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말 외환보유액을 대량 투입해 하루 30원 넘게 끌어내렸던 개입 효과는 한 달도 못 가 사라졌고, 연말에 줄어든 외환보유액만큼의 기회비용과 잠재 환차손 우려만 쌓였다. 시장에서는 "정부·한은이 쏟아낸 각종 조치에 내성이 생겼다"는 냉소 섞인 평가가 나온다.

    ◆ 남은 카드는 통화스와프

    이런 상황에서 실질적 안전판으로 거론되는 것이 한·미 통화스와프다. 통화스와프가 체결되면 외환보유액과 별도로 달러 유동성 라인이 확보되고, "위기 시 언제든 달러를 공급받을 수 있다"는 신호가 시장 심리를 안정시키는 효과를 낸다. 외환당국이 굳이 실탄을 쓰지 않아도 환율 상단을 눌러주는 '신뢰의 장치' 역할을 하는 셈이다. 과거 2008년·2020년 사례에서 위기 확산을 조기 차단한 경험도 있다. 

    다만 통화스와프는 한국이 원한다고 자동으로 열리는 수단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미국 측에 한국과 스와프를 체결해야 할 이유를 납득시킬 전략과 외교 채널, 그리고 이를 총괄할 국내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지금처럼 환율 급등의 원인을 '달러 수급 왜곡' 정도로만 축소 진단하고, 통화·재정·국제투자 구조를 종합적으로 조정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스와프 협상 논리조차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한·미 관세 협상에 따라 올해부터 연간 2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가 충실히 이행되기 위해선 과도한 원화 가치 하락이 미국 입장에서도 불편한 상황"이라며 "한국 외환 당국과 공조에 나선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또다른 글로벌 IB 이코노미스트는 "실개입·구두개입·연기금 동원·해외 기관 설득까지 다 나왔지만 환율 레벨은 변하지 않고, 대신 금리·대출·내수 비용만 올라가고 있다"며 "컨트롤타워 신뢰가 약해진 상태에서 스와프를 확보하지 못하면 백약이 무효 국면이 더 길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